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의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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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버릇

0 개 1,640 박건호
사실 오늘은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전화와, 제 생일을 알고 있는 한국 친구들 몇 명과 메세지 몇 통을 주고 받고는 평소처럼 책을 보고 산책을 하고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영화를 보며 커피를 마셨더랬지요.

저도 물론 과거에는 친구들과 한껏 술을 마시고 거리를 쏘다니기도 했고, 몇몇 여자친구들이 준비해 주었었던 깜짝파티들에 나름대로 감동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일 파티라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과거를 기념하는 인간들의 날이라고.

그러니까,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몸은 자꾸 조금씩 바빠지고, 머릿속은 정작 본인이 태어났을 때의 순간을 기억도 못하는데, 굳이 그것을 축하하고, 또 축하받아야 할 이유가 있나 싶어진 겁니다. 결국 인간이란 섹스를 통해 세상에 던져지고 섹스를 통해 번식을 하는 동물의 일종에 불과한 것인데 말이죠. 번식을 축하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일까요? 굳이 지배의 수단이 아니더라도, 오랜 세월로부터 인류에게 축적되었을, “축하” 하는 버릇은 저에게 있어 참으로 신기합니다. 탄생의 순간 그 자체는 물론 신비롭고, 너무도 경이로워 분명 기념할 만한 일이지만, 굳이 음력과 양력을 따져가며 1년이 지나, 2년이 지나, 케익 위의 촛불이 하나하나 늘어가는 것. 그 앞에서 생일을 맞은 사람과의 기억들을 공유하고, 태어나줘서 고마워,하며 미소짓는 것. 제 생각에는, 꽤 이상한 일입니다. 단순히 하루쯤의 여유라고 치부하기에는 탄생의 순간은 너무 무겁고, 지나치자니 조금 아쉬워 축하라는 애매한 행위를 하는 걸까요?

제가 조금 삐뚤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탄생 이래의 인생이라는 것은 희망을 얻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고민덩어리 아니었던가요? 그 고민의 방법들은 인생의 굴레를 이루고, 인생의 굴레들은 실타래 벗겨지듯 훌훌, 선을 사방으로 흩뿌려냅니다. 찰나의 선들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엮어내고,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뽐내기 위해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갖은 치장을 다합니다. 그 갖은 치장을 남들이 인정해주는 순간 “성공”이라 표현되고, 성공 그 이후에 (이전에도) 또다른 사적인, 혹은 공적인 고민들은 무거운 초침소리에 얹혀져 인생을 똑딱똑딱 메워갑니다. 그건 태어날 때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아의 무의식중에 갖는, 인간의 의식적 고뇌가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이라는, 현실에 던져진 하나의 나약한 인간. 그래서 아기를 볼 때마다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안쓰럽기도 한 것일까요. 인간의 수많은 고민들을 목격하고 체화시킬 현실의 아기…

그렇게 아기였던 제가 태어난 지 25년이 되었네요. 그리고 25년 전 아기였던 한 인간이 칼럼 마감일을 넘겼기에, 한밤중에 이렇게 되먹지 않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세상은 사실 웃기는 겁니다. 70억 명의 지구인들. 1년에 한 번씩 누군가는 축하를 받기도, 누군가는 잊어버리기도, 누군가는 일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버릇같은 피아 간의 예절보다는.. 지난 기억을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그 흔적의 아카이브들을- 소처럼 우물우물 반추하는 그런 하루를 보내는 조용한 의식의 날인 겁니다.

“태어난지 겨우 몇 주일인 이웃집의 갓난아기. 밤낮없이 그치지 않고 울어댄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 어리고 가냘픈 울음 소리에 내 가슴 떨리다가 안심한다. 그것은 이제 막 존재를 강요받은 허무가 내지르는 항의의 외침이니.”

일전에 한 번 인용했던 적이 있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짧은 글, 긴 침묵>에서 발췌한 구절입니다. 어어 그러니까 전, 생일을 축하받는 게 이상합니다. 어어어어 그러니까 전,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도, 때때로는 슬퍼지는 겁니다. 굳이 기억나지 않는 시간과 마주하게 만드는 세상이, 그리고 그 관습으로 인해 버릇처럼 평소보다 생각이 많아 지는 저의 모습이, 슬픕니다. 그저 솔직해지고 싶은 겁니다. 유치하게 비뚤어진 치기 어린 불만이, 제 마음의 비늘을 긁어내고 있습니다. 생일, 이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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