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Ⅰ)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거미집(Ⅰ)

0 개 2,675 박지원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은 그 두 가지 중 교사를 택하고 싶었다. 중력의 힘으로써 격렬하게 충돌되기보다는 중력을 거스르는 듯하지만- 땅이 자신을 갈구하는 듯한 모습으로 죽길 바랬다. 

부우욱. 그리고 노인은, 12월 20일 이후의 모든 일력(日曆)을 손을 들어 찢어냈다.

------------------------- 절취선 ------------------------           
   
올해는 눈이 많이 왔다. 노인의 부인이 묻힌 무덤 위에도, 노인과 부인, 가족이 함께 걸었던 거리 위에도, 노인이 홀로 사는 60년 된 낡은 연립주택에도 허연 눈이 노인의 텅 빈 시간처럼 수북하게 쌓였다. 4층의 오래된 연립주택은 창문이 없는 복도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인은 하늘에서 재처럼 흩날리는 눈발을 지나 3층 복도 끝의 8호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복도의 낮은 벽에는 규칙적으로 조그만 구멍들이 뚫려있었는데, 전쟁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만든 총 구멍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구멍에 서늘한 총열을 들이밀어 붉은 총알을 난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멍인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지 60년 째, 전쟁은 일어날 기미가 없었고, 그 총구멍은 그냥 창문도 없는 복도의 바람 구멍이 되어 세월을 통과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낡은 복도 벽처럼, 노인의 가슴에도 광음(光陰)을 통과하는 구멍들이 생긴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노인의 자식들은 해외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고, 아내는 3년 전에 지병으로 죽었다. 노인은 8호 문을 등지고, 자신 앞에 쏟아져내리는 눈들을 멀거니 보고 있었다. 이내 한숨과 함께, 입고 있던 쥐색 파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열쇠를 찾아냈다. 열쇠구멍. 언제인가부터 문을 열 때마다 열쇠구멍이 뻑뻑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열쇠가 들어가긴 하는데, 잘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간다고 해도 한 번 더 아귀에 힘을 넣어 돌려주어야만 문이 크게 심호흡을 하듯 덜컥, 열리곤 했다. 갑작스레 열린 8호의 문을 통해 노인은 늘 그렇듯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과 방에 높이 차를 두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인지, 신발을 벗은 노인은 항상 자신의 무릎을 크게 들어 방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방으로 들어가면, 늘 그렇듯 퀴퀴한 노인의 냄새와 라면냄새, 김치 익는 냄새가 TV소리와 함께 자신을 덮쳐오고는 했다. 외롭지 않기 위해 늘 TV를 켜놓는데, 그것이 요즘 들어 노인을 조금씩 더 외롭게 만들곤 했다. 색이 바랜 장판을 터벅터벅 걸어들어가, 머리와 천장이 닿을 듯 말 듯한 방에서 노인은 파카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그 옷걸이를 다시 못에 걸어두었다. 노인은 방에 앉아 왁자지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TV를 보다가, TV 앞의 개다리소반 위의 먹다만 라면을 보았다. 면발이 외롭도록 쪼그라들은 라면은, 노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요리였다. 노인은, 부인이 자신이 먼저 가면 어떡하냐며 요리를 가르치려 들 때,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한사코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었다. 부인의 손길을 잃은 냉장고의 음식들은 하나둘 부패하는 가운데 소주들이 길 잃은 유령처럼 들어찼고, 갖은 양념과 식기들로 가득했던 조그만 찬장은 라면이 그득히 쌓여갔다. 

노인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냉장고를 열어 소주를 꺼냈다. 손에 힘을 주어 소주뚜껑을 딴 노인은, 채널을 돌려 낚시채널에 맞추어 놓았다. 한 리포터가 흥분된 목소리로 어탁을 뜨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내 삶으로 저렇게 어탁을 뜰 수 있다면… 노인은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젓고는 이내 소주를 마셨다. 18. 햇빛이 들지 않는 불투명한 창문 옆 벽에 걸린 일력이 오늘의 날짜를 커다랗게 표시하고 있었다. 카아아아. 노인은 소주의 열기를 홀로 가래소리로 삭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음호에 계속>       

11 Great Walks 600여km, 풍광을 카메라에 담다

댓글 0 | 조회 470 | 16시간전
1993년, 낯선 땅 뉴질랜드(New Zealand)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이 나라의 자연이 내 삶 깊숙이 스며들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 환경… 더보기

추파카브라 전설

댓글 0 | 조회 132 | 16시간전
— 공포와 현실 사이,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의 이야기1990년대 중반, 푸에르토리코의 한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 이상한 사건이 있었다. 아침이 되자 농장의 염소와 … 더보기

뜰안의 민들레 꽃처럼 . . .

