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키위새의 운명(運命)

[358] 키위새의 운명(運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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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위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제1회 You Tube Video Awards 에서 ‘가장 귀여운 영상’으로 뽑혔다. 키위새 한 마리가 날기 위해 천신만고 노력하다가 절벽의 가파른 면에 나무를 박는다. 그리고 절벽 아래로 비상한다. 작가는 날고 싶은 키위새의 소망을 위해 절벽의 수직 각도를 수평으로 눕혀 준다. 키위새는 마치 들판을 날고 있는 듯 행복하다. 키위새의 눈가에는 눈물이 번지고, 마침내 눈을 감고 다가올 땅바닥과의 해후를 기다린다. 화면은 끝나고 ‘쿠궁’ 하는 효과음만이 키위새의 최후를 말해준다. 귀엽기는커녕 참 처절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키위새를 단 두 번인가 보았다. 관광지의 전시실에서였다. 야행성인 키위새는 어두운 유리 진열장 안에 있었다. 날개는 흔적도 없고, 엉덩이는 뭉뚝했다. 몸은 만삭의 임산부처럼 둥글고 무거워 보였다. 긴 부리로 뭔가 잡아먹을 심사인지 바닥에 깔아 놓은 풀섶을 헤칠 때 ‘그 게으른 움직임’ 이 반갑기만 했다. 아, 그래도 저 긴 부리는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구나, 그나마 다행이었다. 키위새는 보통 한 개의 알을 낳는다. 자기 몸무게의 3,40퍼센트나 되는 큰 알이다. 그 알이 부화가 안 되거나 다른 동물에게 먹히면 말짱 헛수고다. 작은 알 스무 개쯤 낳았으면 지금 참새처럼 떼지어 다닐 텐데---키위새에 대한 첫 인상은 가엾고 충격적이었다.

  과거에 키위새는 천적도 없고 모든 것이 너무 편안했다. 날개는 퇴화됐고, 많은 알을 낳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민자들과 포섬 등 포유류들이 들어왔고 키위새는 멸종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키위새의 멸종이 단지 외부 환경 탓일까?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명쾌하게 밝혀 낸다. 진화의 길고 긴 과정 속에서 어떤 생물이 살아 남고 어떤 생물이 사라졌던가? 힘이 강한 생물이 살아 남았는가, 재능이 있는 생물이 살아 남았는가? 아니다. 유연한 적응력을 가진 생물이 살아 남았다.

  다윈은 생물의 생태 연구 업적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철학적 명제를 이끌어 내어 인류의 삶을 진화시켰다는데 더 큰 위대함이 있다.

  다윈의 논리는 기업과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포춘지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인 기업의 평균 수명은 40에서 50년이었다. 에디슨이 1878년 설립한 전기회사를 모태로 아직까지 번성하고 있는 GE사는 변화에 능동적이며 유연하게 적응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고, 그 변혁의 주체였던 젝 웰치는 CEO계의 전설적 인물로 남아있다.

  세계가 견제하고 두려워하는 중국의 힘은 무엇인가. 1978년 개혁 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중국은 해외 인재나 자금, 기술 등을 크고도 유연한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 결과 뉴질랜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made in china의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다. 중국이 변화 무쌍한 국제 정세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했다면 다른 사회주의 국가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유연함, 적응력마저 갖추었다면 게임은 끝나지 않았는가, 앞으로 세계의 주도권이 어디로 갈 것인지. 이런 추세라면 우리는 중국을 보면서 계속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중국 기예단의 연체동물 같은 몸놀림에 놀라고 감탄했던 것처럼.

  나는 얼마 전 아들과 일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아톰(철완아톰)’ 과 ‘밀림의 왕자 레오(정글대제)’ 등으로 일본 만화의 천황으로 불린다. 어디 일본인 뿐이랴. 수많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톰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일본인들이 그의 만화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인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 때 ‘무쇠팔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아톰’을 통해 재기의 힘을 불어 넣어준 이가 데즈카 오사무다. 데즈카 오사무는 초기에 디즈니 만화를 보고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의 ‘아톰’ 이 어쩜 ‘미키마우스’ 와 닮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일본의 저력은 기존에 있던 어떤 요소로부터 자기 자신에게 이로운 새롭고 유용한 조합물을 만들어 내 세계화시키는 것이다. 이 또한 받아들이고 변화시켜서 창조에 이르는 유연한 사고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

  키위새는 뉴질랜드의 심벌로 도처에 등장한다. 심지어 뉴질랜드 공군의 심벌과 라운델에도 키위새가 그려져 있다. 날지 못하는 새가 최고로 잘 날아야 하는 공군의 상징이라니^^^. 뉴질랜드의 키위 사랑은 오로지 뉴질랜드에만 있는 새라는 유일성과 독특함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가. Unique하다는 것이 과거에는 달콤한 자위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래 사회의 덕목치고는 너무나도 ‘우물 안 개구리’ 적인 발상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석고 기부스와 같은 사고 방식으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처럼 위태위태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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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3

[358] 슬라이스(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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