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 씁쓸한 교민간담회

[347] 씁쓸한 교민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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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의 교민간담회는 뒷맛이 씁쓸했다.

특별한 이슈나 현안문제가 없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국가 원수의 국빈 방문이었기에 관심들이 많았다. 그런데 엄격했던 신원조회와 복잡한 참석 절차에 비해 허술하기만한 잔치였다. 의전이란 고위층에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참석자들에 걸맞는 형식과 예의 또한 중요한 법인데 한쪽만을 향한 의전처럼 보였다. 기본적으로 포럼인지, 강연회인지, 만찬회인지가 분명치 않았고 간담회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초,중등학교의 조회시간을 연상시킨 식장은 한시간의 대통령 연설이 마치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방불케 했고 연설이 진행 되는 동안 또 무슨 말 실수가 있을까봐 불안하기만 했다.

노대통령은 “지금 한국은 잘 되고 있고 또 잘 되어 갈 것입니다. 아무염려 없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데 임진왜란 직전의 선조는 어떠했는가? 이율곡의 십만양병설과 이순신의 항시대비론을 무시한 채 자만에 차 있었고 심지어 일본을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의 약소국으로만 얕잡아 보고 있다가 심하게 당했던 것이다. 지금을 그때 상황과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실력과 준비를 갖춘 자신감과 무조건적인 자만심과는 구별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민법 개정이나 유학 환경의 개선, 한국과의 보다 활발한 상호교역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한 교민경제의 활성화 내지는 확대 발전일 것이다. 이민법 개정을 뉴질랜드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고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상호 이해증진을 위한 당사국의 의견 피력이나 분위기 조성은 당연하고도 필요하며 교민들은 적어도 정상회담전에 대통령이 그런 현황을 제대로 알고 임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교민 간담회는 정상회담을 비롯한 모든 일정이 끝나고 ‘체류 마지막날 그저 교민들이 제일 많이 산다는 오클랜드에서 한마디 하고 가겠다’는 극히 의례적 수순이었으리라는 인상이 짙다.

뉴질랜드 교민사회는 본격 이민 역사가 겨우 15년 밖에 안 되는 초기정착단계이고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이민법이 악화일로로 변해오는 등 모두가 힘들어 하고 암울하기 그지 없는 현실인 것이다. 적어도 대통령으로서는 방문 전 또는 방문 직후 현지 공관을 통해 이러한 분위기를 정확히 파악했어야 한다. 만일 공관에서 그런 분위기를 상세히 보고하였음에도  현실을 무시한 채 “너희는 해외 동포중 잘 사는 편에 속하니 잔말 말고 있어라”는 식이었다면 애당초 대통령과의 교민간담회는 의미가 없는 것이며 원초적 모순 위에 진행된 셈이다.

대통령은 또 “뉴질랜드 동포사회보다 더 가난한 곳에 우선 지원하겠다. 정부도 잔머리를 좀 굴리겠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이나 사할린등 우리보다 가난하고 어려운 해외 교민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교민 사회의 어려움이나 현안 문제는 각기 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결코 상대평가할 명제는 아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잔머리를 굴린다’는 표현은 “술수를 써서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 오게 하거나 상대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그 표현 자체가 공식 석상에서는 매우 부적절하고 자연스럽지도 못한 것이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해외 동포를 상대로 잔머리를 굴리겠다’는 것은 교민들을 상대로 꼼수를 써서 손해보지 않겠다는 뉘앙스이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인 것이다.

뉴질랜드는 영연방국가로서 풍요로운 자원과 전통 깊은 서구문화유산을 그대로 간직한 선진국이며 국제화의 요건인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이다. 또한 교민들도 세계 어느 동포사회에서 찾아 보기 힘들만큼 교육수준, 지식수준, 문화수준등이 상향 평준화된 집단임을 자타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해외 교민들 중 ‘항공편 사용빈도’, ‘국제전화 사용량’, ‘부모들의 평균 학력’등 현재 드러나 있는 객관적 자료들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여유 있는 선진국인 뉴질랜드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해외 동포중 가장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는 뉴질랜드 교민사회를 우선 지원해 주는 것도 현명한 방법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교민들의 현실이나 정서를 십분 감안해서 “조국이나 대통령으로서도 최선을 다해 여러분을 돕도록 노력하겠으니 여러분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정도의 덕담을 전달하는 게 교민들을 상대로 “잔머리를 굴리겠다”는 표현보다는 백번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존재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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