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국회에서 긴급 통과된 개정 임금평등법이 여성 노동계에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여성 근로자 비율이 높은 사회복지, 보건, 교육 등과 같은 부문의 노조단체 등은 개정된 임금평등법이 남녀 임금평등의 커다란 후퇴라며 전국적인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처럼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부른 개정 임금평등법과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성별 임금격차 등에 대해 살펴 본다.
대중 의견 수렴 절차 없이 긴급 개정된 임금평등법
국회는 지난 6일 임금평등법 개정을 발표하고 그 다음날인 7일 저녁 개정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당, 액트당, 뉴질랜드제일당이 찬성표를 던졌고 야당들은 모두 반대했다.
이번 임금평등법 개정은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우선 대중의 피드백을 얻기 위한 선택위원회 과정을 생략한 긴급 통과였다는 점이다.
이같이 긴급하게 처리된 법안은 이번 54대 국회들어 22번째로 직전 노동당 정부 시절인 53대 국회에서의 역대 최다 기록인 28건에 바짝 근접하고 있다.
또한 이번 개정은 지난 2020년 노동당, 녹색당, 뉴질랜드제일당 연립정부 당시 개정된 법을 뒤집은 것으로,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당도 지지한 바 있다.
현 재무장관인 니콜라 윌리스(Nicola Willis) 국민당 의원은 당시에 “국회에 서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국민당이 임금평등법을 개정하는데 기여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녀는 이번 개정에 대해서는 “우리는 성별에 관계없이 같은 일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받기 위한 단순한 개념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임금평등법(Equal Pay Act)은 동일 또는 유사한 일을 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임금을 공평하게 지급하기 위한 취지로 지난 1972년 제정됐다.
임금평등법의 주된 목적은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해 직장내 남녀 평등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 법은 특히 여성과 남성 간의 임금 차이를 줄이기 위한 여러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민감한 사안을 긴급 통과한 이유에 대해 국민당의 크리스 비숍(Chris Bishop) 교통장관은 실행 가능한 법적 투명성을 가능한 빨리 제공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액트당 부대표이자 직장관계장관인 브룩 반 벨덴(Brooke van Velden)은 “정부는 다수 시스템의 우려를 동시에 발생시키는 것과 개정 전에 임금 관련 청원이 몰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녀 임금평등을 지지하지만 임금평등 청원 절차와 관련한 기존 임금평등법 규정이 혼탁하고 불명확해졌다”며 법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녀는 기존 임금평등법에 따른 임금평등 청원 절차가 여성 근로자의 임금이 저평가되었다는 명확한 증거나 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라는 증명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부 예산 절감 목적으로 개정했다는 시각 우세
이번 임금평등법 개정이 정부가 올해 예산 발표로 예정된 22일에 맞춰 긴급하게 처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前) 고용평등기회 위원장 주디 맥그리거(Judy McGregor)는 “정부의 수입과 지출을 보여주는 예산 발표가 22일로 잡혀 있어 엄격한 내용의 임금평등법 개정에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 십 억 달러에 달하는 정부의 잠재 부채를 제거하기 위해 예산 발표 전에 개정 임금평등법이 긴급 통과됐다는 논리이다.
액트당 데이비드 시모어(David Seymour) 대표는 “반 벨덴이 정부에 수 십 억 달러 예산을 절감시켜 주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개정을 주도한 자신의 당 부대표인 반 벨덴을 추켜 세우는 발언을 하면서 법 개정의 예산에 대한 개연성 공방에 기름을 부었다.
노동당 크리스 힙킨스(Chris Hipkins) 대표는 “정부가 여성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면서 예산을 절감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힙킨스 대표는 정부가 임금평등법을 개정하는 이유에 대해 적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럭슨(Christopher Luxon) 총리는 “정부는 여성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윌리스 장관은 임금평등법 개정의 긴급 발동이 예산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면서도 장래 정부 재정에 수 십 억 달러의 비용 절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법 개정이 예산 절감 동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합리화시켰다.
그녀는 지난 8일 국회에서 “언제부터 임금평등법 개정을 고려했는가”라는 노동당 바바라 에드먼즈(Barbara Edmonds) 의원의 질문에 “2023년 12월 재무장관으로 취임하면서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정부의 임금평등 합의 규모를 보고받고 놀랐다. 비정부 부문의 임금 합의에 정부의 많은 돈을 지원하도록 돼있었다”고 응답했다.
여성 중심 직종에 직접적 영향
개정 임금평등법의 핵심은 임금평등 청원을 할 수 있는 문턱을 높인 점이다.
즉 직종의 여성 근로자 비율이 기존 60%에서 70%로 상향됐고, 이 비율이 10년 연속 유지돼야 임금평등 청원이 가능하게 됐다.
또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임금 차별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신법은 소급 적용되어 현재 진행중인 33건의 임금평등 청원들이 모두 중단됐고 이전에 합의된 조건들도 변경된다.
