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순아! 잘 다녀 와

[351] 순아! 잘 다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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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나이는 그 때 세살이었다. 그 애가 집 마당에 나서면 휀스 저쪽으로 옆집 제 또래의 아이가 우연히 이 쪽을 바라보며 서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그 때마다 자석에 이끌리듯 한발한발 그 쪽으로 닥아 가면 저 쪽 아이도 쭈뼛거리며 이 쪽으로 오면서 “하이”하고 손을 흔들며 반긴다.

아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저도 따라 “하이”한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다가 멋적은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아서면 그것으로 만남은 끝나고 싱거운 헤어짐이다.

눈이 시원하게 크고 머리가 노오란 서양 아이가 옆집에 새로 이사 온 또래의 아이를 반갑게 친구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밋밋한 동양아이라는 걸 알고는 실망스러워 하는 게 틀림없다. 부모 따라 이민 온 어린 것이 벙어리가 되어 살고 있구나 싶어 나는 몹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가야 했었다.

그로부터 이 년후. 다시 찾아왔을 때 내 걱정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일곱살짜리 오빠가 학교에 다니는걸 샘내고 보채서 적령기도 되기 전인데 서둘러 유치원에 보내고 있었다. 아이가 영어를 곳잘해서 친구도 잘 사귀고 이웃집 아이들이 제집 드나들듯 와서 함께 딩굴고 뛰어 놀고 있질 않은가. 제 나름대로 남의 말 익히느라 고생은 했겠지만 어린애들은 그렇게 빨리 적응을 하는 것에 놀랍기만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애들은 이제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편해진 상황이다. 집에서는 우리말만 쓰도록 하는 어른들의 뜻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주말마다 바쁜 일손을 놓고 먼 - 길을 한국학교에 데려다 주며 우리말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은 저들이 한국인이기에 그렇게 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주 어려서 고국을 떠나 온 아이들. 이 곳 문화에 길들여져 한국사람이 아닌 여기 사람으로 그냥 커 갈까봐 어른들은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한국의 고전 비디오나 유행을 한참 지난 농촌드라마 등을 보여 주면서 그들에게 조국을 일깨우고 우리 문화, 우리 정서를 익혀 가도록 애쓰는 아이들의 부모를 보면서 정착의 어려움 말고 또 다른 자녀교육의 고충을 알게 된다.

“할머니 죽으시면 이건 엄마꺼네요.”아이가 일곱살 때던가. 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했던 말이 떠올라 안타까운 미소를 먹음는다. 제 딴에는 어른에 대한 경어를 쓴다고 한 말이었지만 한국어의 어려움이 바로 이런데서 시작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셨습니다.”라고 했다던 어느 철부지 며느리의 망언도 그렇거니와‘개조심'이라고 써 붙인 어느 집 대문 앞에서 한국어를 조금 배운 외국인이 ‘개조심 선생님’계시냐고 했다는 말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던 기억도 있다. 겉으로 틀림없는 한국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어찌될까? 우리 애들이 그렇게 될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아이는 이제 사춘기가 되어 칼리지에 다닌다. 한국학교에 다닐 수 있는 학년도 전부 마쳤다. 조금은 사물을 제대로 보고 이해할 수도 있는 나이와 의식수준을 갖춰 가고 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어려서 떠나 온 고국을 배울 차례다. 비록 일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저를 낳아 준 한국을 바로 보고 알기 위해 고국 유학을 떠난다. 중학교 이학년생. 왜 빵보다 김치찌개 된장찌개가 더 좋은지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엄마 아빠가 많이 보고 싶을텐데…”
  “여기에 유학 온 아이들은 삼년씩을 잘 견디던데요.”

부질없는 할머니 걱정을 당차게 일축해 버리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고 믿업다. (아무렴 순이는 잘 할꺼야.)
엄마 친구의 집에 머물러야 하는데 다음에는 그 집 딸애가 여기 유학 올 때 데리고 있어야 하는 교환조건이라나. 지혜롭고 현명한 아이디어인것 같다. 이웃해 살던 아파트 친구끼리 이십년이나 쌓아오고 있는 그들의 우정도 대견하고 아름답다.

“순아 머리 싸매고 공부하라는게 아니다. 무엇이든지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게 중요해. 그리고 너 잘 만드는 케잌 솜씨도 자랑하고 영어는 물론 여기서 익히고 배운 모든것 많이 많이 뽐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니.”

내년에 더 멋지고 성숙한 어린 숙녀가 되어 돌아올 손녀를 생각하며 이별의 섭섭함을 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