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1 2,859 오소영
얼마 전 점심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 갔었다. 한식에 맞는 깔끔한 기본반찬 서너가지와 작은 뚝배기에 걸죽한 강된장이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웬 강된장? 그것을 보는 순간 입맛 잃고 사는 요즈음. 불현듯 호박잎 쌈이 생각나고 입안에 군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그런걸 줄리야 없고 상추쌈이라도 나오려나 기대했는데 그것은 그냥 반찬의 일부였다. 허다못해 찐 양배추라도 나왔으면 몇쌈 쌈장을 얹어 아쉬움을 달랬을텐데.... 실망스러워 하마터면 투정이 나올뻔 했다.

엇그제 외출했다가 비닐봉지에 두둑하게 담아놓고 파는 호박잎을 발견하고 거침없이 사 들고 들어왔다. 그것을 만나서 반가움 중에 손녀 순이의 얼굴이 큼지막히 떠올랐다. 나 만큼이나 호박잎 쌈을 좋아하는 그 애. 세살박이 어린애로 이민 와 살면서 어디서 그런걸 먹어봐 그렇게나 좋아하는지? 우유 빵 보다는 김치 깍뚜기 겯드린 밥이 좋은 순수 한국통 그 애. 요즘 오빠와 둘이서 밥 해먹고 학교 다니느라 스스로 살림 익히며 일찌감치 현실 깨우치는 일이 고달프기도 할텐데 한마디 불평도 없이 잘 꾸려가는게 여간 대견하고 신통한게 아니다. 지금쯤 엄마 손맛이 많이도 그리울텐데.... 이 할머니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나마 김치 깍뚜기 담고 더러 밑반찬 챙겨주는 정도라도 되니 다행이긴 하지만.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그 애들에게 부모 대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간절한 기도(祈禱)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했던 애가 특별히 좋아하는 호박잎으로 대박을 치게 생겼으니 내가 더 신이난다. 고기는 먹기가 쉬운데 야채가 그립다고 하던 말도 생각났기에....

그러나 호박잎을 손질하려고 쏟아 놓는 순간. 이 실망스러움을 어쩔까. 그것은 너무도 크고 뻣뻣해서 영 먹을거리가 못 되는 것 같았다. 파는 것이기에 더러는 버릴 것도 섞였을 줄 짐작은 했지만 부드러운 속잎파리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거친 잎으로는 비늘 없는 민물생선의 미끈거림을 닦는데 쓰느 것은 보았지만 그래도 쌈으로 먹을 수 있을는지 안타까웠다. 급한 사람이 샘 판다고 하던가. 그냥 버리기엔 미련이 너무 많아 해 보기로 한다.

어떻게든 먹을 수 있도록 해 보려고 공을 드려 껍질을 벗기는데 질긴 껍질이라 잘도 벗겨진다. 깨끗이 씻어 찜솥에 넣고 시간을 넉넉히 주어 푹 쪄 보았다. 아삭아삭하고 껄끄럽지만 정성드려 끓여 본 강된장이 아까워 몇쌈 먹어보았는데 이미 쌈으로 먹을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나서 입 안에 질긴 섬유질이 뭉쳐 넘어가려 하질 않는다. 모처럼 뱃속이 파랗게 물이 들도록 맛있게 먹어보려 했었는데... 이건 아니야.

나도 나지만 손녀에게 점수 좀 따려던 내 생각은 그냥 접어야하나? 워낙 좋아하니까 웬만큼 아니어도 참아주었으면 좋으련만. 나도 몇  쌈 먹었으니 치아 좋고 위장 튼튼한 애들은 먹을 수 있는거라고 시치미를 떼볼까. 요즘 애들은 개성이 강해서 아니면 그것으로 끝일 뿐 타협의 여지가 없기에 공연히 늙은이만 안타깝다. 그리도 좋아하는 것을 줘야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을 만들어가면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래도 그냥 치워버리기엔 안쓰러움이 남아 아이에게 먼저 귀띔을 해 보기로 한다. “순아 호박잎이 생겼는데 너 어때?” “어머머머 할머니 너무너무 해피....” “그런데 많이 자라서 크고 질기던데 괜찮겠어?” “제 위장이 워낙 튼튼하잖아요 저 정말 그거 좋아하는데요” 오케이!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다 진작에 그랬을 것을. 미련한 머리를 몇대 쥐어박으며 혼자 싱겁게 웃어본다.

