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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게 잘 잤는데도 깨어나면 기분이 깔끔하지가 않다. 나만 그런가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거의가 다 비슷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가?
어쨌든 또 하루를 선물로 받았으니 기쁜 일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소중한시간 헛되이 보내지 말자는 소박한 바램이다. 한결 맘이 가벼워진다.
하루의 충전을 하듯 핸드폰을 연다. 라디오 방송의 경쾌한 음악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멜로디와 함께 흘러나오는 남자 진행자의 목소리가 정겹다.
고국의 오전 9시 생방송을 여기서는 재방송으로 이른 아침에 듣는다.
보통사람들 하루가 시작되는 분주한 아침 풍경이 다채롭고 재미있다. 음악도 좋지만 사람들 살아가는 사연을 들으며 공감하는게 더 좋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는 젊은 엄마는 가슴 설레면서도 걱정이 많다. 아이가 놀기만 좋아하고 아직 한글을 다 깨우치지 못했다는 사연이다. 다 알고가면 학교생활이 재미 없을텐데 . . . 조바심 하는 앳된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린 아들과 신청곡을 함께 들으며 잘 해보자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지 않을까?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풋풋한 풀향기가 풍겨오는듯한 느낌이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 마루끝에 새 운동화 올려놓고 입학식 기다리던 내 첫 딸애의 영상이 떠올랐다. 마치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축구학교에 가게된 손주를 걱정하는 할머니. 축구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넘어지고 다치고 고생할 손주를 벌써부터 아파하시는 할머니 마음이다. 엄마의 따뜻한 밥대신 기숙사 생활은 또 어떨지 . . . 속내를 감추려고 자녀들 몰래 위로의 신청곡을 청했단다. 활기찬 피아노 교향곡이 흘러나오고 진행자의 부드러운 음성과 위로의 멘트가 따뜻하게 전해진다.
출근길. 길막힌 짧은 시간에도 음악으로 달랜다는 사람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과일을 진열하면 과일들도 좋아서 향을 짙게 내뿜는다는 과일가게 아저씨의 입담도 재밌다. 사연도 가지가지. 사람사는 일들이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했다. 매일 생존경쟁의 치열한 싸움터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잘들 살아가고 있구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기쁨과 아픔을 공감하며 부드럽게 달래주는 이 아침 방송이 참 좋다. 늘 감동으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느낌있는 건전한 내 오감이 너무 고마워 다시한번 감사를 한다.
창문을 활짝열고 상큼한 바람과 맞서본다. 얼굴을 스치는 가을바람이 차다못해 맵다. 드러난 팔뚝에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듯 정신이 번쩍든다. 엊그저께 깎은 잔디밭에 벌써 한뼘이나 자란 민들레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더러는 노란 꽃을 피워 보란듯 자랑을 하고있다.
너는 누구를 위하여 그리도 부지런히 피어 웃고있니? 얼마 안있어 모진 칼날이 또 들이닥칠텐데 . . .
귀청을 때리는 일상의 소음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의 소리들이 반갑다. 희망찬 생명력으로 느려지는 사람들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주방 창문너머로 어제와 다르지않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인도 남자의 안반만한 엉덩이가 하늘을 치솟아 있다. 손바닥만한 뜨락에서 무얼 심고 만지는지?
그런 모습으로 엎드려 매일아침 시간을 보낸다. 푸른잎이 너울거리긴 한데 꽃도 안 피고 무슨 식물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한 쪽으로 옥수수같은 긴 이파리가 바람에 어지럽다. 옥수수철이 다 지났는데 옥수수 비슷한 것도 열리지 않는다. 보고 또 만지는 그 대단한 정성이 때로는 치기로 보이기까지 한다.
남자는 일을 가는지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나와서도 한참이나 그 쪽을 바라본다. 아쉬운듯 발을 떼는 모습이 매달리는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서는 영낙없는 아빠같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해도 비호감인 남자에게 저토록 따뜻한 애정이 있다니 . . . 저녁 퇴근길에도 어김없이 그 쪽을 한참이나 보다가 집안으로 들어간다. 젊은 여인과 살고있는 충분한 설명이 되고도 남을만하다.
