빨강 구두 아줌마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빨강 구두 아줌마

0 개 2,903 오소영

밖은 비 바람이 사납다. 오늘같은 날, 밖에 볼 일이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둠침침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옷을 두둑히 입고 앉아 있는데 있을수록 더 춥다. 아랫도리가 얼어오는데 견딜수가 없다.

 

뉴질랜드의 겨울 추위는 비 내리는 날, 가히 공포스럽다. 평생 몸에 베인 절약정신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히터의 스위치를 맨 위까지 거침없이 올렸다. 

 

그래봐야 집 안 가득 비춰주는 햇볕을 따라잡기엔 어림도 없다. 차라리 빗속으로 나서서 정면으로 도전하는게 낫겠다는 유혹이 밀려온다. 포근한 카페 의자에 파묻혀서 따끈한 커피라도 한잔 마시면 이 추위를 잊을 것만 같다.

 

서둘러 중무장으로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난로앞에서 달아올랐던 양 볼에 찬바람이 상큼했다. 늘상 냉방으로 썰렁하던 버스 안이 오늘은 방 안 보다 더 훗훗했다.(역시 나오길 잘 했구나) 슬며시 마음이 바뀌었다. 

 

목적없는 방황속에서 즐기는 낭만. 빗속의 나그네?. 생각을 하니 꽤 기분이 가벼워졌다. 기차로 바꿔 탔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니 사람도 별로 없다. 

 

텅 빈 공간이 불빛 속에 화안했다. 내가 마치 이 큰 차량 하나를 전세 낸듯 넉넉하고 편안했다. 사나운 비 바람속에. 발품을 팔아서 얻은 이 조그만 평화에 부풋한 감동이 왔다. 움츠렸던 어깨가 화알짝 펴졌다.

 

이 기찻길엔 없어서 아쉽지만 좋아하는 갈대의 꿈을 더듬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잿빛 하늘밑에 웅크려 앉은 낮은 집들. 시퍼런 나무들이 모진 매를 맞으며 앙탈하듯 몸을 흔들어댄다. 

 

달리던 차가 잠시 멈추었다. 

 

새로 올라타는 어떤이가 가볍게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며 앞자리로 가고 있었다. 드디어 내 전셋방(?)에 무단 침입자가 생긴 것 인가. 문득 그의 발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찐한 오렌지의 빛깔이 형광색으로 눈이부신 운동화. 그 화사한 빛깔이 그의 전체를 화려하게 돋보이고 있었다.

 

“또옥 똑 구두소리... 빨강구두 아가씨....”

 

젊었을 때. 유행했던‘빨간구두 아가씨’란 노래. 가수‘김상희’가 불렀다. 경쾌하고 명랑해서 쉽게 따라불렀던 생각이 난다. 예전엔 구두하면 보통 검정 아니면 갈색정도. 여름엔 백구두가 주류였다. 

 

빨강구두는 정말 특별한 멋쟁이 아가씨들이나 신었다.

 

“한번쯤 뒤돌아 볼 만도 한데... 발걸음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멋쟁이 아가씨를 선망했던 젊은 남자들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런 시절에 어느 오십대 아줌마가 빨강 구두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이야기 하나.

 

4502ed5eed0dffe371088913b04eb6cd_1500949579_1399.jpg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니 본 것은 많아 노상 촌뜨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멋하고는 담을 쌓고 살던 사람이었다. 전업 주부의 주책이었을까? 반란이었을까? 일상의 굴레를 잠깐 벗어버린 일탈이었을 것이라고 지금 생각한다.

 

어느날인가. 모처럼 시내에 나갔다. 인사동 근처였던것으로 기억한다. 제법 알려진 양화점 쇼윈도에 화려하게 진열된 그 구두를 발견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빨강 칠피구두. 정중앙에 동전 크기의 새까만 동그라미가 조화의 포인트를 더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굽으로 남으램 할데가 한군데도 없었다.

 

며칠을 그 구두가 눈앞에 어른거려 잠을 설쳤다. 살림에 묻혀서 집안에서만 사는 여자가 어불성설 말도 안되는 이변이었다. 아가씨도 아닌 오십대 주부가 감히 빨강 구두라니... 그걸신고 딱히 갈만한 곳도 있을리가 없다.

