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치과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 신세대 의사 정혜원씨

[358] 치과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 신세대 의사 정혜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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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직업 10가지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아마 치과의사일 것이다. 더구나, 치과 진료 비용이 유난히 비싼 뉴질랜드에 살다 보면 '가족 중 누군가가 치과의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덕분에 정혜원 씨 (26세)는 한국인 (특히 자녀를 둔 학부모) 환자들을 진료할 때 30분인 진료시간을 1시간으로 넉넉히 잡아 둔다. '진료'하는 시간만큼, '진로' 상담을 하게 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 한눈에 짐작할 수 있듯, 그녀는 모질지 못 한 심성을 가진 탓에 환자들이 던지는 개인적인 질문에도 꼼꼼히 답해주려고 노력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듯이 치과의사는 정말 좋은 직업일까? 5년만 공부하면 칼 퇴근과 고소득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체 치과 의사들을 대변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솔직하기 짝이 없는 신세대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살짝 엿보고 싶었다.


영어로 공부하기 힘들었을 텐데?

94년에 식구들이 모두 이민을 왔어요. Form4 과정 3개월을 마치고 Form5부터 시작했죠. 입학할 때만해도 영어를 못해서 고생했지만 따로 과외를 하지는 않았어요. 저희 엄마는 다른 엄마들 만큼 교육열을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뒤에서 서포트 해 주시는 편인데,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놀도록 했죠. 친구들 중에는 동양인을 차별하고 같이 안 놀려는 아이들도 있지만, 운이 좋았는지 제 주변엔 좋은 친구들 뿐이었어요.  

치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은 오타고 대학이 유일한데, 입학은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요. 대신 Health Science를 1년간 공부하고 시험을 통과해야 본과로 진학할 수 있죠. 과정을 마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어요. 총 5년 과정인데, 3학년 때부터는 계속 임상  실습 이예요. 여긴 모든 걸 실습 위주로 가르치죠.


치료비가 너무 비싸다.

맞아요. 비싸죠. 그래서 대부분 많이 아파야만 오세요. 진료비가 비싸니까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분도 극소수구요.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부분인데... 통증을 느끼고 나서 치료를 받으시려면 이미 늦는 경우가 많아요.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는 걸 크게 키워서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게 되죠. 신경치료까지 받을 상황이 되면 한 대당 $1,000 정도가 들어요. 그래서 관리를 정말 잘해야 되고, 좀 어려우시더라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시는 게 좋아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서 오시는 분들은 대게 경제적으로 어려우신 경우가 많은데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오면 저도 정말 미안해요.  


치과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어떤 일이든 멀리서 보면 좋아 보이는 법이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하려면 자기 적성과 잘 맞아야 해요. 좀 끔찍한 얘기지만, 뉴질랜드의 알코올 중독/자살률 1위인 직종이 치과 의사라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거예요. 진료실이란 좁은 공간에 앉아서, 하루종일 환자의 입 속을 보다보면 외롭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게 되기도 하죠. 또, 치료 비용이 고가이다 보니까 환자의 기대심리도 굉장히 커요. 치통의 고통이 극심한 만큼 예민한 환자도 많고요. 모든 직업이 다 그렇겠지만, 이 분야에 대한 열정과 프로의식이 있어야 해요. 환상만 가지고 시작했다가 자괴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거든요.


그래도 돈은 잘 벌지 않나요?

(하하하..) 잘 번다는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대박(!)은 아닌 것 같아요. 특히 세금이 엄청나거든요. 소득세에 부가세까지 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죠. 더군다나 저는 월급쟁이잖아요. 뉴질랜드는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많이 버는 사람이 좀 덜 버는 사람을 서포트 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어느 분야든지 큰 돈 벌기 힘든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환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가 제일 뿌듯하죠. 작년엔 오클랜드병원에서 근무했었는데, 공부와 일을 병행하느라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그 때 입원환자 중 턱에 암이 생겨 시한부 인생을 사시는 분이 있었는데 이, 잇몸, 침샘까지 다 손상 되서 너무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긍정적으로 생활하시는 그 분을 보고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큰 배움과 희망을 얻었어요. 병원 근무 당시 큰 질병이나 사고로 고생하는 분들을 치료하는 건 조금은 고달팠지만,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직업에 대한 보람도 다시금 느끼게 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할까 고민 중이라는 그녀는, 다시 10년 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회계사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멋진 비즈니스 우먼이 되어 좀 더 넓은 세상의 사람들을 만나 보고 싶다고...


그녀와의 대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마냥 편안해 보이는 길도 막상 그 안에 들어서면 그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없다면 생각지도 못 한 난관을 만났을 때, 혹은 가끔씩 밀려오는 회의감이 느껴질 때 쉽게 주저앉게 될 수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못 따라간다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현재에 불평하지 않고, '즐거울'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젊은 프로들은 아름답다!


글 : 이연희 기자 (reporter@koreatimes.co.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