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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인가, 착각인가

0 개 1,834 오소영

 

평생을 살집없는 몸매로 튼실한 부티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젊었을 때는 날씬(?)하다는 부러움으로 그런대로 살만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계속 쪼그라드니 이젠 배곯고 사는 사람같아 챙피하다. 

 

오죽하면 살 드러내놓고 수영복을 못 입을까? 수영장에 안 간지가 몇년 되었다.

 

요즘 젊은 여자들은 괜찮은 몸매에도 다이어트 해야한다고 야단들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인들의 문제가 사회적인 풍조가 된 것같다. 다이어트 식품에 약까지 여기저기 정보가 흘러넘친다. 그 반대의 입장에서 그들을 부러워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들은 알리가 없다. 세상은 그래서 요지경 속이다. 몸이 허약한 나는 허리가 취약해서 늘 말썽이다. 허릿병을 자주 앓는 편이다.

 

“어쩌면 이 병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요?”

 

허리통이 깍지둥치 처럼 굵게 튼실해지면 안 아프다고 의사가 일침을 놓는다. 내겐 바랄수 없는 꿈이었다. 몸이 가벼우니 걷는 것 하나만은 자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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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대엔 산이 좋아 등산을 많이 했다. 하산할 때는 토끼처럼 깡총깡총 잘도 뛰어내려 젊은이들을 놀라게 했다. 

 

등산대신 지금은 골프장을 누빈다. 다리가 건강하다는 자부심으로 가방을 끌면서 골프를 치고있다. 늘 보는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가끔씩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칭찬인지 야유인지 종잡을 수 없는 말을 던진다. 

“어이구 그 연세에 가방을 끌고 다니십니까?”

 

운동삼아 걸으려고 나온 걸 알면서도 오지랖이 넓어 탈이다. 어느때는 측은하게 보는것 같아 기분이 나쁠 때도 있다. 그런걸 신경 쓰다보면 운동을 망친다. 그냥 나 좋아서 하는일. 여기 사람들은 별 관심없어서 편하게 살아간다.

 

며칠전부터 허리가 또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보통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 운동을 나갔었는데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나흘째 되던 날. 드디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날은 처음부터 몸이 가볍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3번 홀을 나가는데 갑자기 팔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려는데도 그걸 잡을 힘도 없었다. 기진을 해서 공을 치기는커녕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난 한발짝도 더 이상 못 걷겠어요”구겨진 종이조각 처럼 주저앉고 말았다. 

 

운동을 포기하고 되돌아 나오는 길이 수 천리로 멀고 아득했다. 죽을것 같다는게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뿔사!. 참을만큼 참아주던 내 몸이 단단히 화가 난 것이었다. 부질없는 자만에 경고가 떨어진 것이었다. 결국은 초기의 병을 더 악화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일어나지 못하는 지경으로 스스로를 몰고갔던 것이다. 처음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건 쉬어달라는 신호라는 걸 무시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리를 했으니 그런 바보짓이 어디 있는가. 꼼짝 못하고 누워있으니 환자일 수 밖에...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맑고 쾌청했다. 사위가 너무 조용했다. 마치 세상에서 날 차버린듯한 고적감.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알 수 없는 분노같은게 끓어 올랐다. 대상없는 어떤 미움이 명치끝을 조여왔다. 그 순간 문득 내 눈앞을 스치는 어느 먼 옛날의 스크린이 있었다. 

 

힘차게 창공을 날으는 새 한마리. 어둑한 방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한 소년이 서 있다. 

 

그는 하염없는 눈길로 날아가는 새를 쫓고 있었다. 몸이 자유롭지못한 소년의 절규가 그 그림속에 담겨져 있었다. 어떤 봉사단체 쎄미나에서 아침 명상시간에 보았던 영상이었다. 

 

날개를 달고 훨훨 자유롭고 싶다는 강한 메세지. 회생할 수 없는 병으로 이렇게 누워있다면 어찌 살아낼 수 있을까? 그런걸 생각하는게 싫어서 바쁜척 허둥대며 살아왔던게 사실이었다.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나름 찜질도 하면서 죽은듯이 며칠을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2월 18일 우리 무지개 시니어 중창단의‘해밀톤’초청 공연이 있다. 큰 일을 앞에 두고 길게 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날짜가 임박해오니 연습을 서둘러야 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출준비를 해야했다. 새털처럼 가볍던 몸이 이렇게 무거울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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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하던 허리가 90도 각도에서 더 펴지지를 않으려 했다. 세수를 하려니 엎드릴 수도 없다. 옷도 입기가 거북했다. 양말신기가 뭐 이리 어려운가. 대수롭지않던 일상의 일들이 이렇게 대단한거였나....(아무것도 투정 하지말고 살자) 모든것에 감사하자는 마음이 절절해 졌다.

 

요즘 서울 친구들이 무슨무슨 수술을 받았느니 마음 무거운 소식을 자랑처럼 전해온다. 우리가 그럴 때이다. 놀랠 일도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받아드린다. 

“다시 살아났으니 좀 더 재미나게 살아야지”“재미같은 소리 하시네 그저 그냥 사는거지요”대화가 그런식으로 시시하다.

 

“목소리 쨍쨍한거 보니 그 나라에서는 늙지도 않나봐 아직도 건강하시구만”내 건강은 목소리로 그들이 먼저 알아차린다. 까짓 허릿병 따윈 알릴 필요도 없다. 한동안 고생을 하고나면 또 다시 건강을 자신하고 골프장으로 나갈테니까. 아직도 젊음을 착각하고 사는 내 자만은 이제 버릴때도 되었는데...

 

지금까지 내 인생 일지에‘겸손하자’는 말은 낙서처럼 많이도 써왔다. 자만할 일은 별로 없었기에 흔히 써보지 못한 말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처럼 위험한 생각. 자만은 그런거라고 멀리하며 살았다. 그런데 주책없이 이 나이에 건강을 자만 하다니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너무 강한척만 하지말고 약한 모습도 보이며 살아야해요”

어떤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실은 자만이기보다 나의 주술임이 진실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희망의 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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