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더맨(Leath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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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더맨(Leatherman)

0 개 1,928 김준

1850년 미국 코네티컷주의 한 마을.. 그리 부유하진 않아도 이웃간에 체면 치레는 하고 살 만큼 여유있는 동네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한 인물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온몸을 휘감은 가죽 옷과 가죽 모자 그리고 가죽 신발까지.. 온통 두꺼운 가죽을 재단해 기워 만든 복장은 보기에도 무겁고 지독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나중에 그가 사망한 뒤 측정해 본 가죽 신발의 무게가 25Kg에 달했다 하니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전신 가죽 옷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됩니다. 

 

나무 지팡이 하나를 의지해 동네 이곳 저곳을 걸어 다니는 그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떠돌이 부랑자라 손가락질 하며 아이들을 단속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정신병자가 나타났다며 인근 병원에 빨리 전보를 보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한 명 빠짐없이 여러가지 이야기로 수군댔지만 정작 그 가죽옷의 사나이는 쏟아지는 사람들의 질문과 끝없이 늘어나는 온갖 추측에 대해 일언반구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마을 식당에서 사 먹었고 잠을 잘 시간이 되면 근처의 수풀에 자리를 잡는 것이 아주 오랫동안 이런 생활을 해 온 사람 같았습니다. 

 

먹고 마실 돈이 있는 것으로 봐선 적어도 그저 떠도는 거렁뱅이는 아니었던듯 합니다. 

 

며칠동안 동네 이곳 저곳을 살뜰하게도 돌아다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훌쩍 그곳을 떠나선 보이지 않다가 몇 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나타났습니다. 

 

물론 아직도 그때의 그 가죽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 사이 조금은 더러워지고 낡아졌다고는 해도 절대로 찢어지거나 닳아 없어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몇 개월 전처럼 동네를 며칠 돌아보고는 다시 길을 떠나 또 몇 개월 뒤에 돌아오고... 

 

사람들은 일년에 몇 차례 마을을 들르는 그를 레더맨 (Leatherman)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거의 정기적인 그의 출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럴싸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아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 구도자다.. 현세에 마지막 남은 마법사다.. 단기 기억상실증을 겪는 환자라서 매번 새로운 기억을 찾아 마을을 방문하는 중이다.. 등등 현실 속 보통 사람과는 많이 동떨어진 삶을 사는 신기한 인물의 인생을 두고 온갖 이야기가 난무 했습니다.

 

하지만 인근 다른 마을의 주민들과 왕래를 하며 알게 된 그의 여행 경로는 주민들의 은근한 기대를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레더맨은 그저 여러 마을들을 관통하는 600km짜리 트래킹 코스를 빙빙 도는, 허무하리만치 단순한 일을 계속 되풀이하는 중 이었던 것입니다. 

 

그에겐 특별히 찾아내야 할 삶의 의미도 없었고 마법 같은 것은 근처에 가본적도 없었으며 기억력 또한 멀쩡해서 일년여 전에 만난 동네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으니 정말로 레더맨은 아무런 목적도 없는 뺑뺑이를 1년 365일 땀 흘려 돌고 있는 중이었던 겁니다. 

 

간혹 그의 지난 삶에 대한 추측성 기사가 신문에 게재되기도 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고 1889년 어느날 레더맨은 여느 날과 같이 길을 걷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맙니다. 

 

이로서 39년에 걸친 너무도 성실하고 너무도 일관된 그의 여행은 목적지조차도 찾지 못한 채 끝을 맺었고 그 후 아무런 연고자도 없는 그의 유해는 ‘Leatherman’이라는 묘비명 아래 매장되었습니다.

 

39년의 세월 동안 그저 걷고 또 걸었던 레더맨이 무슨 이유에서 그러한 일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그의 행적은 그가 얼마나 긴 거리를 걸었는가 하는 것 뿐입니다. 

 

아마도 옷도 무겁고 해서 여유있게 걸었을 테니 하루 5시간씩 시속 2Km로 걸었다면 하루에 10Km를 이동한 것이 됩니다. 이렇게 가정하고 계산해 본 거리는 무려 14만2000Km에 이르고 지구의 둘레가 4만Km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한 지구를 세 바퀴 이상 돌 수 있는 거리를 그는 여행한 셈입니다.

