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를 앓고 정식으로 운전이 금지된 상태에서 웰링턴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다 자신과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고의 전말이 검시관 보고서를 통해 드러났다.
지난 2021년 1월, 리살레 포아에세(76)와 그의 아들 조지 포아에세(41)는 웰링턴 도시 고속도로에서 마주 오던 차량과 정면충돌해 숨졌다. 이번 사건을 조사한 하이디 리글리 검시관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고 지적하며, 전광판(전자 표지판) 설치 등 안전 조치 개선을 촉구했다.
사고 당일 리살레는 페토네 인근의 2번 국도(SH2)를 통해 고속도로에 역방향으로 진입했다. 이후 웰링턴 시내와 가까운 곳에서 충돌하기 전까지 무려 13km를 역주행했다. 주변을 지나던 수많은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고 수신호로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고 경찰에도 여러 건의 신고가 접수되었으나, 리살레는 자신이 역주행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검시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리살레는 사고가 나기 불과 2주 전 기억 상실 증세로 인해 경찰로부터 면허 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리살레는 사고 네 달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아들까지 잃는 등 극심한 슬픔을 겪으며 치매 증상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청각 장애가 있었음에도 사고 당일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서는 뉴질랜드 교통국(NZTA)에 반납하라는 통지서가 발부되었던 운전면허증 카드가 그대로 발견되었다. 목격자들은 사고 직전 리살레의 차량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을 뻔하거나, 갑자기 멈출 듯이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시속 105km까지 가속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주행했다고 증언했다.
상대 홀덴 차량의 운전자는 피할 시간이 몇 초밖에 없었으며, 급제동한 타이어 흔적(스키드 마크)이 남았으나 리살레의 차량에서는 제동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상대 차량 탑승자 2명은 다행히 생존했으나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함께 사망한 아들 조지의 정신 건강 상태도 비극을 막지 못한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검시관은 조지가 인지적 한계로 인해 '밤중에 아버지가 운전하는 위험한 상황'을 제지하거나 대처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검시관은 이번 사건이 인지 능력 저하를 겪는 가족을 둔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조사 결과는 보건 뉴질랜드(Health New Zealand)에 전달되어 정신 건강 질환자의 위험 관리 및 지원 서비스 개선에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검시관과 경찰 사고 조사관은 교통국에 역주행 차단이 어려운 고속도로 구간을 중심으로 역주행 차량 발생 시 마주 오는 운전자들에게 경고와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가변형 전광판을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사고 당시 리살레가 진입한 하트 오프램프 구간에는 여러 개의 '진입 금지' 및 '역주행'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영어가 미숙했던 리살레가 이를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교통국은 현재 차량 감지식 전자 경고판과 같은 저비용 자동화 솔루션을 검토 중이며, 향후 웰링턴 지역에 더욱 발전된 형태의 전자 표지판 안전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ource: R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