 

처음 경험하는 들뜬 마음을 달래느라 많이 애썼다. 자신 속에도 허영끼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래기도 했다. 스스로 철없음을 남으램도 했지만 그 강한 유혹에 끝내 지고야 말았다. 뭔가를 꼭 갖고싶다는 오랫만의 감정. 그 새로운 감정이 고마웠다는게 핑게였다. 그동안 주부라는 틀에 묶어놓고 요지부동으로만 살아왔던 자신임을 깨달았다. 사실 밖을 기웃거려본지도 오래 되었다.

 

벌써 어느 예쁜 아가씨가 그 구두의 주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 때는 가볍게 체념을 하리라. 마음 다졌다. 하지만 그것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이 주인을 기다렸다는듯이...

 

어렸을 때 엄마가 새 운동화를 사 주시면 선뜻 신지를 못했다. 너무 좋아서 몇 밤을 품에 안고 자곤했다.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신장 안에 모셔두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솔직히 말하면 신고나설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민망함을 참고 큰 용기를 내서 신어본게 몇번이나 될까? 젊음을 한참 비껴간 아줌마란 사실에 주눅이들어 챙피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빨강구두를 신고 나설땐 어깨가 쭉 펴졌다. 꼿꼿한 자세로 당당하고 기품있게 자신을 높여 으쓱해 보기도 했던게 사실이다.

 

이민 보따리엔 그게 따라오지 못했다. 이 년만인가 귀국해서 신장을 열었을 때 그 빨강색 구두가 다시 내 눈을 자극했다. 깔끔하게 새 것처럼 포장을 해서 가지고 들어왔다. 지난 세월이 얼마인가. 그 때도 신기 어려웠던 컬러를 지금 신다니... 그건 그냥 내 신장안에 애완용이었다. 지금처럼 컬러의 다양한 물결이 일기 몇해 전. 그 구두는 나와 마지막 이별을 했다.

 

안 입는 옷 보따리에 싸여 빈으로 들어갔다. 온갖 신발들이 컬러의 다양함으로 눈이부신 요즘이다. 눈 딱 감고 한번쯤 신어봤으면 좋았을걸. 혹시 누군가 뒤에서‘빨강구두 아가씨’노래라도 불러줄지 아는가..... 후. 후. 후...

 

어느덧 종착역에 다 왔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유치한 치기의 꿈도 끝이났다. 그동안 비도 멀리갔다. 파아란 하늘에 한 뼘쯤 남은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다.

내 여생도 저 햇살을 닮아 곱고 멋지고 싶다.

 

밝고 아름답고 향기있는 삶을.... 

11 Great Walks 600여km, 풍광을 카메라에 담다

댓글 0 | 조회 418 | 11시간전
1993년, 낯선 땅 뉴질랜드(New Zealand)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 나라의 자연이 내 삶 깊숙이 스며들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 환경… 더보기

추파카브라 전설

댓글 0 | 조회 113 | 11시간전
— 공포와 현실 사이,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의 이야기1990년대 중반, 푸에르토리코의 한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 이상한 사건이 있었다. 아침이 되자 농장의 염소와 … 더보기

뜰안의 민들레 꽃처럼 . . .

댓글 0 | 조회 136 | 12시간전
달게 잘 잤는데도 깨어나면 기분이 깔끔하지가 않다. 나만 그런가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거의가 다 비슷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가?어쨌든 또 하… 더보기

마지막 퍼팅의 압박 –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는 법

댓글 0 | 조회 177 | 12시간전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라운드 내내 아무리 좋은 샷을 해도, 마지막 퍼팅 하나로 모든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1미터, 아니 50cm 퍼… 더보기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댓글 0 | 조회 106 | 12시간전
시인 문정희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얼마나 모르고 있는지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별은 그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벌레이거나아무 의도도 없이 나를 가로막는 돌처럼나… 더보기

뉴질랜드 이민 삶 44년을 회고하며

댓글 0 | 조회 592 | 12시간전
1982년, 키위 구두약의 나라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딛다내 글의 변(辨): 나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 글은 44년 뉴질랜드 이민사의 흔적 단면을 기록한 것… 더보기

