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으로 가는 길

공화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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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국왕을 국가 수반으로 하고 있는 입헌군주국 뉴질랜드가 공화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 공화국 전환에 대한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84세의 고령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권좌에서 물러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왕 통치 마감 앞두고 ‘공화국 전환’ 목소리 높아져

최근 뉴질랜드의 공화국 전환 논쟁에 불을 지핀 사람은 헬렌 클락(Helen Clark) 정권 시절 부총리를 역임했던 마이클 쿨렌(Michael Cullen) 박사.

그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 관련 토론회에서 “뉴질랜드가 공화국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길이다”라고 주장했다.

스스로를 열렬한 군주제 지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향한 공화주의자도 아닌 그저 ‘온건한’ 군주제 지지자로 소개한 쿨렌 박사는 “군주제 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만 공화국으로 가는 기류는 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의 군주제가 뉴질랜드의 젊은 세대에겐 의미가 없고 남성의 왕위 계승자와 영국 성공회교도가 현대 뉴질랜드 가치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뉴질랜드가 국가 수반을 스스로 선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58년간을 통치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을 영국 황실의 차기 후계자는 61세의 찰스 황태자이다.

쿨렌 박사는 찰스 황태자를 약간 이상한 특징의 소유자로, 또 그의 아버지 필립공을 둔감하고 편견에 찬 인물로 묘사했다.

쿨렌 박사의 말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뉴질랜드가 공화국으로 전환하는 가장 적당한 시기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시대가 끝나는 때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엘리자베스 2세는 오랜 책임감과 결단력 등으로 뉴질랜드의 여왕으로 인정해야 하지만 여왕의 서거나 통치 마감에 대비해 스스로 국가 수반을 선출할 수 있는 법 개정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했을 때 뉴질랜드 총독을 새로운 국가 수반으로 선언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향후 국가 수반은 국회나 뉴질랜드 국민에 의해 선출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왕위는 찰스 황태자에게 승계되고 공화국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곧 통치자를 권좌에서 폐위시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쿨렌 박사는 또한 뉴질랜드가 공화국이 되면 국기도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뉴질랜드 국기를 새롭게 바꾸자는 여론의 주장은 올 초에도 뜨겁게 달아올랐었는데 그는 마오리 문화를 상징하는 ‘Tino Rangatiratanga’ 국기 디자인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역대 총리들 공화국은 ‘필연’, 시기는 ‘글쎄’

뉴질랜드는 1907년 영국 자치령 지위를 획득했고 1931년 영 연방 회원국이 되었다.

영 연방은 과거 대영제국의 속령 중에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잇따라 자치권을 인정받은 뒤 1926년의 영국 의회 선언을 계기로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 의무와 본국•자치령의 대등한 지위 인정 등을 원칙 삼아 연합체를 구성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9년 인도가 대통령을 국가 원수로 하는 공화국이 된 뒤에도 영연방의 일원으로 남는 것이 인정됐으며 그 후 파키스탄, 가나, 키프로스, 나이지리아 등이 인도의 예를 따랐다.

그 동안 뉴질랜드의 역대 총리들은 공화국 전환을 얘기할 때 ‘필연’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뉴질랜드가 언젠가는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던 존 키(John Key) 총리는 임기 내에 공화국 전환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며 이 민감한 문제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입장을 보였다.

클락 전 총리는 지난해 국회에서 가진 고별연설에서 “군주제로서의 헌법적 지위가 변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은 ‘만약’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이다”고 말했다.

지난 1994년 공화국 전환에 열을 올렸던 짐 볼저(Jim Bolger) 당시 총리는 “역사의 조류는 공화국으로 흐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총선 실시 호주서도 공화국 전환 이슈화

이 ‘필연’의 시기는 항상 먼 미래의 모호한 때로 생각돼 왔으나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 호주 총리는 지난달 총선 과정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통치시대가 끝나면 호주는 영국 왕정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며 공화국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시기를 제시했다.

길라드 총리는 “호주는 여왕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호주의 마지막 군주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호주 주간 선헤럴드가 호주의 전국 성인남녀 1,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달 31일 발표한 여론조사(복수응답) 결과에 따르면 현행 영 연방 체제를 선호하는 사람은 전체의 48%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 조사 때보다 8%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반면 영 연방에서 탈퇴해 공화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은 1994년 관련 조사 실시 이후 16년 만에 가장 낮은 44%였다.

또 34%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통치가 마무리된 이후 공화정으로 전환하는 게 옳다”고 답했다.

호주는 지난 1999년 공화국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여론은 아직 군주제 지지가 다소 우세

뉴질랜드는 헌법(Constitution Act) 조항에 따라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하면 찰스 황태자가 자동적으로 국가 수반이 된다.

공화국 지지자들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달리 권력을 남용할 우려가 있는 찰스 황태자가 권좌에 오르기 전에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2010년을 살고 있는 현재 뉴질랜드가 여전히 군주국이고 독립하지 못한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마치 성인이 된 후에도 보행기를 타고 있는 아이와 같다. 영국의 여왕이 실질적으로 뉴질랜드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왜 군주제의 끈을 끊지 못하는가”라고 비난한다.

남태평양에 있는 뉴질랜드가 그 국가 원수를 지구 반대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하고 있는 한 완전한 독립국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화국 지지자들의 항변이다.

빅토리아 대학의 법학과 딘 나이트(Dean Knight) 강사는 “공화국으로 전환하는 것은 커다란 법률적, 정치구조적 변화를 요하지 않는다”며 “단지 여왕 서거후 공화국이 되겠다는 법률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면 되고 국기나 국가 상징 등은 나중에 결정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의 정치구조나 명칭 등을 그대로 유지하고 형식상 국가 수반으로 돼있는 총독을 같은 권한과 기능, 책임을 가진 사실상의 국가 수반으로 격상시키는 방법이 뉴질랜드 실정에 맞는다고 주장했다.

현재 뉴질랜드 총독은 총리의 제청에 의해 여왕이 임명하고 있으나, 이를 정부가 후보자를 지명하고 국회에서 75%의 승인을 얻어 임명하는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것.

공화국의 다른 대안으로는 대통령제가 있을 수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국 전환을 지지하는 뉴질랜드인이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은 현 체제 유지를 선호하는 비율이 약간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나키 뉴질랜드(Monarchy New Zealand)의 사이몬 오코너(Simon O'Connor) 회장은 “레바논의 폭력사태나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보듯 공화제는 비틀거리고 있다”며 “뉴질랜드 군주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했을 때 그 중요성을 보여줄 것”이라며 군주제를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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