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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성인 정신과에서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수많은 환자들의 회복 과정을 함께했습니다. 그 소중한 경험을 통해 저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정신건강 문제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완전한 회복이 어려울지라도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가족과 치료팀의 협조가 있다면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직업, 사회적 계층, 연령, 성별, 인종을 아우르는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정신건강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외로움의 벽을 허무는 신뢰의 씨앗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이나 남들과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기 힘든 환경에 놓여 있거나, 그런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가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경험하며 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환자분들을 만나게 되면, 저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환자와의 신뢰를 쌓는 것입니다. 저와의 첫 만남을 통해 환자분들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비록 죽음과 같은 어려운 주제일지라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고 문제에 대한 또 다른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는 환자의 이야기에 대하여 섣불리 조언하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 좋은 조언이나 충고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아직 문제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손쉽게 내뱉는 말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청: 소통의 문을 여는 열쇠
환자들이 정신과나 정신병원, 이전 치료자에 대한 불평이나 가족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때, 저는 법적으로 긴급한 처리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환자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느낄 때까지 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제가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대부분 그들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 주며,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을까요?” 하고 되묻습니다. 그 효과는 상상 이상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3자인 저에게 개방하기 시작하고,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어려움이 자신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으며 적절한 치료를 통해 충분히 조절되고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립을 넘어 연결로: 경청이 만드는 변화
경청을 통해 환자는 더 이상 자신의 생각에 갇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고의 유연성을 찾게 되며, 비록 정신질환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한, 환자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정신질환에 걸린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오래전, 중독자들을 회복을 돕는 비영리 재단에서 상담사로 일할 때 만났던 한 한인 아버지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제가 만들어 직접 진행했던 경청의 기술을 배운 뒤, 청소년기부터 거의 대화가 없던 20대 자녀와 처음으로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두 시간의 경청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자녀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무지했는지 처음으로 깨달았고, 아들의 아픔이 전해져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경청이란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돕는 매우 중요한 도구이자 서로를 연결해 주는 통로입니다. “사람의 입은 하나요, 귀는 두 개다”라는 옛말처럼, 경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움터 회원
임동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