뉴질랜드 입법부&행정부와 사법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댓글 0 | 조회 400 | 17시간전
예전에 한국의 계엄령 관련 칼럼을 다루면서, 뉴질랜드는 완전한 삼권분립이 되지 않는다는 주제도 잠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일단 3년마다의 선거를 통해 … 더보기

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

댓글 0 | 조회 250 | 17시간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비 오는 조계사를 바라본다. 시내를 오가다 보면 불교신자든 아니든 한 번쯤 들르게 되는 활기를 가진 절이다. 한동안은 절 마당… 더보기

25. 마우이와 태양을 붙잡은 산 – 기스본의 전설

댓글 0 | 조회 85 | 18시간전
기스본(Gisborne)은 뉴질랜드 북섬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은 마오리 부족인 Ngati Porou… 더보기

매력만점의 은퇴부모 투자이민

댓글 0 | 조회 777 | 2일전
COVID-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특별 영주권제도를 통하여 영주권을 받게 된 분들로부터 근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제가 코로나로 영주권… 더보기

호주 뉴질랜드 의대 합격의 분기점: 지금 점검해야 할 시기

댓글 0 | 조회 451 | 2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현재 유학생… 더보기

연주 씨의 카드

댓글 0 | 조회 250 | 2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적 장애를 가진 연주 씨는 부모와 함께예배에 한 번도 빠짐이 없는 아가씨입니다연주 씨네 집이 이사하여 심방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성탄절이 가… 더보기

2026년 통과된 고용관계법 개정안

댓글 0 | 조회 293 | 2일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피고용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고용분쟁 시스템 구조를 더 공정하게 만들고, 피고용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더보기

‘취미’와 ‘문제’의 경계선

댓글 0 | 조회 128 | 2일전
- 갬블링 위험 신호 점검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갬블링은 생각보다 가까운 여가 활동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스포츠 결과를 예측하거나 여행 중 카지노를 방문하… 더보기

개똥걱정 말똥걱정

댓글 0 | 조회 111 | 2일전
189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 도시계획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였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물동량이 늘어나자 말(馬… 더보기

6편 – MH370: 사라진 하늘

댓글 0 | 조회 109 | 2일전
“비행기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어떤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프롤로그 - 2014년 3월 8일, 새벽 1시 21분쿠알라룸푸르 관제탑.레이더 화면에서 … 더보기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 및 선발기준 (의대, 약대, 검안대, 영상…

댓글 0 | 조회 214 | 2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2026년 오클랜드 의료계열 입시 기준 Dean’s Determinati… 더보기

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댓글 0 | 조회 789 | 5일전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이래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조선은 총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조선 시대 … 더보기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 총정리 (의대 약대 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453 | 7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2년 (2025년, 2026년)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2026년 입시는 2025년 지원한 학생들을 뜻하며 20… 더보기

약 처방, 이제는 12개월분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댓글 0 | 조회 990 | 10일전

올해부터 바뀌는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MMI 면접방식 (의대,약대,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824 | 2026.03.12
의료계열 (메디컬)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최신 정보’를 알고 정확하게 준비를 하는것이다. 필자는 매년 면접관과 입학사정관을 만나며 최신정보를 수… 더보기

피아노의 영혼

댓글 0 | 조회 253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1994년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면서 마침 딸의 권고로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The Piano)’를 감상하였다. … 더보기

인간의 본질적 문제

댓글 0 | 조회 210 | 2026.03.11
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윤회할 주체인 “나”라는 게 일단 본질적 의미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인식이 죽… 더보기

히말라야의 그림자 빅풋과 예티는 존재하는가

댓글 0 | 조회 174 | 2026.03.11
어느 겨울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바람이 눈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누군가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람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러나 분명 두 발로 걸어간 흔… 더보기

나만의 등불 밝혀 내 마음 찾는 여정

댓글 0 | 조회 146 | 2026.03.11
강진 무위사의 ‘보름달 명상 템플스테이’어둠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비로소 빛을 만난다. 추석 보름을 앞두고 차오르던 달빛도 구름에 모습을 감춘 날, 가로등조차 없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