그렇게 좋아하는 그 애에게 옛날 할머니가 내게 해 주시던 그런 맛이 진짜인데 이건 너무 엉터리가 아닌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때의 맛을 낼 수 없는 것은 오늘 날 영악스럽게 편리해진 전자제품의 덕이다. 불 때서 밥짓는 두툼한 가마솥에서 뜸드리는 밥위에 얹어 쪄내던 밥냄새가 베이고 더러 밥풀도 붙어있던 쫀득한 그 맛을 지금은 따라 할 형편도 재주도 없으니 말이다. 찜솥에 깔끔하게 찌긴 했어도 맛의 차이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보리밥에 삭힌 특별한 된장으로 정성껏 끓인 강된장을 위로삼아 아쉬운대로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큼직한 호박잎에 쌈을싸서 볼이 터지게 잘 먹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보며 더없이 행복한 이 시간. 할머니의 마음도 함께 싸주면 얼마나 좋을까,
참새한마리
어디서 호박잎을 용하게도 구하셨네요. 손주분이 결국은 잘 드셨나요?? 저희는 호박잎은 못먹어도, 쌈장을 집에서 만들어서 상추를 비롯한 각종 푸성귀에 가끔 먹는답니다. 그맛은 정말로 맛있지요. 쌈으로 밥을 먹게되면 항상 정량보다 더 먹게되어서 배가 터질것처럼 되버리는게 흠이지만요. 정감있는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요~

그렇게 산다. 우리는 지금...

댓글 0 | 조회 2,020 | 2013.11.26
옆집의 ‘베티’ 할머니가 휠체어로 외출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쓰럽다. 세상을 넓게만 살려는 듯 마냥 뚱보가 될 때부터 불안했다. 언… 더보기

빨간 송편

댓글 0 | 조회 2,303 | 2013.10.23
품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매서워 아직도 나는 겨울을 살고있는데 엊그제까지만 해도 시커멓게 검던 묵은 나무가지에 분홍 벗꽃이 화사하다. 끊임없이 질척거리던 날씨. … 더보기

그들의 행 불행을 사람들이...

댓글 0 | 조회 1,641 | 2013.09.25
편지함에 꽂힌 색다른 전단지를 뽑아들면서 어느분의 안타까운 마음에 공감했다. 고양이를 찾는다는 전단지였는데 새하얀 몸털에 얼굴 반쪽만 검정털로 특징도 유난스런 고… 더보기

가슴 시린 사람들

댓글 0 | 조회 2,224 | 2013.08.28
남섬의 폭설 소식과 함께 사나운 비바람 앞세워 겨울이 깊어만간다. 까짓 추위쯤 아랑곳않듯 맨살을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자랑이라도 하는양 나다니는 꽃띠 아가씨들에겐 … 더보기

한복 외교 2013년 7월 13일

댓글 0 | 조회 1,933 | 2013.07.24
잔치 전날과 소풍가는 전날엔 으례 설렘이 따른다. 우리에겐 공연 있는 전 날이 잔칫날을 앞둔 설렘으로 잠을 설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고 오늘 … 더보기

포화(砲火) 속에서 찾은 즐거운 추억

댓글 0 | 조회 1,651 | 2013.06.25
6.25전쟁. 한창 봉오리진 내 아름다운 사춘기의 꿈을 몽땅 짓밟아 놓은 어둠의 세월. 피난민으로 정처없던 혼란속에서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을 맞아야했던 처절한 슬… 더보기

‘피죠아’의 계절에

댓글 0 | 조회 2,613 | 2013.05.28
머리 다듬기를 관심마져 져버린듯 ‘미용실’ 가기까지 꽤나 망서려지는 게으름. 그 과정의 시간들. 기다리는 무료함이 짜증나서 늘 모자속에 가두…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노르웨이) 2편

댓글 1 | 조회 2,054 | 2013.04.24
그동안 가방 차지만 하던 두툼한 파카가 드디어 빛을 보는 날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 되었다는빙원의 한 자락에 섰을 때. 그 하염없이 펼쳐진 옥색의 빙하를 …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노르웨이) 1편

댓글 0 | 조회 1,973 | 2013.03.27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밤새 북쪽으로 올라 간 페리(D. F. D. S WAYS)에서 아침을 먹고 …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덴마크) 편

댓글 0 | 조회 1,768 | 2013.02.27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 나라가 서로 자신의 나라가 …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스웨덴)편

