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뉴질랜드인들은 2025년에는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았을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개선된 경제 전망을 내놓았지만 올해도 중반을 휠씬 넘긴 현재 나아진건 별로 없다는 한숨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중앙은행은 2분기 경제 성장이 정체됐다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준 경기 침체가 누구의 책임이며 왜 끈질기게 지속되는지에 대해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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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한 경제 회복
키위뱅크(Kiwibank)가 지난 7월 발표한 지역별 경제 성장에 관한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평균 경제점수는 10점 만점에 4점으로, 이전의 3점에서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키위뱅크는 이같은 결과가 뉴질랜드의 경제 회복이 순탄하지 않고 아직 부서지기 쉬운 상태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키위뱅크의 자로드 커(Jarrod Ker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의 조류가 변하고 있지만 회복은 지역별로 고르지 않고 의미있는 경제 개선은 아직 멀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쯤 경제 회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길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낮은 대출 금리에 재고정하는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해 본격적인 회복은 2026년에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경제 성과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여 남섬이 북섬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우스랜드와 오타고는 건설업과 관광업의 부흥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타라나키, 노스랜드, 기스본 등은 경제가 뒷걸음쳤다.
웰링턴과 오클랜드는 평균보다 낮은 경제 성과를 나타냈다.
웰링턴은 2점에서 3점으로 약간 개선됐지만 여전히 비관적인 분위기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오클랜드는 3점에서 4점으로 소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커는 뉴질랜드 경제가 호주 경제에 비해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뉴질랜드의 실업률은 지난 2분기에 5.2%로 상승한데 비해 호주는 약 4%로 낮다는 것이다.
경제 악화와 일자리 부족 등의 영향으로 지난 6월말까지 1년 동안 뉴질랜드를 떠난 시민권자가 7만1,800명을 기록하면서 13년 만에 가장 많은 인구 유출을 보였다.
이주자 중 18세에서 30세 사이 청년층이 약 38%를 차지했고 상대적으로 많은 일자리와 높은 임금을 가진 호주로의 이민이 유행처럼 불어났다.
경제 침체의 책임은 누구에 있나?
좀처럼 떨쳐 나오지 못하는 깊은 경제 침체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어디에 돌려야 할까?
이코노미스트들은 이 질문에 대해 불황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한 중앙은행에 있는지, 무리한 지출 삭감을 실시한 정부에 있는지, 어느 하나를 지목하는 것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키위뱅크의 커는 물가 안정을 위해 경제 침체를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점도 공언하며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고, 고금리를 오랫 동안 유지한 중앙은행에 큰 책임을 묻는 이코노미스트다.
어떤 이들은 정부의 재정 지출 삭감과 대규모 공공인력 감축이 경제에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포메트릭스(Infometrics)의 수석 예측가 가레스 키어넌(Gareth Kiernan)은 “2020~2021년 당시 노동당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제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열시킨 것이 애초부터 잘못된 점이다”고 지적했다.
2020년 3월 중앙은행은 코로나19 대확산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1%에서 0.25%로 크게 낮췄고, 이후 저금리를 유지하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자 2021년 10월부터 금리 인상에 나서 5.5%까지 끌어 올렸다.
또 당시 노동당 정부는 임금 보조금, 재확산 보조금 등 재정 지출을 확대했다.
지난 2022년 12월 정부의 재정 지출은 팬데믹 이전 전망에 비해 13.5% 높았다.
이같은 지출 확대로 정부 재정은 오는 2029년 6월로 끝나는 2029 회계연도에 가서야 겨우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통상 경제 사이클을 매끄럽게 돌아가도록 조화를 이루며 실시되지만 당시에는 상승은 너무 뜨겁게, 하락은 너무 가파르게 만들었다는 평가이다.
키어넌은 “정상적이라면 경제가 과열될 때 경기를 식힐 정책들이 나오고, 경제가 둔화되거나 불황으로 진행될 때 정부 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인하하는 정책들이 나오는 수순을 밟지만 처음부터 경제를 과열시킨 결과 지난 5년 동안 경제 침체기에도 활성화 정책을 사용할 수 없었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민당 정부의 재정 정책 결정은 불황을 악화시켰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키어넌은 모든 경제 주체들의 국내총생산(GDP)를 분석한 결과 지난 2년 동안 경제 침체 원인의 3분의 2는 금리에 있고, 20~25%는 정부 정책과 관련되며 10% 정도는 수출 부진에 있다고 밝혔다.
ANZ의 마일스 워크맨(Miles Workman)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의 정책 기조는 정부 재정정책에 달려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과 정부의 각기 명확한 책임 수치를 정량화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오클랜드 대학의 로버트 맥쿨로치(Robert MacCulloch) 경제학 교수는 최근 몇 년 동안 양대 정당 정부에서 경제를 미숙하게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맥쿨로치 교수는 “직전 노동당 정부와 현 국민당 정부에서 경제가 꽤 오랫 동안 좋지 않았다”며 “양대 정당은 서로 상대 정당 탓을 하는데, 이는 국민에 대한 사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빚의 커다란 근원인 임금 보조금은 노동당 정부에서 도입됐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당은 대기업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싱크탱크 ‘뉴질랜드 이니셔티브(NZ Initiative)’의 에릭 크램튼(Eric Crampton)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 기간 중앙은행의 실수가 현재의 경제 상황을 좀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팬데믹 기간 급등한 인플레이션을 지켜본 중앙은행이 물가가 다시 1~3%의 목표 범위를 벗어나는 위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경제 불확실성
더딘 경제 회복에 미국 관세와 같은 외부의 경제 불확실성이 뉴질랜드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1일 뉴질랜드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10%에서 15%로 상향 조정했다.
