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다녀와서는 얼큰한 것이 먹고 싶다고 한다. 김치 고추장 매운탕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연 한국인이 찾는 이 얼큰한 맛은 무엇일까? 누구나 쉽게 짐작이 가겠지만 우리는 고추의 얼큰한 매운 맛에 길들여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인은 민족성만큼이나 순한 매운 맛을 즐기고 있다. 아주 맵지도 않으면서 입안이 개운해지는 순한 매운 맛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고추는 원래 우리 채소가 아니었지만 사백여년 전에 서양에서 전래되어 우리의 김치 고추장 음식문화와 어우러져 이제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고추는 즐기는 사람에 따라 매운 정도가 달라지는 데, 한국에서는 순한 매운 맛, 매운 맛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스코빌 유니트 (Scoville Units)라는 아주 세분된 수치로 매운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고추는 종류가 무척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강색 고추로부터 노랑 자주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형태와 크기도 다양해서 작고 둥근ㆍ가늘고 긴ㆍ크고 종 모양으로 균형 잡힌 것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 모든 게 다 고추다. 이름도 가지각색이라 파프리카, 레드 페퍼, 캡시컴 (Capsicum), 칠리 등 나라마다 지역에 따라 무척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다.
이러한 매운 맛을 한국인 뿐 아니라 스페인 멕시코 인도 중국 등 전 세계 인구의 1/4 정도가 즐기고 있다. 또한 매운 맛을 싫어하는 유럽인과 일본인들은 맵지 않은 커다란 파프리카 (Paprika, 착색단고추)를 개발하여 맵지 않은 고추 맛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고추는 캡사이시노이드 (Capsaicinoids)라는 매운 맛의 성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성분은 종류가 많아서 서로 다르게 매운 맛을 내고 있다. 어떤 성분은 혀의 안쪽을 자극하고, 또 어떤 것은 혀의 한 가운데를 강타하며, 그리고 어떤 것은 입술을 자극해서 입 주위를 얼얼하게 만든다. 이러한 성분들은 고추마다 다 들어 있지만, 고추의 품종에 따라 어떤 성분의 많고 적어서 서로 다른 매운 맛을 만들어 내게 된다. 특히 입술을 맵게 하는 고추는 불쾌한 감이 들어 실어하는 사람이 많다.
고추를 먹게 되면 이 매운 성분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극하여 뇌로 하여금 흥분전달물질을 만들게 함으로써 기분을 좋게 만들다. 우리가 건강을 위하여 조깅을 할 때 느끼게 되는 상쾌한 감정 (Runner's high)을 맛보게 만든다. 그래서 매워 매워하면서 자꾸만 매운 고추를 찾게 된다. 고추는 담배나 술과 달리 부작용이 없으며, 가격이 저렴해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일반 서민을 위한 식품이다. 그러한 고추를 채소로 뿐 아니라, 말려서 고춧가루로 이용할 줄 아는 한국인은 슬기로운 민족이라 할 수 밖에.
고추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할 뿐 아니라 색깔이 다양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여기서 놀라지 마시길, 고추에는 오렌지의 6배나 많은 양의 비타민 C가 들어 있다. 특히 고추가 빨갛게 익었을 때가 가장 많아서 고추는 익었을 때 날로 먹는 것이 제격이다. 그러니 같은 값이면 여름철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즐기시고, 겨울철에는 익은 고추를 생산하려면 난방비가 많이 들어가게 되므로 풋고추로 만족하길 바란다. 이러한 장점을 간파한 우리 조상들도 빨간 날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으면서 더위를 이겨내지 않았던가?
게다가 고추의 활용이 무척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불고기나 갈비에도 고추를 넣어서 맛을 더한다. 미국에서는 사탕에 고춧가루를 넣어서 맛을 내고 있다. 또한 고춧가루로 진통제를 개발하여 의약품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부작용 없는 진통제가 고추에서 나오게 될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 이 참에 내가 좋아하는 매운 고추를 텃밭에 심어 놓고 즐기는 것이 어떨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