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3년만이었다. 아니, 2년만이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오랜만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비록 가는 길은 입석이었지만, 그래서 다섯 시간 반 내내 딱딱한 바닥에 앉아서 가야 했지만, 그래도 나는 매우 흥분했다.
막상 도착한 부산 도시는 정작 내가 알던 수도권의 도시 정경과 다를 게 없었지만, 어딘가 정겨운 분위기가 풍겼다. 서울이 도무지 따라갈 수도, 걷잡을 수도 없이 폭주하듯 발전해가는 도시라면, 부산은 조금 더 느긋한 느낌이랄까. 아직 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향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굴림체 간판들이며, 색바랜 빌딩들까지도 모두 사랑스러웠다.
8월의 여름은 더웠고, 걸어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를 안내해주기로 하고 재워주기로 한 고마운 친구와 함께 - 또는 그 친구를 길잡이로 앞세워 -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기로 한 것이 예정이었다. 계획을 세우면 기필코 그대로 수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매우 피곤한 성격인지라, 첫날부터 짐을 내려놓자마자 향한 곳은 해운대였다. 바닷가! 10년 가까이 바다에 둘러싸인 나라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와 창 밖에 바다며 부둣가를 두고 살던 나는 무척 해변이 고팠던 것이다.
바닷가에 앞서 들른 곳은 해운대의 재래시장이었다. 어릴 적부터 방랑벽(?)이라고 해야 하나,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던 부모님 말씀대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구경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걸으면서 물건도 구경하고, 건물도 구경하고, 사람도 구경하고. 이것저것 사기도 하고, 덕분에 손엔 짐이 하나 둘 늘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무화과를 하나씩 사서 그 자리에서 반으로 갈라 우적우적 씹기도 했다.
일부러 가장 맛있는 것, 가장 기대되는 건 마지막까지 아껴뒀다가 즐기는 게 제일 좋다고 했던가.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일부러 천천히 시간을 끌며 시장을 구경하고, 음료수를 마시면서 앉아 있었던 것은. 바다를 보게 되는 순간 느낄 카타르시스를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고 싶어서.
그리고 드디어 향한 바닷가는, 그러나 아뿔싸. 사람으로 가득가득 차 있었다. 겨울의 회색바다, 마치 아카데미 상을 받은 멜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칙칙하고 쓸쓸한 - 하지만 조용한 - 해변가를 기대한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특히 주변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은 무한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난 아이들을 싫어한다. 아니, 무서워한다).
옆에 있던 친구는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할 뿐이었다.
“휴가철이니까.”
아아, 이럴 수가. 납득하면서도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그래도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는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일념으로 기꺼이 신발을 벗고 모래에 발을 묻었다.
무덥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거짓말임을 온몸으로 주장하듯 모래사장은 차가웠다. 단숨에 원기 회복, 이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마저 나올 정도로. 용기를 얻은 나는 그대로 바지자락을 걷어 올리고 물가로 텀벙텀벙 걸어갔다. 그리고 파도가 덮쳐와 냉큼 뒤로 도망갔다.
적당한 안전 거리를 확보하고 발목까지만 담그는 내 소심함과는 달리 피서객들은 잘만 물에 온 몸을 던졌다. 어린이, 외국인, 아줌마와 아저씨들도 모두. 파도는 뉴질랜드의 것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격렬하게 사람들에게 물을 뿌렸다.
바다는 상냥하다고 생각한다. 뛰어드는 모든 이들을 받아주니까.
질리도록 바다를 즐기고 돌아서니, 벌써 밤이었다. 그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나는 만족했다. 모처럼 향수병을 충족시킨 기분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