뉴질랜드는 한국, 일본, 유럽연합(EU)과 동일한 15%로 정해졌지만, 기존보다는 관세율이 높아졌다.
이는 호주, 영국 등 일부 국가가 10%대를 유지한 것과 대비되며, 국내외 언론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 “뉴질랜드만 유독 차등 적용을 받았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미국은 뉴질랜드의 두 번째로 큰 수출 상대국으로,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93억달러 상당의 상품을 구매했다.
뉴질랜드의 대미 수입액은 87억달러이다.
무역수지 측면에서 보면 뉴질랜드가 소폭 무역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이것이 관세 인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뉴질랜드는 판단하고 있다.
15% 관세 부과 대상에 뉴질랜드 외에도 미국에 무역흑자를 기록한 대다수 국가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토드 맥클레이(Todd McClay) 무역부 장관은 “10% 관세 수준에서는 수출업체들이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었지만, 15%는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번 결정은 뉴질랜드뿐 아니라 세계 무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뉴질랜드는 상향된 관세로 호주와의 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웨스트팩(Westpac)의 대런 깁스(Darren Gibb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관세 인상이 수많은 뉴질랜드 수출업체들에게 실망스러운 결과일 것”이라며 “호주는 10%로 유지돼 가격 경쟁력에서 뉴질랜드가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고기, 양고기 등 주요 수출품목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뉴질랜드의 대표 수출품 중 하나인 와인 역시 EU와 동일한 15% 관세 대상에 포함된다.
중앙은행은 지난달 미국의 관세 인상이 현재까지 뉴질랜드의 수출품이나 수입품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글로벌 무역 규제는 뉴질랜드 경제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미국발 관세 전쟁에 따른 뉴질랜드 영향은 국제 수요가 무역 규제와 경제 정책 불확실성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의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준금리 3년래 최저 수준으로 인하
지난 7월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중앙은행은 경제 회복이 정체되자 지난달 20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2022년 9월 이후 거의 3년 만에 가장 낮은 3%로 떨어졌다.
기준금리는 지난 1년 동안 7차례에 걸쳐 모두 2.5% 포인트 인하됐다.
중앙은행은 이날 성명을 통해 “뉴질랜드의 경제 성장은 2분기에 정체됐다”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고용 감소, 일부 필수품 가격 상승, 주택 가격 하락 등으로 인해 가계와 기업의 지출이 제약을 받았다”라고 금리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지난 5월 예상했던 것에 비해 뉴질랜드 경제가 지난 2분기에 낮은 성장을 보였다는 것.
경제 회복이 정체됐다는 중앙은행의 비둘기파적 언급에 ANZ, BNZ, ASB, 웨스트팩, 키위뱅크 등 대형 은행들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모두 오는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해 2.5%로 만들어 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1~3% 목표 범위 상단에 근접하고 있지만 뉴질랜드 경제에 유휴생산능력이 있어 국내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시키며 내년 중반까지 2% 전후로 돌아갈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2분기 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2.7%로, 1분기의 2.5%에서 상승했다.
중앙은행은 3분기 소비자물가지수가 식품비, 기타 교역재, 서비스 요금 등의 상승으로 목표 범위의 상단인 3%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앙은행은 “뉴질랜드 경제 회복 속도에 대한 추가 데이터가 금리 향방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며 “중기 인플레이션 압력이 예상대로 완화된다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낮출 여지가 있다”라고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중앙은행은 주택이 가계 재산의 핵심 요소이고 가계 지출에 영향을 미친다며 지속적인 주택시장 침체가 부진한 주택 건설과 가계 소비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앞으로 6개월 이내에 기존 주택 대출의 거의 절반 정도가 낮은 금리로 재고정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가계의 이자 부담 완화로 가계 소비도 점차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경제 전망에 대해 가계와 기업의 신중한 행동을 경제 성장을 저하하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꼽았고, 금리인하 효과가 경제 전반에 파급되면 경제 회복에 탄력을 주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보았다.
중앙은행은 3분기부터 다시 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빠른 경제 회복보다는 완만한 회복을 전망했다.
ASB의 웨슬리 타누바사(Wesley Tanuvasa) 이코노미스트는 “자산 효과에 기반한 소비 급증은 아직 멀었고, 주택 가격도 당분간 크게 오르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타누바사 이코노미스트는 뉴질랜드 주택 가격은 2021년말 고점 대비 약 15% 낮으며 의미 있는 상승 모멘텀은 순이민 증가나 노동시장 회복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연말까지 실현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