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 나는 태권도 외교관 - 오진근 관장

[354] 나는 태권도 외교관 - 오진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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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뉴질랜드 태권도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베리나 위홍이(Verina Wihongi) 선수. 오세아니아가 아시아 지역으로 분류돼 있어,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과 이란 등의 강국을 제치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기란 그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뉴질랜드 선수가 1위를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위홍이 선수의 올림픽 출전은 그 자체로 뉴질랜드와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화제의 주인공 뒤에는 오진근 코치(세종태권도 관장, 39세)가 있었다.  

목표를 위해 한 눈 팔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연마해왔던 오진근 관장은, 세종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태권도 코치 생활을 해 오고 있다. 평생 한 가지만 하면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단호하다.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앞으로도 계속할거고, 지금도 항상 태권도 생각만 하는걸요."

평생 한 가지만 해 오던 그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97년 1월에 있었던 3주일간의 전지훈련. 아이들이 운동하기엔 더 없이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에, 그는 이민을 결심했고 8개월만에 모든 짐을 꾸려 이 곳에 정착했다.

"처음 왔을 때부터, 이 곳에서 태권도를 대중화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세계 각지에서 우리 태권도를 알리고 계신 사범님들을 보면서 늘 생각하던 바가 있었거든요. 일반 도장이 아닌 태권도 센터를 만들어서 뉴질랜드 인들이 태권도를 대중 스포츠로 즐기게 만들고 싶어요."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발자국으로, 1년간 무작정 영어공부에 매진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에서였다. "운동만 하던 사람이 무슨 공부를 제대로 했겠어요. 하지만, 영어를 못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일 년 동안은 영어공부만 했어요." 평소 그의 진중한 성격답게 한눈 팔지 않고 영어 공부에 최선을 다한 그는, 1년 후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해 지자 자신의 모교 이름을 딴 도장, 세종 태권도의 문을 열었다.


태권도는 가라데가 아니다.

그 당시만 해도 뉴질랜드 인들은 태권도와 가라데를 구분하지 못 했다. 하얀 도복을 입고 있는 그에게 일본인 가라데 선수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웠던 그는, 태권도를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을 거듭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가 생각한 방법은 '태권도 시범단' ! 글이나 말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것이 태권도를 알리는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했던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한인, 중국인 행사나, 정치인 파티, 공원 이벤트 등등.. 바쁠 땐 주말 마다 시범 행사를 하기도 했어요. 그 힘든 과정에서도 시범단들이 묵묵히 따라와 줬던 건,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태권도를 알리고 한국을 알리는 일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세종 태권도 시범단은 현재까지 약 250여 회에 달하는 행사를 했다.

덕분에 이제 태권도가 가라데와 다른 한국 고유의 무술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몇 년 전부터는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하는 뉴질랜드인이 숫자 또한 부쩍 늘어났다. 현재, 마운트 이든 메모리 홀 1층 강당에서 태권도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그는, 몇 년 전만해도 1층은 가라데 강습 팀이 썼는데 가라데 인원이 줄어들고, 태권도 강습생은 많아져서 결국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며 즐거운 웃음을 지었다.


"온 가족이 태권도에 푹 빠졌어요."

현재 오진근 관장의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연령과 국적은 매우 다양하다. 시티 지역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원생의 90퍼센트 이상은 뉴질랜드 현지인들.

오 관장의 수업이 진행되는 강당 한 쪽에서 태권도 동작을 열심히 따라 하며 즐거워하는 디엔 네이슨 웡 (Deanne Nathan-Wong)씨. Blockhouse Bay에서 왔다는 그녀는, 10살 박이 딸과 아들, 12살 난 조카 등 온 식구가 요즘 태권도에 폭 빠져 있다며 한국 무술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태권도를 먼저 시작한 조카 타일라(Tyla, 12세)양을 도장에 데리러오면서 수업을 구경하게 된 것이, 두 자녀를 비롯한 온 가족이 태권도를 배우게 된 계기.

자녀들에게 럭비, 사커 등 다양한 운동을 시켜 봤다는 그녀는 태권도 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말했다.  "태권도를 배운 이후로 애들이 장난꾸러기였던 아이들이 많이 의젓해졌어요. 강습이 끝나고 집에 가도 서로 태권도를 연습하고 식구들에게 시범을 보이죠. 덕분에 가정 생활이 화목해졌어요. 아이들도 좋아하구요."

타일라 양은, 태권도의 재미는 '하나하나 등급이 올라가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태권도를 배워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태권도에 대한 오진근 관장의 애정과 이민초기의 포부는 한결같다. "겉에서 보고 뉴질랜드를 천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막상 살아 보면 지옥으로 느낄 수가 있죠.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좋은 환경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해요."

그는 이번 주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올해 5월 베이징에서 열릴 세계대회와 2008년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긴장되고 분주하다는 그는, 항상 미래를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 그렇듯 밝고 행복해 보인다.


이연희 기자 (reporter@koreatimes.co.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