댓글 0 | 조회 2,573 | 2013.01.31
실야라인(silja line) 크루즈의 선상 뷔페식사 분위기가 더 없이 푸근하고 즐거워 피곤한 여정에 달콤한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낯선 음식을 맘껏 두루 맛보는…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핀란드)편

댓글 0 | 조회 1,914 | 2012.12.21
‘러시아’를 떠난 고속철이 질펀히 깔린 밀밭 사이를 힘차게 달린다. 어디쯤 국경이 있었을텐데 친구와 밀린 수다 좀 떨다보니 벌써 &lsquo…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러시아(상트 페테르 부르크)편

댓글 0 | 조회 2,063 | 2012.11.27
모스크바에서 항공편으로 한 시간 반쯤. ‘상트 페테르 부르크’에 도착했다. 170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지어진 이…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러시아(모스크바) 편

댓글 0 | 조회 1,925 | 2012.10.25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감은 없어지고 의욕이 있어도 매사에 겁부터 앞서는걸 깨닫는다. 여행계획을 세운지 삼년만의 긴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어느날. 인천공항에서 … 더보기

미나리, 미나리 강회

댓글 1 | 조회 2,466 | 2012.09.25
지겹도록 비가 내려 지루하기만 하던 한 겨울. 그래도 그 비 덕분일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원 줄기에 마냥 나긋하게 자란 미나리를 만나니 반갑다. 그 것을 보는 … 더보기

여자는 예뻐지고 싶다

댓글 0 | 조회 2,648 | 2012.08.28
몸에 탄력을 잃으니 윤끼도 사라지고. 머리카락도 변변찮아 매만져봐야 그렇고 그런 모양새. 미용실 가야할 의욕도 잃은지 오래되었다. 어느날 오래 벼르던 끝에 찾아간… 더보기

마지막 건배

댓글 0 | 조회 2,267 | 2012.06.27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하루 600만명이 맥주, 소주 1800만병을 마신다는 한국의 요즘. 삶이 고달퍼 마시고 취해서 잊… 더보기

어느 이민 남자의 비애

댓글 0 | 조회 3,901 | 2012.05.22
불황의 수렁은 하염없이 깊어만 가는가? 주변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교민들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신천지를 찾아 보따리를 끌고 꿈에 부풀어왔던 사람들의 돌아가… 더보기

그러시면 안돼죠

댓글 0 | 조회 2,358 | 2012.04.26
“엄마, 이모한테 전화 좀 드려보세요.” 언제나 장난끼 넘치는 응석조로 전화 해 오던 한국의 딸아이 목소리가 오늘은 영 아니었다. (무슨일이… 더보기

그날, 버니(Burnie)에서

댓글 0 | 조회 2,474 | 2012.03.28
크루즈 중에 배에서 내리는 날은 언제나 바쁘다. ‘타스마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땅이긴 하지만 육지 밑으로 외떨어진 … 더보기

‘시드니’ 그리고 ‘다이아나’

댓글 1 | 조회 2,723 | 2012.02.29
잠에서 깨일 때마다 이층침대 머리맡 창밖을 내다보면 시커먼 바다. 그 검푸른 물결을 가르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속을 달리기만 하는 배. 항상 늦잠이 달아 잠뽀인 … 더보기

Happy new year

댓글 0 | 조회 2,551 | 2012.01.31
2012년. 첫날 새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happy new year_” 언제나처… 더보기

12월의 노래

댓글 0 | 조회 2,766 | 2011.12.23
‘하늘을 쳐다보며 사-뿐 귀에다 손을 대보라 구름이 방긋 웃는 소리 고요하게 들린다.’ 밝고 맑은 꿈을 꾸던 어린시절. 푸른풀밭에 누워 드넓… 더보기

현재 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댓글 1 | 조회 2,860 | 2011.11.23
얼마 전 점심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 갔었다. 한식에 맞는 깔끔한 기본반찬 서너가지와 작은 뚝배기에 걸죽한 강된장이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웬 강된장? 그것을 보… 더보기

그 벗꽃 길, 그리움이 있다

댓글 0 | 조회 2,831 | 2011.10.27
엊그제만 해도 죽은듯이 다소곳하던 헐벗은 벗 나무에 뽀오얀 꽃봉오리들이 툭툭 터져 화사한 꽃을 피워 웃고 있다. 아직은 어려 가녀린 몸매지만 버겁도록 무겁게 꽃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