길게는 몇 년을 끌었던 이 33건의 임금평등 청원에는 유아 교사, 유치원 보조교사, 사회복지사, 혈액 검사원, 도서관 사서 등이 포함돼 있다.
임금평등 청원 파기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직종은 교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이다.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모든 단계의 학교에서 임금평등 청원이 있었다.
모든 단계의 학교에서 교사의 대다수는 여성인데 유아 교육에서 여성의 비율은 97%나 되고 초등학교 85%, 그리고 고등학교의 경우 63%가 여성이다.
고등학교의 경우 향후 임금평등 청원이 어렵게 됐다.
개정 임금평등법이 여성 우위 직종의 범위를 기존 60%에서 70%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중등학교교사협회(PPTA) 크리스 아버크롬비(Chris Abercrombie) 회장은 앞으로 임금평등 청원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정직인 보호 관찰원 직종도 여성의 비율이 68%로 향후 임금평등 청원을 할 수 있는 기준에 미치치 못한다.
임금평등 청원 절차 개선 vs 성별 임금평등 악화
윌리스 장관은 임금평등 청원을 하는 일부 사람들이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금협상의 뒷문으로 임금평등 청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개정 임금평등법이 더욱 투명한 임금평등 청원 제도를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 벨덴 장관은 “현행 임금평등법은 너무 관대해서 의도한 대로 임금평등 제도가 운영되지 않고 있다”며 “개정 임금평등법은 여성 비율이 높은 직종에서 성별로 인한 저임금을 더욱 잘 평가하여 임금평등 청원 과정을 개선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개정 임금평등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임금평등 청원 절차를 더욱 어렵게 함으로써 성별에 따른 임금이 더욱 불평등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노동당 카밀라 벨리치(Camilla Belich) 의원은 “개정 임금평등법은 저임금 근로자들의 임금평등 요구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여성 중심 직종에서 일하는 모든 저임금 여성 근로자들에게 큰 타격이다”며 “문턱이 70%로 높아졌고 10년 동안 청원을 할 수 없으며 임금을 비교하는 권한을 전적으로 고용주들에게 부여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9일 공공서비스협회는 임금평등법 개정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번 개정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보건, 사회복지 직종의 여성 근로자들은 분노하고 실망스러우며 상처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복지사 케이트 할셀(Kate Halsell)은 “임금평등 청원이 거의 합의될 단계였는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하니 매우 실망스럽다”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이어 “임금평등 실현은 실질적으로 커다란 차이를 준다”며 “그것은 식탁에 더 좋은 음식을 의미하고 자동차를 제때 고칠 수 있으며 집을 24시간 따뜻하게 만들 수 있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10건의 임금평등 청원이 계류중인 간호사노조도 임금평등법 개정에 항의했다.
등록 간호사 안드리아 버튼(Andrea Burton)은 임금평등법 개정을 주도한 사람이 여성(반 벨덴 장관)이라는 점에서 배신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전체 임금평등 청원 과정을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치지만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서 보조인 알렉스 카스(Alex Cass)는 “수 년 간 수집한 모든 자료와 진행했던 청원 절차가 모두 쓰레기통으로 버려져 충격을 받았다”며 “영향을 받을 사람들과 관련 전문가들의 협의 없이 긴급하게 개정된 것은 민주적인 과정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다른 사서 보조인 테싸 보울러(Tessa Bowler)는 “여성이 여성의 권리를 빼앗아간 점에서 더욱 울화가 치민다”며 “우리는 신법에 따라 다시 청원을 할 것이고 정부가 이기도록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간호사인 트레이시 모간(Tracey Morgan)은 “임금평등법 개정 소식을 듣고 47년 동안 일한 한 동료가 그만두겠다고 말했다”며 “장관이 직접 와서 2주간 이 일을 체험하면 왜 우리가 투쟁하는지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성별 임금격차
뉴질랜드의 남녀 임금 불평등은 다른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몇 년 간 성평등을 향한 노력들이 있었지만, 남녀 임금 차이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약 9~10%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평균 시급은 약 30.17달러였고, 여성은 약 27.16달러로 조사됐다.
남녀 임금 불평등은 산업과 직종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기술, 금융, 건설과 같은 고소득 직종에서는 남성의 평균 임금이 여성보다 높다.
반면에 사회복지, 교육, 보건과 같은 분야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데, 이들 직종은 상대적으로 저임금이 많다.
정부는 성평등을 위해 몇 가지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지난 2020년에는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법’이 시행되었고, 기업들이 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를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고위직이나 경영직으로 진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같은 직종 내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는 실정이다.
뉴질랜드는 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남녀 임금 차이를 완전히 해소하기까지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매년 ▲유급 육아휴직 현황 ▲여성의 노동 참여율 ▲성별 임금 격차 ▲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 ▲의회 내 여성 비율 등 10개 세부 지표를 종합해 평가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뉴질랜드는 조사 대상 29개국 중 2023년 13위에서 2024년 5위로 올라섰다.
2024년 이 조사에서 조사 대상 국가들의 남녀간 중간 임금 격차는 11.4%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