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시간이 남아, 모처럼 브라우니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아주 신이 났다.
계란과 버터는 미리 꺼내두어 냉기를 제거해 두고, 양철 그릇과 주방용 저울과 재료들을 꺼내어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찾아가며 하는 것보단 전부 한꺼번에 준비해놓고 순서대로 차례차례 쓰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빵을 구울 때는 그런 간단한 것에조차 나름대로의 절차가 있고 규칙이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초콜릿을 녹이는 것이다. 당연히 중탕으로 해야 하기에, 혹시 마침 시기 적절하게 끓여 놓은 국은 없나 살펴보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냄비에 물을 한 가득 붓고 불 위에 올렸다. 작은 초콜릿 칩들을 양철 그릇에 담고 조금씩 저으며 녹일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화상의 위험도 있지만, 자칫하다가 그릇이 쏠리거나 해서 물이 들어가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 녹은 초콜릿은 적당히 식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고, 그 사이에 섞기 쉽도록 가루 종류를 체에 쳐놓는다. 코코아 파우더 때문인지 흰 가루는 금세 거무튀튀한 색깔로 물든다. 알갱이들이 덩어리진 탓에 코코아는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으스러뜨려야 하고, 그래서 흔적이 남지 않는 밀가루와 달리 코코아를 만진 손은 갈색투성이가 된다 (가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무심코 손을 옷에 문지르거나 하는데, 뒤처리가 정말 최악이다).
체에 내린 가루는 잠시 놔두고, 가장 중요한 단계로 넘어 간다. 말랑말랑해진 버터를 잘라 그릇에 담은 후 적당히 녹이는 것이다.
레시피에는 그저 이렇게 물컹물컹하기만 해도 된다고 쓰여 있지만, 직접 실험해 본 결과로는 어느 정도 물 같은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줄곧 이렇게 만들고 있다. 포인트는 버터를 전부 녹여버리지 않는 것이다. 적당히, 반 정도로, 버터가 자기가 녹아 만들어진 웅덩이에서 헤엄칠 정도가 될 때까지.
그 다음 흰 설탕을 조르륵 따라 넣고 거품기로 열심히 휘젓는다. 얼마 전까지는 이 대목에서 상당히 격렬한(?) 육체 노동을 해야 했지만, 자동 거품기를 선물 받은 후로는 아주 편하게 잘 쓰고 있다. 물론 그런다고 아주 마음을 놓을 순 없는 노릇이므로, 신중하게, 집중해서 해야 한다.
적당히 녹은 버터에 설탕을 섞은 혼합물을 열심히 젓다 보면, 설탕이 녹아 들면서 점점 버터가 하얘진다. 과학에는 문외한인지라 잘 모르지만, 아마도 일종의 화학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리라고 추측하고 있다. 설탕이 섞여 들어간 버터는 머랭처럼 점점 크림화되면서 부드러워지고, 휘젓기가 끝날 때쯤엔 아주 되직한 생크림 같아진다. 그것만 따로 크래커에 찍어먹고 싶을 만큼.
그런 욕구를 꾹 눌러 참고, 이제 초콜릿을 섞을 차례가 된다. 되도록이면 한 방울의 초콜릿도 낭비 없도록 주걱으로 샅샅이 훑어가며 버터 혼합물에 섞고, 천천히 젓는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열에 설탕이 완전히 녹아, 결과물은 꽤나 묽은 것이 된다. 곧 가루를 섞을 테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을 가루가 담긴 그릇으로 전부 부어 넣고 잘 섞는다. 마구잡이로 헤집으며 섞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잡고 면을 훑으면서 옆으로 주걱질을 하는 것이다 (밀가루는 절대로 함부로 뒤섞으면 안 된다. 반죽이 질겨지기 때문이다). 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쯤 되면 반죽은 완성되고, 나는 매우 지쳐 있다. 혼자서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 꽤나 힘든 일이다.
이 브라우니 반죽을 굽기 위해 오븐으로 옮기고, 열을 조절한 후 설거지를 하며 기다린다. 그리고는 새삼 깨닫는 것이다. 요리란 그 자체만으로도 소우주적인 스케일이 담겨 있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