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이민자를 더욱 수용하려는 정책을 놓고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당과 뉴질랜드제일당이 내홍을 빚고 있다. 국민당이 지난달 기술 이민자를 위한 새로운 영주권 정책을 발표한 것에 대해 뉴질랜드제일당은 호주로의 이민을 증가시키는 비효율적인 이민 정책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전통적으로 반이민 노선을 보여 왔던 뉴질랜드제일당은 이번 이민 정책 발표에 대해 연립정부 협정의 ‘의견 차이 인정’ 조항을 적용할 방침이어서 이민을 내년 총선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밀고 나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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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8월부터 기술 이민자 영주권 취득 조건 완화
이민 장관 에리카 스탠포드(Erica Stanford)와 경제성장 장관 니콜라 윌리스(Nicola Willis)는 지난달 23일 기술 이민자들이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하는 두 가지 새로운 길을 내년 중반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기술이민 부문에서 ‘기술직 경력 경로(skilled work experience pathway)’과 ‘트레이드 및 테크니션 경로(trades and technician pathway)’ 등 두 가지 새로운 영주권 취득 방법이 내년 8월에 시행되고, 어떤 직업들이 포함될지 등 세부적인 사항은 시행 시점에 앞서 발표될 예정이다.
스탠포드 장관은 “이번 정책은 고용주들이 기술 이민자들을 계속 보유하는 것을 돕고 장기 경제 성장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민 수준을 책임있게 유지하면서 고숙련 이민자를 수용하는데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윌리스 장관은 “이민자들이 중요한 기술과 충분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사업체들이 호소하고 있다”며 “우리가 그러한 문제를 고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직 경력 경로’를 통한 영주권은 호주.뉴질랜드표준직업분류(ANZSCO) 1~3의 기술 레벨을 가지고 직접적인 관련 경력이 최소 5년을 가진 이민자가 해당된다.
5년 경력 중 2년은 중간 임금의 최소 1.1배의 보수를 받은 뉴질랜드에서의 경력을 포함한다.
현행 제도에서 뉴질랜드 경력은 3년을 요구한다.
뉴질랜드의 중간 임금은 현행 시간당 33.56달러이고, 그의 1.1배는 36.90달러이다.
‘트레이드 및 테크니션 경로’를 통한 영주권은 레벨 4 이상의 관련 학위를 보유하고, 학위 취득 후 최소 4년의 경력을 가진 특정 트레이드 또는 테크니션 직업을 가진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다.
4년 경력 중 18개월은 중간 임금 이상의 보수를 받은 뉴질랜드에서의 경력을 포함한다.
스탠포드 장관은 이전에 건설, 전기, 배관 등 특정 기술 직종에 종사하는 트레이드가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하는 적절한 경로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녀는 새로운 ‘트레이드 및 테크니션 경로’의 영주권이 산업에서 필요한 실제적인 기술을 인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뉴질랜드 대학의 학위 점수를 올려 뉴질랜드 대학 졸업자의 영주권 취득을 보다 쉽게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 대학의 학사 학위 점수는 현행 3점에서 5점으로, 석사 학위 점수는 5점에서 6점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영주권 취득에 한층 유리하게 된다.
스탠포드 장관은 “이는 사람들이 뉴질랜드에서 학업하는 것을 장려하고 졸업 후 뉴질랜드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이민 전문가들은 새 제도가 도입되면 중간 임금 기준과 경력 요건 때문에 대상 인원이 제한적일 수 있으나, ANZSCO 시스템이 곧 새로운 뉴질랜드 직업 목록(New Zealand Occupations List)으로 대체돼 세부 운영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또한 중간 임금 상승과 경력 충족 간 조율이 과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영주권 신청자의 건강검사와 신원조회, 영어조건 등은 변동이 없다.
영주권 취득 완화 반기는 재계
재계는 기술 이민자에 대한 영주권 취득 완화가 사업체들에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신뢰를 줄 것이라며 환영했다.
비즈니스 뉴질랜드(BusinessNZ)의 캐더린 리치(Katherine Rich) 회장은 “정부는 뉴질랜드 경제에 미치는 기술과 경력의 가치를 재확인했고 노동시장의 현실에 맞는 더욱 좋은 이민 정책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리치 회장은 “사업체들은 이제 투자에 대한 신뢰가 생겼고 더욱 안정적인 인력으로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사업체들은 더욱 많은 견습생들을 받을 수 있게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고급의 훈련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변화가 직업에 맞는 기술을 가진 적격의 인재를 찾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해외의 전문 인력은 신선한 관점을 가져와 뉴질랜드 기업의 작업 방식을 강화하고 더욱 경쟁적으로 개혁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고 덧붙였다.
고용주.제조업주협회(EMA)의 조안나 홀(Joanna Hall) 수석은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이주 근로자들은 묶여 있다”며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청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영주비자는 많은 분야의 이주 근로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일 것이다”고 말했다.
홀 수석은 국내 인력을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많은 사업체에도 이민자 고용을 가장 먼저 하지 않도록 말한다고 밝혔다.
