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 나는 바다로 갔다

[347] 나는 바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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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들이다. 비릿한 내음도, 짭쪼름한 바람도 풍겨 오질 않는다. 파라솔을 펴 놓고 멍게나 해삼, 소라 등을 파는 아주머니도 없다. ‘어쩌란 말이냐, 어쩌란 말이냐’ 부숴져 내리는 방파제의 파도- 그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없다. 고단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깃배도 없다. 바닷물에 몸을 빠뜨리고 첨벙대는 유희도, 깔깔거리는 웃음도 없이 고요하다. 사람들을 달뜨게 만드는 작열하는 태양은 어디 갔는가?  태양 조차도 서늘하다.

그 바다는 그냥 텅 비어 있었다.
처음엔 어디쯤에 바다가 숨어 있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첩첩산중을 돌고 돌았다. 산길은 온통 흙먼지 투성이어서 창문을 꼭꼭 닫고 누런 흙먼지를 차꼬리에 매달고 산길을 내달렸다.

바다는 산 아래 숨어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왜 그리 꼭꼭 숨어 있는지---.
무덤덤한 바다, 멀뚱한 바다, 바보 천치같은 바다!
그런데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그 바다가 떠오른다.

◆ 물길

그 길은 용암이 만든 산과 바다가 만든 모래 산을 양 옆으로 끼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바다에서 마중 나온 물이 들락달락하면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길이다. 바다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물길을 맨발로 찰방찰방 걷는다. 발목을 감싸고 도는 물들이 반갑다고 속살거린다. 송아지만한 개들도 겅중겅중 반갑게 바다로 달려나가는 길이다. 모래 산에는 풀꽃들이 노랗게 꽃을 피우며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그 많은 옥토를 놔두고 모래 속에 뿌리를 내리다니---, 팔자가 드센 녀석들이다.

‘하지만 난 해풍 없인 못 산다우.’

어느덧 나도 풀꽃처럼 바다 바람에 몸을 맡긴다. 손에 들고 있는 샌들과 등에 멘 배낭이 전 재산인 방랑자처럼.

◆ 백사장

먼저 간 이의 큰 발자국 속에 내 발자국을 담아 본다. 조약돌을 모아놓은 것같은 개 발자국도 쫓아 가 본다. 사람과 개 발자국이 엉킨 곳에서 잠시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새로운 내 발자국을 찍는다.

어디선가 둥둥둥 북소리가 울린다. 적요한 바닷가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는 혼을 부르는 소리다. 경건하고 슬프기도 하다. 산중턱에 걸터앉아 바다를 향해 북을 쳐 대는 사람---, 꿈결인지 생시인지 볼을 꼬집어 본다.

◆ 갯바위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처럼 생긴 할아버지가 낚시를 하고 있다.

“많이 잡으셨어요?”

흰 수염 속에 파묻힌 불그레한 얼굴이 퉁명스럽게 날 바라본다. 난 뻘줌해진다. 조용히 한쪽 구석에 가서 낚싯대를 드리운다. 입질이 오는 것 같다. 낚싯대를 채 올린다. 영리한 녀석이 미끼만 따먹고 도망갔다. 갈매기들은 내 주변을 맴돌며 미끼를 훔쳐먹고 더 달라고 끼룩댄다. 바람은 불고 낚시는 헛물을 켜고---. 그 때 노인이 학꽁치 세 마리와 카와이이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요모조모 낚시하는 법도 가르쳐 준다. 내가 사과 하나를 내밀었다. 그는 또 퉁명스럽게 거절한다.

해가 기울자 노인은 갯바위를 떠났다. 빨간 배낭을 등에 메고. 나는 갯바위에서 꼼짝 않고 그를 바라본다. 둥둥둥 북소리에 맞춰 그가 춤이라도 추듯 움찔움찔 멀어져 간다. 그가 산너머 집으로 가기 위해 산 초입에 올라섰다. 그는 뒤돌아 갯바위를 본다. 나는 일어서서 두 팔을 허공에 마구마구 휘저으며 큰 원을 그린다. 한참 보다가 그가 다시 사라졌다. 사과만한 빨간 점 하나가 산허리를 돌고 돌아 나타났다 멀어져 갔다. 나는 빨간 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본다. 어느 순간 빨간 점이 한참 멈춰져 있는 듯 했다. 내 눈에서는 시린 눈물이 흐른다.

눈을 감고 바보 같은 바다를 떠올린다. 욕망과 불안, 어리석음, 삶에 대한 불순한 터럭들을 모두  털어 내는 곳, 내 삶을 계산하지 않는 곳, 그래서 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곳, 내 자신을 잊어버리는 곳---.

‘나는 바다로 가야지,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키 큰 배 한 척과 그것을 인도할 별 하나--- ’

새해에 나는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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