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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완전한 완전함
반쪽이와 형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부분도 매우 의미 있는 대목이다. 그 부분에서 역시 라푼첼의 청소년 시기와 맞물려 상통하는 부분인데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집을 떠나는 행위가 이제 어른으로 가는 관문을 통과하고 스스로 독립을 꾀하며 사회로 진출하게 되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쪽이는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과정에서 바위와 나무 그리고 호랑이로 상징되는 과거시험보다도 더 높은 시험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은 반쪽이가 사춘기를 넘어 성인으로서 독립하려는 의지를 형들이 억지로 바위나 나무에 묶어 분리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때로 청소년기의 아이들이나 간혹 성인의 경우에도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분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누구나 성숙의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을 때는 반쪽이처럼 스스로 강한 의지로 자립을 선언할 수 있어야만 한다.
또 형들이 반쪽이를 바위에 묶는다는 것은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갖고 바라보는 편견 또는 선입견은 반쪽이를 무겁게 짓누르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 반쪽이는 타인의 생각에 자기 자신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겁게 짓누르고 꽁꽁 묶는 타인들의 편견을 내던지고 끊어버린다. 물론 반쪽이의 장애는 표면적인 것일 뿐 실제 장애로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 생각만이 옳다 하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는 것 그래서 더 너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온쪽이가 아닌 반쪽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을 가장 온쪽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반쪽이일 수밖에 없는 역설이 성립된다.
반쪽이의 훌륭한 점은 자신의 결핍에 대하여 불만을 갖거나 부모를 원망하거나 그로 인해 절망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형들을 이기고도 남을 만한 특출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들의 괴롭힘을 모두 감내하고 어머니에게 형들에 대해 고자질하기는커녕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하여 형들이 괴롭힌 데 사용한 바위와 나무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형들에게 간접적으로 이기는 현명한 방법이기도 하다. 형들이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보게 될 바위와 나무는 그들이 더 이상 반쪽이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반쪽이의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가 힘든 상황에서 부모나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고 싶을 때 반성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쪽이가 가지고 있는 불행 또는 결핍의 화소는 그 불행과 결핍을 넘어설 때 이야기를 접하는 이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