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개
2,940
24/11/2010. 12:52 NZ코리아포스트 (219.♡.51.194)
아름다운 세상
시골 산골짝에 내 할머니를 엄마삼아 살던시절이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가 한창피고 벌거숭이 산을 이쁘게 장식하는 유일한 꽃이니 힘든줄 모르고 뛰어다니다 보면 아재는 내게 꽃방망이를 만들어 양손에 쥐어 주곤하였다.
그리고 개울을 건널때면 아재는 지게 위에 나를 얹어 놓고 개울을 건넜다.
논두렁의 풀을 깍을라치면 난 늘 지게 밑에 앉아 아재의 낫놀리는 손을 바라보곤했다.
어느날, 아재를 기다리느라 앉아 있던 나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자리잡고 앉은 것은 생각나는데 물로 씻고 부산을 떠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를 모르겠는 것이다.
변명하는 아재의 말은 세워 놓은 지게 밑에서 앉아 졸다가 굴러 떨어져 논두렁에 쳐박혀 있더라는 것이다. 내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절했던 것이다.
나는 그 후, 다시는 아재를 따라가지 않았을뿐아니라 가끔씩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꿀라치면 그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 후, 할머니는 나무로 조그마한 마차를 만들어 목화솜을 넣어 만든 깔개를 넣어 최고의 자가용을 만들어 내셨다. 새끼줄을 가늘게 꼬아 손잡이에 묶어 나를 앉혀 어디든 끌고 함께 다니셨다. 요즘의 유모차격인 그것을 끌어 주시던 할머니는 최고의 피난처였다. 날 늘 생명처럼 지켜 주시는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 더 이상 위험은 없다고, 두려움을 역전시켜주신 할머니의 넓은 치마폭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성경속의 이야기다.
어느날, 야곱의 가족이 세겜성에 이르렀을 때,호기심 많은 딸이 성내의 이곳 저곳을 구경 다녔다. 그런데 예기치않게 세겜성 성주의 아들에게 소녀(디나)는 강간을 당한 것이였다. 이 사건 앞에서 소녀의 오빠들은 치를 떨었다. 그들은 타협점을 찾아야했다. 소녀측에서 자기부족과 같은 할례 의식(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식 즉 오늘날의 포경수술)을 행해야 결혼 시키겠다는 것이였다.
이 제안을 받은 세겜성의 성주는 소녀에게 반한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그 성안 남자들에게 모두 할례를 명했다.
같은 의식과 사상을 가졌다는 동맹의 표시였다. 그러나 할례후, 성안의 모든 남자들이 아파하며 신음하는 삼일째 되던날, 그 기회를 타서 화가 나서 미칠것 같은 혈기 왕성한 소녀(디나)의 오빠들은 세겜성 안에 있는 남자들을 칼로쳐서 죽여 버리고 만 것이다.
대 복수의 혈전이였던 것이다.
야곱이가 이 사실을 듣고 망연자실해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왜?
겨우 몇십명되는 인원의 가족들이 앞으로 당할 일은 너무도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임은 불보듯 뻔한일 아니겠는가!
주변부족과 뭉쳐 반격을 한다면 이길 도리가 없기 때문이였다. 이 전멸의 위기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비책은 그의 일생을 사는 동안 공급과 동행과 위로가 되어 주셨던 하나님을 찾는 일이였다.
그는 내가 할머니의 치마폭에 숨어들면 세상도 나를 어찌할수 없을것 같다고 믿었던 그런 것과 비교가 될 수가 있으려는지. 아무튼 그와 그의 가족들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숨어 들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의 일생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희안한일이 생겼다.
하나님의 위엄이 그 주변 고을들로 두려워하게 하셨던 것이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주변이 조용한 것 아닌가?
강한자를 힘으로 삼는자 만이 누릴 수 있는 이 인생역전의 드라마!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