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 황혼이 아름다운 이유(1)

[344] 황혼이 아름다운 이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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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디 있더라?”

남편이 마치 현 진건의 ‘빈처’처럼 중얼거린다. 나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져 온다. 또 시작되었구나.

“분명히 여기 둔 것 같은데---.”

남편은 벌써 두 시간째 서류더미를 뒤지고 있다.

“혹시,당신이 가지고 있는 거 아냐?”
“아니!”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짧게 끊어 대답한다.그 일에 휘말리고싶지 않아서.

“그때 당신이 IRD에 내야 한다고 가져간 것 같은데---.”

“식탁 위에 놔뒀는데 자기가 챙긴다고 들고 갔잖아.”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변한다.

“난 그 서류 본 적도 없어요,정말로!”

결단코 결백을 주장하는 남편의 얼굴은 정말이지 결백하다 못해 아기처럼 해맑다. 형사처럼 예리한 눈빛으로 추궁해보지만 단 1%의 심증도 느낄 수 없다. 천사 같은 얼굴이다.그때쯤이면 나는 내 자신을 의심한다.

‘혹시 내가 어디에다 두고 까맣게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 부부는 서로의 기억력을 못미더워할 뿐 아니라,스스로의 머릿속을 더욱 신뢰하지 못한다.나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해묵은 서류철이며 책꽂이 등을 뒤진다. 그러나 오리무중이다.

‘아,정말 답답하다.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디 간 거야?’

“난 정말 본 적도 없다니까. 당신이 우체통에서 꺼내서 어디다 둔 거 같은데---.”
남편은 또 궁시렁거린다.

“없으면 할 수 없지 뭐.”

포기하려는 순간 남편이 손에 그 서류를 들고 멋적게 웃고 있다. 계란 한판을 길가에 폭삭 엎어 몽땅 깨뜨렸을 때도 남편은 함박 웃음을 웃었다. 가게 앞 길을 노랗게 물들인 계란과 남편의 웃는 얼굴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감정 정리를 해야 할 지 몰라 당황스러웠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가 아무리 웃음 제스처를 들고 나와도 내 성질이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를 째려보는 나!

숀팬과 수잔 서랜든 주연의 Dead Man Walking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죽는 순간까지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형수와 그의 결백을 믿으며 백방으로 그의 사형을 막아보려던 여자. 그러나 남자는 죽기 직전 자기가 살인을 했노라고 고백한다. 결국 그는 독극물이 주입되는 사형 방법으로 죽게 된다. 자신의 결백을, 자신의 억울함을 온몸으로 호소하던 남자가 손바닥 뒤집듯이 자신의 죄를 시인한다. 뒤통수를 너무 세게 맞고 나면 처음엔 어이가 없다가 시간이 흐르면 우울해진다. 너무 어리석었던 자신을 자책하면서. 그 영화의 수잔 서랜든처럼 나는 한 줄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두려웠다. 우리의 해프닝이 단순한 건망증 차원을 넘어 기억상실증, 인지능력 상실까지 가는 것은 아닌지. 금방 신으려고 손에 들고 다니던 양말이나 손가락에 끼우고 돌리던 차 열쇠가 갑자기 사라지는 요술 같은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콩나물을 샀는데, 요리하려고 보니 숙주나물이다. 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카드를 열심히 챙겨 넣는다. ‘카드는 중요한 것이다. ’주문을 외우 듯 지갑에 넣고 확인하고 또 하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쫓아온다. 내가 방금 산 물건을 들고 서 있는 종업원. 으휴휴---.

핸드폰의 행방도 자주 묘연해진다. 우리는 핸드폰을 찾아 하루동안의 궤적을 온통 다시 밟는 경우도 있다. 중국집, 친구집, 식품점 ---. 결국 핸드폰은 친구집 소파 밑에서 발견되었다.

각종 카드며 운전 면허증 등이 든 지갑을 잃어버려 서쪽 멀리 골프장까지 찾아 헤맸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책상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럴 때 남편은 웃고 나는 열 손가락을 머리카락 속에 쑤셔넣고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다.

우리 가족이 한 번 외출하려면 차의 시동을 걸고서도 족히 2,30분은 대기 상태다.

남편이 지도책을 가지러, 나는 휴지를 몇장 챙기러 들어갔다 온다. 아이는 뭐 카메라며 과자를 챙기러 들락거리고---. 드디어 출발하려는 순간, 잠깐! 보온병 물통 안가져왔네, 샌들을 안챙겼네, 난리법석을 떨다가 결국 어렵게 어렵게 출발한다. 길 떠나고 30분 후--- “아참! 라면 끓일 냄비를 안가져왔네”

그런 우리가 가끔은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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