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 언 발에 오줌 누기

[359] 언 발에 오줌 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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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온 이웃집 새댁이 햇살이 내리 쬐는 벽에 몸을 기대고 하염없이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웃으며 햇살이 따뜻하다고 말했다. 사연인즉 전기요금이 많이 나와서 집안에서 난방기구를 맘대로 켤 수 없어, 해 쪼이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오오, 가엾은 그녀!

  나는 오클랜드에 도착하던 첫날 묵었던 모텔의 추위가 떠올랐다. 오래된 렌트집의 한댓바람도 생각났다. 말이 집이지, 벽이며 바닥이 36.5도나 되는 사람 덕 보겠다고 오뉴월 한 품은 귀신처럼 서릿발을 세웠다. 뼈 속 깊이 냉기가 스며들면 괜스레 서글퍼져서 한 겨울에도 반팔로 활개치던 한국의 아파트 생활이 그리웠다.

  지난 해, 온돌 판넬을 구입했다. 소파며 식탁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지. 우리 가족은 따끈따끈한 구들장에 엉덩이 지져 가며 한 겨울을 보냈다. 뭉그적거리며 와인도 마시고 TV도 보고 밥도 먹고 구운 고구마도 호호 불며 까먹었다. 정말이지 이부자리 하나에 식구 수대로 구멍을 뚫어 목만 내놓은 흥부네 식구들 같았다. 담요를 서로 잡아끌며 토닥토닥 사랑싸움도 하다가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져서 설핏 졸기도 했다. 집안이 따뜻해야 가족들이 건강해지고 화목해진다. 그렇다고 온 집안을 훈훈하게 만드는 호사를 누릴 수는 없었다. 내 친구는 바닥 난방이 되는 집을 사고 너무 좋아했는데, 겨울을 보낸 후, 맘놓고 바닥 한 번 달궈 보지 못했음을 내게 고백했다.

  뉴질랜드의 서민들은 전기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방심하고 썼다가는 누가 내 집 전기를 끌어다 쓴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비싼 요금을 물어야 한다. 수도세도 만만치 않다. 전기와 수도가 함께 엮어지는 상황이 되면 극도로 예민해진다. 아이가 조금 오래 샤워만 해도 빨리 나오라고 소리치기 일쑤다.

  지난 5월(月), 주택 단열설비에 관한 새로운 건축법이 발표되었다. 헬렌 클락 총리는 '난방 에너지 30%, 절감 효과'를 내세우며, 태양열 시스템 허가 절차도 간소화 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일 년에 2백 불 정도 온수 비용이 절감될 것 이라고. 그렇게 잘 아는 것 같이 말하던 헬렌 클락은  헤럴드 지와의 인터뷰에서 '전기 요금이 한 달에 얼마나 나오냐'고 묻자, '남편이 요금을 내기 때문에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말꼬리를 잡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나는 프랑스의 마리앙뜨와네뜨가 생각났다. 배가 고프니 빵을 달라는 백성들의 아우성에 그녀는 빵이 없으면 비스킷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전기세는 그렇다고 치고, 소소한 생활비와 각종 세금 등을 헬렌 클락은 알고 있을까? 성장 호르몬이 멈추지 않는 병에 걸린 사람처럼 그것들이 해마다 엄청 자라고 있다는 것도? 5월(月) 초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전력 요금은 6.9%, 상수도는 8.5%, 가스는 10.6%, 렌트비는 3% 올랐다. 휘발유 값도 몇 년 전에 비해 5,60%는 올랐는데, 정부는 리터당 10센트의 유류세를 더 부과할 것이라고 한다.

  지도자의 무심함이 비난 받아야 하는 이유는 돈 없고 소외된 서민들이 사지(死地)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5월(月) 29일 오클랜드 망가레이에 사는 Folole Muliaga부인이 사망했다. 그녀는 산소 공급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전기 요금 N$168.40을 연체했다는 이유로 머큐리 에너지사에서 전기를 끊었던 것. 그녀의 사인이 산소 공급 중단이 아닐 수도 있다며 부검을 하네 어쩌네 하지만, 설사 전기를 끊은 것이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라 하더라고 뭐가 달라지는가? 인권국가 복지국가를 표방하면서도 서민 경제가 좌초되고 있는 현실을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과 뉴질랜드 독점 기업의 횡포를 만천하에 알린 사건이 아니던가. 게다가 심각한 환자를 비의료 요원인 가족들의 손에 맡겨 놓는 의료환경은 언제나 개선될 것인지. 죽을 둥 살 둥 하는 암 환자들을 비행기에 태워 호주로 보내 치료받게 하는 현실처럼 어처구니가 없다.

  헬렌 클락은 제스처가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서민들의 생활을 살피고 어려움을 느껴야 하며,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 최고의 미덕이자, 세 번이나 총리로 뽑아 주고 얼마 전까지 최우선 순위로 지지해주던 국민들에 대한 보답이다. 그리고 실추된 복지 인권국가 뉴질랜드의 이미지를 회복시키는 지름길이다.

  순박한 사모아인 유족들이 큰 눈망울을 꿈벅 꿈벅이며 Muliaga부인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있을 때, 헬렌 클락 총리 등이 유족을 방문했고, 머큐리사에서도 장례비 1만 달러를 내놓았다. 아프지만 살아 있어서 그림자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세 아이의 엄마는 이제 사라졌다. 가난한 집의 꽁꽁 얼어붙은 살림살이에, 아내와 엄마마저 없는 텅 빈 자리에는 북풍한설(北風寒雪)만이 몰아치는데, 헬렌 클락 총리의 잠깐의 관심과 1만 불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얼어서 동상에 걸린 발 위에 찔끔 싸는 오줌에 불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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