주요 산업 분야의 사업체들은 심각한 기술 인력 부족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리크루트 업체 ‘워킹 인(Working In)’이 수 백 개의 뉴질랜드 사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최근 발표한 2025년 비즈니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87.8%의 사업체들이 국내에서 필요한 인력을 채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68%는 이주 근로자가 사업 운영에 필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이민 정책 반대하는 뉴질랜드제일당
국민당, 액트(ACT)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뉴질랜드제일당은 새로운 이민 정책이 영주권을 받은 이민자들의 호주 재이민을 증가시킬 것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뉴질랜드제일당 윈스턴 피터스(Winston Peters) 대표는 “뉴질랜드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은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하고 호주로 이민갈 것이다”며 새로운 이민 정책에 대해 연립정부 협정의 ‘의견 차이 인정’ 조항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흔히 사용되지 않는 ‘의견 차이 인정’ 조항 적용은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있는 상대 정당들의 특정 정책에 대해 정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정당의 특별한 입장을 내놓는 것을 일컫는다.
이 조항 적용을 밝힌 정당은 국회에서 그 특정 정책에 대해 찬성하지 않게 된다.
반이민 정책으로 잘 알려진 뉴질랜드제일당이 연립 정부의 이민 정책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이번에 ‘의견 차이 인정’ 조항을 발동한 것.
피터스 대표는 “뉴질랜드는 호주를 향한 징검다리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이민자를 수용하여 훈련시키고, 기술 수준을 높이고, 그들의 가정을 보살피지만 그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버린다. 이것이 효율적인 이민 정책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작년 호주 시민권을 신청한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절반 정도는 뉴질랜드 출생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것은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며 “우리 당은 일부 중요한 이민자 인력을 유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러한 초점이 맞지 않는 이민 정책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젊은 뉴질랜드인들에게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터스 대표는 기술 인력의 단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워크비자로 이미 뉴질랜드에 있는 이민 근로자의 비자 기한을 3년 연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들에게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하는 길을 열어주는 이번 이민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피터스 대표는 “장기적으로 우리는 뉴질랜드 산업과 고용주, 키위 근로자의 요구에 초점을 맞춘 깔끔한 이민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는 계획없이 더욱 많은 이민을 받아들여 차세대에 부담을 주는 정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윌리스 장관은 뉴질랜드제일당의 이번 이민 정책 반대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대꾸했다.
윌리스 장관은 “이번 정책은 세심하게 설계된 것이고 좁은 영주권 취득 경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탠포드 장관은 이번 이민 정책은 중립적이고 이미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징검다리 이민, 우려할 수준인가
호주 시민권을 신청한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절반 정도는 뉴질랜드 출생이 아니라는 피터스 대표의 언급은 호주 내무부의 자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호주 내무부에 따르면 2023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호주 시민권을 신청한 약 9만2,000명의 뉴질랜드 시민권자 가운데 48%가 뉴질랜드가 아닌 해외 출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뉴질랜드 인구의 거의 30%가 해외 출생이라는 2023년 센서스 결과에 비추어 해외 출생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호주 시민권 신청 비율 48%가 이민자 출신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이른바 징검다리 이민이 우려할 수준이라고 단정짓게 하는 것은 무리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스탠포드 장관은 피터스 대표의 주장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민자가 뉴질랜드 시민권을 통해 호주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뉴질랜드 영주권 취득을 위한 근로 기간, 영주권 취득 후 시민권 신청 대기 기간, 호주 이주 후 호주 시민권 신청 대기 기간 등 14년 정도가 걸린다고 지적했다.
즉 지난해 호주에서 시민권을 신청한 이민자 출신 뉴질랜드 시민권자라면 14년 전에 처음으로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스탠포드 장관은 또 “뉴질랜드는 새로운 영주권 제도가 호주의 징검다리 이민으로 이용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며 “왜냐하면 호주의 이민 제도가 뉴질랜드로의 징검다리 이민을 더욱 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기술을 가진 이민자라면 처음부터 호주로 이민가는 길이 더욱 쉽다는 취지이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영주권자의 호주 징검다리 이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몇 년 동안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뉴질랜드와 달리 상대적으로 많은 일자리와 높은 임금을 가진 호주로의 이민이 크게 늘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키위들의 호주 이주가 현저히 늘어났던 1960년대말 이후 지금까지 경제 상황에 따라 많고 적음만 변할 뿐이지 호주로의 인구 유출이 항상 유입보다 앞섰다.
2004~2013년은 매년 평균 3만명의 순유출을 나타냈고, 2014~2019년은 매년 평균 3,000명을 기록했다.
호주 당국은 한때 늘어나는 키위들의 복지 비용과 제어할 수 없는 이주 행렬, 그리고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한 후 호주로 이주하는 아시안 및 퍼시픽 아일랜드인의 징검다리 이민 등에 따른 사회 보장 경비로 매년 10억 호주달러를 뉴질랜드에 요청한 바 있다.
뉴질랜드측에서 이 요청을 거절하자, 호주는 2001년 2월 사회보장 관련 법률을 개정하면서 호주에 입국하는 모든 뉴질랜드 시민권자는 영주권자가 아닌 비보호 특별범주비자상의 임시 거주자로 분류하여 각종 사회복지 대상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2023년 7월부터 뉴질랜드 시민권자가 호주에서 4년 이상 거주할 경우 영주권자가 되지 않더라도 바로 호주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EMA의 홀 수석은 기술 이민자들이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하고 호주로 이주하는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은 몇 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일하면서 삶의 터전을 일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