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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011. 14:38 NZ코리아포스트 (219.♡.51.194)
아름다운 세상
새해가 되면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는 말은 ‘복’ 받고 살라는 것이다.
예수의 체계적인 첫 설교가 복이였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복이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진짜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켜 주셨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이 복에 대해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 같이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였다.
그의 가르침 첫번째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인가?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능력이나 소유를 의지하려는 마음을 비운 것이 가난한 심령이다.
가난하다고해서 물질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물질에 더 집착할 수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 완악해질 수 있다. 즉 ‘심령이 가난한 자’란 자기에게 절망한 사람입니다.
경제적 빈부에 관계없이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려 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런 사람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 나의 계획이 무산되거나 실패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때야말로 나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가난한 심령이 되어 복의 근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있는 것으로 감사해야 하지만 내게 없는 것으로 감사함은 더 성숙한 마음일것이다. 그래서 내게 없는 그것이야말로 나의 심령을 가난하게 해주니 이것이‘복’이라는 말이다. 그런자들에게 현세적인 복이 따라옴은 물론이다.
그 다음의 주제가 ‘애통하는자’가 복이 있다.라는 역설적 이야기였다.
그리스말로 ‘펜데오’라는 말인데 그 뜻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처절하게 우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울고, 조금커서는 경쟁의 시간들 앞에서 성적표 놓고 울고, 사춘기되어 인생앞에서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울고, 청년이되면 젊음의 빈노트에 무엇을 써야하나 울고, 결혼하면 부부간의 갈등에 울고, 생활고에, 아이들 교육 때문에 울고, 아이들 떠나보내면서 울고 갱년기되면 빈둥지증후군에 허전해서 울고, 이제 나이들어 세상 떠날 준비 할 시간되니 노인 우울증에 울고 세상은 울일 밖에 없다.
심리학에서도 이렇게 울고 싶을 때 울면 정서적 카타르시스가 되어 마음이 치료된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것과 자기 연민에 우는 것은 다른것이다.
자기 연민에 우는 것은 일시적 감정 정리를 해주지만, 그 순간이 끝나면 허망해지기 마련이다.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며 겟세마네를 찾은 예수께서 의연히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애통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으로 채움 받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자기 애통은 자기절망으로 끝나기에, 자기 애통이 거듭될수록 자신을 현실적인 삶에서 자꾸 자신을 격리시키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타인을 위해서 애통할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복받은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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