 

그냥 어떤 남자가 39년간 걷기만 하다가 죽었다..라고 생각한다면 특별히 안쓰러워 할 일도 속상해 할 이유도 없지만 잠깐 계산을 해 보고 나니 레더맨이 조금만 생각을 더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왕 그리 성실하게 하루하루 걷는 것, 600km짜리 트랙만 빙빙 돌지 말고 차라리 지구를 걸어서 돌았다면 어땠을까.. 혹시 최초로 걸어서 지구를 횡단한 사람으로 지리책에 이름이 남지는 않았을까. 만약 거기에 더해 자신의 가치관이 반영된 이야기 거리 하나를 피켓으로 만들어 들고 걸었더라면 전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아쉬워 해 봤자 지나간 일이요 남의 인생이었으니 더 이상 할말은 없지만 요즘에도 이 레더맨 같은 학생들이 가끔 등장한다는 사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지 갑갑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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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17년도 한 가운데를 넘어서서 하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Y13학생들은 이제 자신이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과 전공을 고민하고 있고 좀 더 나아가 공부하고자 하는 전공을 졸업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인생을 통해 자신의 경력으로 남을 전공을 정하는 일이니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겠지요. 그런데 개중엔 갑자기 울상을 짓고 고민에 빠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동안 컬리지에서 나름 열심히 공부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과목선정을 잘못한 바람에 원하는 전공에 입학할 수 없게 된 경우이지요.

 

대부분 저학년 때에 점수를 받기 쉬운 과목을 수강하다가 그것이 계속 이어진 경우 이거나 애초에 과목 선정을 잘 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원하는 진로가 바뀐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해가 갈수록 고교 필수수강 과목에 대한 규제가 약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뉴질랜드의 고교과정은 문과 과목 위주의 Table A와 이과 과목 위주의 Table B로 나뉘어 있고 상당히 많은 대학전공은 Table을 기준으로 필수 수강 과목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엔지니어링에 진학하려면 Y13물리에서 16 credit 를, 수학에서 17 credit를 수강해야 하고 그 결과 마크가 260점 이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식입니다. 

 

입학기준은 이렇게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있지만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께서 그 만큼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방향을 잡지는 않는 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Y13의 중간에 와서야 그 동안 헛고생 했다며 눈물을 짓게 되는 거지요.

 

벌써 6~7년은 된 듯한 일입니다.

R은 갑작스레 유학을 준비해 뉴질랜드로 건너온, 그것도 Y10이라는 늦은 시기에 건너온 학생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고, 준비가 있었고 인생을 살아가갈 방향에 까지 두루두루 고민을 많이 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생각이 성숙한 학생 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만났을 때는 그랬습니다. 

 

그는 학교를 고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캠브리지 과정을 골라 학교를 진학했고 몇몇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나름 성공적으로 Y12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Y13이 되었을 때 과목선정으로 고민하다가 공대를 진학할 계획인 녀석이 수강과목에서 물리를 빼 버리고 맙니다. 

 

본인 말로는 시간표가 맞지 않아서 그랬다 하지만 R의 상식 밖의 행동에 저는 너무 놀라고 말았습니다. 

 

부랴부랴 물리의 필요성을 설명해주고 (R은 대학가서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답니다) 학교에 알아보니 수업은 듣지 않고 본인이 혼자 공부해서 시험만 치르는 방법이 있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Y13 물리를 같이 공부했고 R은 시험에서 A를 받아 원하고 원하던 대학에 진학을 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맙니다. 

 

학교 진학담당자가 R의 서류를 누락하는 바람에 진학 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었고 학교측에서는 그 사실을 마감 며칠 전에야 R에게 통보를 해준 거지요. 

 

빨리 재 신청하라는 독촉과 함께 말입니다. 

 

사실 부모님께서 함께 계셨다면 학교측에 진행상황을 계속 문의 하셨을 것이고 학교에서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대학지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통보 했을 겁니다. 

 

R은 그런 식으로 학교와 면밀하게 연락을 주고 받으며 일을 처리한다는 것도 몰랐고 설사 연락이 온다 하더라도 공부가 바빠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겁니다. 

 

결국 그는 차선의 계획이었던 대학에 진학해 그나마도 잘 된 일이라며 웃는 얼굴로 이곳을 떠났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자세 입니다. 

 

특히 공부에 있어서‘성실한 노력’이란 것은 최고의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그 성실함이 넘치고 넘침에도 이렇다 할 결과를 보이지 못하는 학생들이 존재 합니다. 

 

바로 가야 할 목표가 정확히 서 있지 않거나 가는 과정에서 챙겨야 할 그 무엇을 놓치는 경우입니다.

 

한 해의 중간에 서 있는 요즈음, 가능하면 이른 나이에 학생들의 성향과 능력을 고려한 진로선택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Y13 이 맘때가 되어서 속상해 눈물흘리지 않도록, 매일 매일 땀 흘려 걸어온 그 긴 시간이 결국 도돌이표로 돌아 나와 원점에 다시 서지 않도록 말입니다.

 

레더맨은 그저 인류 역사에 한번 등장했다가 돌아갔으면 충분할 듯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 흘린 땀방울로 지구를 돌고 대륙을 횡단하는 목표가 확실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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