파트너 여인은 아담하고 곱상한 인도인이다. 너무도 어울리지 않아 미녀와 야수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녀를 본 것은 꽤 오래전이다. 그 집에는 노파가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아침 적당한 시간에 왔다가 돌아가는 할머니의 도우미였다. 어느때는 열살 안쪽의 긴머리 여아를 데려오기도 했다. 아이는 밖에서 혼자 심심해서 몸을 비틀다가 엄마와 함께 돌아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인은 안 보이고 곰같이 크고 시커먼 남자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어찌된 일인지 그녀가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몇번 저녁 산책길에서 어울리지 않는 한쌍의 남녀가 그들인 것을 보고 확신을 했다. 그녀는 나와 마주치자 살짝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듯 멀어졌다. 오며가며 먼 발치에서 나를 본 모양이다.
그 집 칭문에는 커튼대신 남자의 커다란 상의가 거꾸로 매달려있다. 처음에 사람이 물구나무를 선줄 알았다. 시커먼 청색과 붉은빛이 도는 체크무늬 두개가 매일 번갈아가며 그렇게 걸려있다. 남자가 거친 노동을 하는 사람인가? 밖에 어엿한 빨래줄도 있는데 햇볕 좋은날에도 여전했다. 다른 옷가지들은 어떻게 말려입는지 그게 늘 궁금하다.
남자가 출근을 하고나면 여인은 늘 핸드폰을 귀에 대고 통화가 길다. 한 손으로 집안 일을 하고 있는게 일상적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저토록 통화가 길다면? 추리를 해본다. 누군가가 돌보고 있을 어린 딸이 걱정되어 맡아주는 사람과의 통화라면 이해가 되었다. 사랑하는 아이를 떼어놓고 안부와 부탁할 말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자식을 낳아본 여성이라면 본능적으로 느끼는 어미의 심정이다. 마음이 짠해진다.
남의 생활을 훔쳐보는 것 같아 안 보려고 하지만 커튼도 없는 집 안 풍경에 시선이 가는건 어쩔수가 없다. 분홍색 시트의 침대가 왜 거실에 나와있는지? 그녀는 거기에 걸터앉아 무슨 일인가를 하고 오후엔 주로 다림질을 한다. 덜 마른 셔츠를 말려다리는 모양이다. 남자의 입성이 처음 볼때보다 훨씬 깔끔해졌다.
눈부시게 하얀 런닝차림으로 밖을 서성이는 모습이 한껏 여유롭다. 그 나른한 행복을 파란 잎새들과 나누고 있음을 표정에서 읽어낸다.
사실 기막히게 화단 예쁜집은 그 집 뒤에 따로 있다. 집 주인은 사철 반바지 차림의 배불뚝이 남자다. 나온 배를 안고 무겁지도 않은지 온종일 개미 쳇바퀴돌듯 집을 드나든다. 예쁜 돌로 꾸며진 화단에 배치해서 심은 꽃들이며 솜씨가 남달랐다. 핥아놓은것 처럼 깔끔하고 작아도 아담해서 여운이 있다. 가시달린 선인장 키가 지붕에 닿아있다. 마치 꽃을 들고 서서 집을 지키는 수문장 같다. 아름다운 정서를 가지고 사는 노인에게 외로움이란 얼씬도 못할것 같다.
낡은 야구모자 밑으로 하얀 단발머리 펄펄 날리며 휘젓고 다니는 남자는 앞줄 끝동에 산다. 그의 앞마당은 온갖 잡동사니들로 늘 어지럽다. 무궁화 꽃이 화사한 펜스 너머로 지나가는 나만 보면 반갑다고 항상 손을 흔들어준다.
핑크색 낡은 소형차는 그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멀쩡했던 차가 어느날 보면 찌그러진채 서 있다. 사고를 당했으면 사람은 괜찮은지 궁금했다.