댓글 0 | 조회 148 | 17시간전
달게 잘 잤는데도 깨어나면 기분이 깔끔하지가 않다. 나만 그런가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거의가 다 비슷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가?어쨌든 또 하… 더보기

마지막 퍼팅의 압박 –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는 법

댓글 0 | 조회 184 | 17시간전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라운드 내내 아무리 좋은 샷을 해도, 마지막 퍼팅 하나로 모든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1미터, 아니 50cm 퍼… 더보기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댓글 0 | 조회 109 | 18시간전
시인 문정희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얼마나 모르고 있는지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별은 그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벌레이거나아무 의도도 없이 나를 가로막는 돌처럼나… 더보기

뉴질랜드 이민 삶 44년을 회고하며

댓글 0 | 조회 608 | 18시간전
1982년, 키위 구두약의 나라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딛다내 글의 변(辨): 나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 글은 44년 뉴질랜드 이민사의 흔적 단면을 기록한 것… 더보기

뉴질랜드 입법부&행정부와 사법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댓글 0 | 조회 402 | 23시간전
예전에 한국의 계엄령 관련 칼럼을 다루면서, 뉴질랜드는 완전한 삼권분립이 되지 않는다는 주제도 잠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일단 3년마다의 선거를 통해 … 더보기

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

댓글 0 | 조회 253 | 23시간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비 오는 조계사를 바라본다. 시내를 오가다 보면 불교신자든 아니든 한 번쯤 들르게 되는 활기를 가진 절이다. 한동안은 절 마당… 더보기

25. 마우이와 태양을 붙잡은 산 – 기스본의 전설

댓글 0 | 조회 87 | 23시간전
기스본(Gisborne)은 뉴질랜드 북섬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은 마오리 부족인 Ngati Porou… 더보기

매력만점의 은퇴부모 투자이민

댓글 0 | 조회 779 | 2일전
COVID-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특별 영주권제도를 통하여 영주권을 받게 된 분들로부터 근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제가 코로나로 영주권… 더보기

호주 뉴질랜드 의대 합격의 분기점: 지금 점검해야 할 시기

댓글 0 | 조회 456 | 2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현재 유학생… 더보기

연주 씨의 카드

댓글 0 | 조회 252 | 2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지적 장애를 가진 연주 씨는 부모와 함께예배에 한 번도 빠짐이 없는 아가씨입니다연주 씨네 집이 이사하여 심방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성탄절이 가… 더보기

2026년 통과된 고용관계법 개정안

댓글 0 | 조회 296 | 2일전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피고용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고용분쟁 시스템 구조를 더 공정하게 만들고, 피고용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더보기

‘취미’와 ‘문제’의 경계선

댓글 0 | 조회 130 | 2일전
- 갬블링 위험 신호 점검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갬블링은 생각보다 가까운 여가 활동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스포츠 결과를 예측하거나 여행 중 카지노를 방문하… 더보기

개똥걱정 말똥걱정

댓글 0 | 조회 114 | 2일전
189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 도시계획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였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물동량이 늘어나자 말(馬… 더보기

6편 – MH370: 사라진 하늘

댓글 0 | 조회 111 | 2일전
“비행기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어떤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프롤로그 - 2014년 3월 8일, 새벽 1시 21분쿠알라룸푸르 관제탑.레이더 화면에서 … 더보기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 및 선발기준 (의대, 약대, 검안대, 영상…

댓글 0 | 조회 220 | 2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각 의료계열 최신 입시 정보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2026년 오클랜드 의료계열 입시 기준 Dean’s Determinati… 더보기

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댓글 0 | 조회 797 | 5일전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이래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조선은 총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조선 시대 … 더보기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 총정리 (의대 약대 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462 | 7일전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2년 (2025년, 2026년)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입시 통계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2026년 입시는 2025년 지원한 학생들을 뜻하며 20… 더보기

약 처방, 이제는 12개월분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댓글 0 | 조회 995 | 10일전

올해부터 바뀌는 오클랜드대 의료계열 MMI 면접방식 (의대,약대,검안대 등)

댓글 0 | 조회 829 | 2026.03.12
의료계열 (메디컬)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최신 정보’를 알고 정확하게 준비를 하는것이다. 필자는 매년 면접관과 입학사정관을 만나며 최신정보를 수… 더보기

피아노의 영혼

댓글 0 | 조회 259 | 2026.03.11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1994년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면서 마침 딸의 권고로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The Piano)’를 감상하였다. … 더보기

인간의 본질적 문제

댓글 0 | 조회 213 | 2026.03.11
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윤회할 주체인 “나”라는 게 일단 본질적 의미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인식이 죽… 더보기

히말라야의 그림자 빅풋과 예티는 존재하는가

댓글 0 | 조회 178 | 2026.03.11
어느 겨울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바람이 눈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누군가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람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러나 분명 두 발로 걸어간 흔… 더보기

나만의 등불 밝혀 내 마음 찾는 여정

댓글 0 | 조회 152 | 2026.03.11
강진 무위사의 ‘보름달 명상 템플스테이’어둠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비로소 빛을 만난다. 추석 보름을 앞두고 차오르던 달빛도 구름에 모습을 감춘 날, 가로등조차 없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