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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는 좋다. 내가 좀 바보 같아 보일 때 사람들은 경계심 없이 내게 다가와 많은 걸 보여주고 내어준다. 때로 잘난척하며 허세를 부리고 머리 굴리며 계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 정말 한심해 보이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또 간혹 자신의 것을 모두 다 내어주는 바보 같은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어쩌면 바보야말로 지금까지 옛이야기를 다루며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판단해서는 안 될, 가장 중의적이며 매력적인 인물일 지도 모른다.
바보를 통해 우리는 그래도 내가 더 낫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고, 그들을 통해 신나게 웃으며 억압된 내면을 분출할 수 있다.
또 그들을 통해 세상을 비꼬며 이 고단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도 있다.
바보는 사실 외부, 즉 사회적 통념이 만든 정의이며 가치이다. 바보를 지능이 낮은 사람이나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 또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어딘가 좀 부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말 그들을 바보라고 여길 수 있는지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여러 가지 가치의 기준 중에 가장 궁극적인 단 한 가지, 바로 ‘행복’을 그 기준으로 둔다 하더라도 그들을 어떻게 행복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 기준으로 본다면 뭔가에 불만을 가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바보이지 않겠는가?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