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골프장에서

[315] 골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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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변덕 많은 날씨가 뉴질랜드 날씨다. 나도 여기 살면서 날씨 닮아 그리 변덕스러워지면 어쩌나 슬며시 걱정도 된다. 파아란 하늘을 보며 기분좋게 달려가는 길인데 어느새 검은 구름이 따라 오더니 비를 찔끔거린다. 한 두 번 겪는 일이 아니라서 태평스럽게 가다 보면 아니나 다를까 무엇에 놀래 쫓겨 갔는지 벌써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수정처럼 투명한 작은 물방울이 골프장 너른 초록잎 끝에 반짝여서 눈부시게 해놓고……, 문득 동쪽하늘 검은 구름을 배경으로 살포시 떠오른 곱디고운 무지개를 만난다. 팔만 뻗으면 잡힐 듯한 거리에 너무도 선명한 반원의 아름다운 다리를 혼자만 보기 아까워 공치느라 여념이 없는 동료들을 불러 호들갑을 떤다. 자연의 예술, 또렷하고 화려한 하늘의 칠색커텐.

“알롱 달롱 무지개 고운 무지개
  선녀들이 건너간 오색다린가
  언니하고 나하고 둥둥 떠올라
  고운다리 그 다리 건너봤으면……”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가 무심히 입에서 흘러 나온다. 여 덟살 소녀로 돌아가고 있는 찰나다. 공해없는 맑은 하늘 그 하늘에 구름이 만들어 내는 온갖 형상의 요술이 언제나 재미있어 과연 긴 구름의 나라답다. 그러나 비를 뿌린 후에 보여주는 쌍무지개 쇼가 절정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나는 재미가 이 나라에서 살 맛을 더해 주는게 아닐는지….

  3번 드라이빙 레인지 언덕 밑에 세 그루의 야자수같은 나무가 높다랗게 서 있다. 가끔씩 잘못 친 공이 그 나무 근처에서 감쪽같이 없어져 의아해 하곤 했다.

“나무가 공을 먹었나?”

  어느 날인가 마치 코끼리 등가죽같은 껍질을 한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다가 너무 놀랐다. 너울거리는 큰 잎새 바로 밑에 보석처럼 하얗게 박혀 있는 것들이 전부 골프공이었다. 무지무지한 탄력으로 날아가던 공이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여물지 못한 부드러운 층에 모질게 박혀 버린 것이다. 하얀구슬을 꿰어 만든 레이스를 목에 두른 것처럼 멋져 보였지만 몸에 탄환을 맞고 빼내지도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나무는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까? 말 못하는 나무들, 그 누구도 미안해 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제부터 조심하고 미안해 해야지…….

  점심을 먹으려고 펼쳐 놓으면 비둘기와 참새 떼가 어김없이 알고 찾아와 친구를 해준다. 먹을 것을 입으로 튕기느라고 거드름을 떠는 비둘기의 둔함 가운데 몸매 작고 날렵한 참새들이 끼어 들어 잽싸게 먹이를 채 간다. 너무 깜찍하고 얄밉다. 사람 들고 먹는 것까지 달려들어 쪼아가는 참새를 보며 해꼬지 않으니까 버릇없는 철부지 아이같다는 생각을 한다. 천적없어 두려움없이 살아가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그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골프장엔 또 다른 새의 가족이 살고 있다. 교만해서인지? 사람곁에 오지 않는 다리가 긴 새는 무슨 새일까. 진회색의 몸에 남색 깃털을 하고 벼슬과 부리가 빨갛다. 다리가 길어 모양새가 엉성해 보이긴 해도 컬러의 조화로 아름답게 돋보인다. 며칠 전이다. 개울가에 잃어버린 공을 찾느라 풀숲을 뒤지는 동료에게 갑자기 나타난 한 쌍의 그 새들이 번갈아 고공에서 낙하를 하며 무섭게 머리 위로 공격을 하려 드는 것이다. 그가 놀래어 허둥대다가 들고 있던 골프채를 휘두르며 반격을 하니까 어디론가 사라졌다.

  6ㆍ25때 전투기가 폭격을 하려고 내려 꽂히듯 급강하하던 그림을 떠올리게 했던 그들 폭동의 원인을 곧 알게 되었다. (그래 그거였구나) 조막만한 오리새끼들이 개울에 동동 떠다니며 노는 것을 보는 요즈음이다. 그러니까 작년 이맘 때 쯤 일께다. 그 때도 그 곳에서 공을 더듬어 찾는데 돌무더기 틈에 오롯한 새알 몇 개가 모여 있어 하필이면 이런 험하고 드러난 곳에 알을 품었을까 그런 우려를 했었다. 바로 그곳에 또다시 알을 품었던 모양이다. 제 새끼 다칠세라 사람을 경계하고 공격하려 했던 것 같다. 동물의 무서운 보호본능에 놀랐다.

  무지개가 마실 와서 놀다가는 하늘, 햇볕 넘쳐 나는 온화함과 막힌데 없이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이즈러지는 삶을 다잡도록 교훈을 주는 나무와 새들, 휘청거리는 노후(老后)가 되지 않으려고 나는 오늘도 그 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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