한동안 그 집 마당에 서있기만 하던 차가 어느날 보면 깔끔한채 나다닌다. 그런가 하면 얼마후에 바퀴마저 빠져있어 폐차직전으로 망가져 있다. 버렸나하면 아무렇잖게 잘 굴러다닌다. 헌 차를 가지고 요술을 부리는것 같다. 요즘은 문짝만 검은색으로 바뀌어서 이색적이다. 빛바랜 핑크색 문짝이 망가진채 펜스 귀퉁이에 걸쳐있다.
마당에 어지러운 것들은 자동차 파편들이다. 한쪽으로 기울어 서있는 때묻은 비치파라솔이 그래서 더 돋보인다.
며칠전. 외출을 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쩐 일인지 요지부동 말을 듣지 않았다. 급한김에 그 집으로 뛰어갔다. 다 낡은 야구모자는 집 안에서도 쓰고 있는지 모자밑으로 예의 하얀 머리카락을 날리며 천천히 나왔다.
배터리를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AA 에 전화를 걸까 망설이는데 그가 해 주겠다고 걱정 말란다. 내일 아침에 보자며 배터리를 집으로 들고갔다. 다음날 차 키를 들고 나가보니 들고있는 배터리가 어제 그 헌것 그 것 같았다. 가격까지 물어보고 새 것을 주문했는데 뭐야? 기분이 찜찜했지만 끝내 묻지 않았다. 나사를 조이는 손끝이 야물지가 않았다. 자세히보니 가늘게 손이 떨렸다. 눈치는 빨라 나를 보더니 히죽 웃는다. 민망한 것 같았다.
당신 몇살이냐고 농담조로 웃으며 물었다. 올드 어쩌구 나이많은 척을 하더니 일흔두살 이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 나이를 들은 그가 깜짝놀라며 뒤로 넘어가는 시늉을 했다. 당신은 아직도 영거라고 말해주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코로나때 AA 센터에서 배터리를 교체해주며 220불을 받아갔다. 200불이라고 들었기에 20불은 벌었구나 50불짜리 지폐 4장을 건넸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50불짜리 하나를 내 손바닥에 놓았다. 의아해서 바라보는데 다시 하나 그리고 또 하나를. 마지막 한장만 자기 손아귀에 쥐고 오케이를 한다.
이 일도 그의 놀잇감이었던가. 충전해 준 수고비만 받은 것이다.
나같은 문외한에게 그냥 넘어가도 알턱이 없다. 20불도 좋았는데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이웃에 그런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 . .
그의 집 거실 한벽은 그림 액자로 채워져 있었다. 전부 하늘을 날고있는 비행기였다. 자기가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관심을 보이자 설명을 해 주는데 그 눈빛이 빛났다. 중앙에 젊은 여인의 초상화도 걸려있다. 인물이 제법 있는 인상이었다. 궁금한데 누구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주변에 어지러운 공구가 아니라면 화실로 착각할만 했다. 지금도 그리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후줄근한 점퍼에 맨정강이로 사철 사는 그가 화가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긴머리 나풀거리며 다니는 모습이 어쩐지 예술인 누구를 닮았다고 생각 했었는데 . . .
지난 시간을 추억으로 묻어두고 현재의 삶에 충실한 70대 노인. 그 무엇을 한들 어떠리. 잘 살고있으면 되었지. . . .
탐스럽게 핀 무궁화 꽃들이 그를 어루만지듯 환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주변에 없는 상수리나무 마른잎 하나가 창문밖에서 바람에 휘둘리고 있다.
갈곳 몰라 떠돌다가 거미줄에 걸려 몸부림을 치고 있다. 마치 도망치려고 허둥대는 새의 몸짓같다. 즐길거리가 생긴 아이처럼 나는 한참이나 내다보았다.
문득 우리 인생도 저런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거미줄같이 복잡한 세상. 끊임없는 경쟁사회에서 몸부림을 치며 살아내야 하는 삶. . . .
가을이 깊어지며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나이 반백을 넘겼을 때 충분히 어른인줄 알았는데 아직도 배울게 참으로 많다.
민들레꽃의 질긴 삶처럼 살아가는 이웃들. 나도 뒤돌아보지말고 앞만 보고 살 것을 다짐한다. 희망은 앞에만 있기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