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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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0 개 2,701 박지원
사실 욕망이란 잃었을 때, 비로서 서서히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거기까지 썼을 때,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캡 모자, 닳아빠진 갈색가죽점퍼를 입고 다 헤진 청바지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검은 구두를 신은 사내는, 누가 보아도 거지였다. 당연한 소리지만 거지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욕망을 잃은 인간, 혹은 욕망이 넘쳐나는 인간. 

때마침 욕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기에 나는 그 거지를 예의 관찰했다. 다듬지 않은 무성한 잡초같은 수염이 얼굴에 푸석하니 붙어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어쩌면 나보다 어릴 것도 같은 인상이었다. 거지는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담배를 구걸했다. 모두들 담배는 없는 듯 손사래를 치거나 아예 무시를 했고, 담배 한 개피 가격은 훌쩍 뛰어넘을 커피를 홀짝거리며 담소했다. 이야기를 나누고픈 욕망,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망. 그리고 담배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테이블마다 충돌하고 있었다.

깊게 눌러쓴 모자 탓에 더욱 그늘져보이고 무엇인가 바싹, 건조해보이는 이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이 욕망을 잃는 순간은 결국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순간일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아스라한 연기를 폐부에 깊숙이 찌른 채, 욕망의 실체를 한 줌 가슴에 넣고 욕망을 잠시동안 잃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어느 날 운 좋게도 길에 떨어진 담배 한 보루를 발견한다면? 그는 자신의 욕망을 잃은 채 한 보루 만큼의 시간을 욕망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람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시대에 널찍하니 게시된 패러다임은 결국 “돈”이라는 한 단어로 귀결되어진다. 돈이 아무리 많은 사람도 어찌되었든 돈줄을 꼭 쥔 채 놓으려 하지 않고, 그러기에 돈이 많은 사람으로 불릴 수 있다. 기부를 아무리 자주하는 사람일지라도 돈줄을 쥐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결국 그 돈은 타인으로부터 나온다. 돌고 도는 욕망인 것이다. 돌고 도는 욕망에 의해 좌표가 설정되고, 그 산술적 명제에 따라 주저앉거나 이동하는 사람들. 그 돈으로는 담배를 살 수도 있고, 멋진 휴양지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멍 때리는 시간조차 초조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 단일방향의 지시등을 따라 거리는 늘 러시아워다. 가고 싶지 않은 데도 등 떠밀려 가야하는 것. 그리고 잃기가 거의 “불가피하기에” 실체를 드러내기 어려운 것. 많은 이들이 혼란해하고 혹은 멀찌감치 선 채 초점없이 주시하고 있는 것.
 
거지가 뚜렷한 초점의 욕망을 흔들거리며 내게 왔다. 카페의 햇살이 순간 거지의 숙여진 얼굴에 비춰들었다. 거지는 약간의 신음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어 카페 유리 너머의 태양을 바라보았다. 정오를 약간 넘긴 시각의 햇볕이었다. 거지의 눈은 예상 외로 조금 맑은 듯 보였다. 햇살을 가리키고 있던 눈의 초점이 조금씩 거리로 향했다. 거리를 걷는 일상의 사람들과 자동차들. 파란 하늘 아래 펄럭거리는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광고하는 푸르고 빨간 깃발. 건너편 2층의 조그만 플랫의 발코니에서 술을 마시는 젊은이들. 도심의 공기. 사탕. 모자. 껌. 발자국 소리. 소유.. 같은 것들이 거지의 푸른 눈에 비쳐지고 있었다. 마치 글자처럼. 불규칙한 집합적 배치처럼. 

거지의 푸른 눈은 순간 욕망을 잠깐 잊은 것처럼 보였고,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유하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욕망, 소유하고 있는 것을 지키려는 욕망들이 넘실거리는 거리. 그리고 내 옆에는 육체 외에 그 무엇도 소유하지 못한 듯 보이는 이가 욕망에 이끌려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계속 가만히 내 옆에 서 있었다. 

마침내 자신의 할 일이 생각난 듯 내게 말을 걸었다. You got a cigarettes? Can I get one? Please? 나는 늘 그렇듯 대답했다. Sorry. 거지는 계속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다가 내게 그럼 펜과 종이를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펜과 종이를 빌려주었고, 그는 햇살로 인해 그림자가 조금 길어진 펜으로 종이 위에 커다랗게 썼다. “Help” 그림자에서 글자가 나오는 듯한 느낌의 비스듬한 각도에서 나는 그의 적혀진 욕망을 한자한자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고맙다고 말한 뒤 자신의 욕망이 적힌 단어를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 작은 장난감 총 같은 욕망을 거리에 초라하게 발포하는 것. 실체를 드러내지 못한 욕망을 손에 쥔 채 그는 거리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을 것이다. 그의 욕망은 대부분 무시될 것이다. 혹은 그가 직접 쓰레기통을 뒤져 자신처럼 버려진 반쪽 짜리 욕망에 불을 피워 물겠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들을 한껏 비웃으며- 이 자식들아, 너희들도 나처럼 반쪽 짜리 욕망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잖아, 중얼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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