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 달(月)에 부치는 노래

[352] 달(月)에 부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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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에서 음력 대보름을 맞았다. 3월 첫째 주말 밤이었다. 남편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나는 제일 높은 바위 꼭대기에 앉아 달 구경을 하였다. 휘영청 큰 달이 바다 위에 은빛 주단 한 자 락을 깔았다. 
   
  마침, 달을 보고 내 생일임을 알았다.  기집 애가 정월 댓 바람부터 기어 나와서 팔자가 드세다나 뭐래나, 가벼운 수근 거림을 업보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등이 휠 것 같은. 하지만 세상이 나를 환영하지 않아도 나는 세상이 너무 반갑고 그립다. 내 생일상이었던 오곡밥과 보드라운 씨래기 나물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달님도 잊지 않고 제일 크고 밝은 모습으로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데, 누가 내 팔자를 왈가왈부하는지---.

  남편의 낚시는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줄이 엉켜 끊어지는 바람에 봉을 두 개나 잃어버렸단다. 한치 낚시로 바 꿔볼까 어쩔까 하면서 갯바위를 왔다갔다하는 남편의 그림자가 그저 검은 바위 같다. 나는 오롯이 앉아 달님에게 미소를 보낸다. 왜냐하면 달님은 오래된 나의 친구이기에.

  어느 날 밤, 불을 다 끄고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블라인드 틈새로 빛이 스며 들어왔다. 의아했다. 좁은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렬해서 나는 빛의 실체를 알기 위해 블라인드를 젖혔다. 하늘에 보름달이 둥실 떠 있었다. 마당은 눈이 온 듯 환하게 달빛이 쌓여 있었다. 내가 이제 서야 비로소 달을 느끼는구나, 왜 그 동안은 몰랐었는지 회한에 차서 가만히 달을 바라보았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절로 김소월의 시구가 떠올랐다. 그런데 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심장이 멈추는 듯 했다. 달 속에서 뭔가가 일렁일렁 움직였다. 배 속에 태아가 움직이는 듯, 혈관 속의 피가 힘차게 돌고 있는 듯 했다. 그 피는 너무 뜨거웠다. 얼음덩이처럼 차가우면서 그 속에 뜨거운 정열을 품고 있는 달, 달, 달. 차가운 정열, 고요한 중압감, 혼돈 속의 질서, 그런 반의적 의미의 조합이 너무 잘 맞아 떨어져 나는 그 날 정신을 놓을 번 했다. 구름도 별도 나도 모두 달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보름달 뜨는 밤에 늑대로 변해 달을 향해 울부짖는 나자리노와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면서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태백처럼. 달 때문에 미칠 수도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간신히 블라인드를 닫았다.

  그 뒤로는 달을 보는 일이 두려웠다. 그런데 블라인드 사이로 달빛이 스미는 밤이면 또 궁금해져서 살짝 틈새로 달을 엿보곤 했다. 하늘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달이 없는 날은 이쪽 창문 저쪽 창문 왔다갔다 하며 달을 찾기도 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밤하늘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소월님 말처럼.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던 달은, 그러나 알고 보면 한 가지 얼굴이 아니었다. 차갑고 따스하고, 정열적이고 냉정하며, 슬프고 기쁘고, 편안하고 예민했다. 수 천 개의 강물에 비치는 달이 모두 다르듯이, 달은 세상의 모든 표정을 닮아 있었다.

  남편은 보름날에는 고기가 안 잡힌다며 내 옆에 바위처럼 앉았다.
“보름 아닌 날도 못 잡았었는데?  킥킥--”
“마오리 달력에 그렇게 되어 있더라니까. 술이나 한 잔 할까?”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권커니 잣커니 술잔을 기우리는데, 달님도 한 잔 하고 싶은지 술잔으로 풍덩 들어왔다. 하늘에 하나, 바다에 하나, 술잔에 하나, 그대 눈에 하나, 달은 뜨고---.
“자기 소망이 뭐야? 보름달 보고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 잖아.”
“글쎄---,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주시고, 아들 공부 원하는 대로 잘 되게 해주시고, 일 좀 덜하고 여유를 찾을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달님!”
그리고 나는 저 유명한 당나라의 중매쟁이 월하노인처럼 휘영청 달빛 아래서 동생의 혼사가 이루어지도록 기원했다.“월하노인이 달빛 아래서 세상 혼사에 관한 책을 보다가, 남녀를 자루 속 빨간 끈으로 묶어 놓으면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는데, 영은이 좀 어떤 남자랑 빨간 끈으로 꽉 묶어 주면 좋겠다.”
“내 소원은---, 킹피시 잡는 거!”
“뭬야?!”
  멀리 수평선에 불빛들이 조근 조근 별빛처럼 깜박인다. 짙푸른 밤하늘에는 중국사람들이 명절을 새는지 폭죽이 화려한 꽃으로 피어올랐다. 달님은 살짝 바위 옆으로 몸을 피해주었다. 키스 타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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