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상위권 가격, 세금·경쟁·공급망까지 풀어보는 이야기

장을 보러 가면 느끼는 현실
오클랜드의 한 대형 슈퍼마켓.
토요일 오후, 장을 보러 나온 60대 교민 김 모 씨는 계산대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달걀 한 판이 또 올랐네. 고기도, 채소도 예전보다 값이 만만치 않아요. 집에 오는 길마다 ‘오늘은 뭘 빼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많은 교민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다.
뉴질랜드의 식료품 가격은 체감상 비쌀 뿐 아니라, 실제로도 OECD 38개국 중 상위권에 속한다는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우유, 치즈, 달걀 같은 기본 식재료, 그리고 과일과 채소는 OECD 평균보다 각각 28%, 34% 더 비싸다는 분석도 나온다.
OECD 통계로 본 뉴질랜드의 위치
공식 통계를 보면, 2023년 뉴질랜드의 식료품 가격은 OECD 평균보다 약 3% 높았다.
2021년에는 무려 14%나 높았고, 2022년에도 9% 수준이었으니, 격차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상위 5위권 안에 든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어떤 품목이 특히 비싼가’이다.
• 우유•치즈•달걀 → 국내에서 많이 생산하는 품목임에도 불구하고 OECD 평균보다 비쌈
• 과일•채소 → 기후와 유통 문제로 가격이 크게 오르내림
“집 앞 마트에서 사는 사과 값이 일본이나 영국보다 비싸다니, 믿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이렇게 비쌀까? ― 첫 번째 이유: 세금 구조
뉴질랜드는 식품에도 15% 부가가치세(GST) 를 그대로 매긴다.
예외가 거의 없다. 우유, 빵, 신선 채소, 달걀 같은 기본 식품도 모두 과세 대상이다.
반대로 주변 나라들은 어떨까?
• 호주는 기본 식품 대부분을 GST 면세한다. 우유, 빵, 신선 과일•채소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 영국은 아예 0% 세율을 적용한다. 빵, 우유, 고기, 채소 등 대부분의 기본식품에는 부가세가 없다.
•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즉, 뉴질랜드 소비자들은 장을 볼 때마다 15%의 추가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같은 우유 한 통이라도, 호주에서는 세금이 안 붙고 뉴질랜드에서는 붙는 구조적 차이가 장바구니 무게를 가볍게 하지 못하는 이유다.
두 번째 이유: 경쟁 부족, ‘얇은 시장’ 구조
뉴질랜드 식품 시장은 두 개 대형 슈퍼마켓 그룹이 장악하고 있다.
Pak’nSave와 New World를 운영하는 Foodstuffs, 그리고 Countdown(이제 Woolworths로 리브랜딩).
두 회사가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경쟁당국(Commerce Commission)은 이 구조가 소비자에게 불리하다고 지적하며, 2023년에 ‘식료품 산업 경쟁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공급자 보호, 도매공급 규제, 분쟁조정 제도, 그리고 2024년부터는 ‘단가표시 의무화’도 도입됐다.
예를 들어 “100g당 가격”을 표시해 소비자가 비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체감은 아직 크지 않다.
특히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오클랜드에선 경쟁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대안이 없어 가격이 더 비싸다.
“시골은 마트가 하나뿐이니 선택권이 없어요. 결국 비싸도 살 수밖에 없죠.”라는 독자의 목소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세 번째 이유: 기후.공급망의 불안정
뉴질랜드는 농업 강국이지만, 동시에 기후 리스크에 취약하다.
2023년 사이클론 가브리엘(Gabrielle) 때, 북섬의 과수원과 농장이 큰 피해를 입으며 과일•채소 가격이 폭등했다.
그 영향은 몇 달 뒤까지 이어졌다.
또한 섬나라라는 특성 때문에 국제 물류비용도 높다.
글로벌 곡물•사료 가격이 오르면 뉴질랜드의 유제품, 육류 가격도 같이 오른다.
2024년 한 해는 비교적 안정세였지만, 2025년 들어 다시 연 5% 가까운 상승세가 관측되고 있다. 특히 과일•채소는 7% 이상 올라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
독자가 체감할 수 있는 사례
• 달걀: “작년만 해도 5달러대였는데, 이제는 7~8달러가 기본”이라는 교민들의 체감.
• 치즈: 뉴질랜드의 대표 수출품이지만, 정작 국내 소비자가 사는 가격은 OECD 평균보다 높음.
• 사과•키위: 해외에서는 뉴질랜드산 과일이 합리적 가격으로 팔리는데, 국내 마트에서는 오히려 비싸게 느껴진다는 역설.
“우리는 원산지 옆에 살고 있는데, 왜 더 비싸게 사야 하나요?”라는 물음이 계속 반복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능한 선택
비싸다고 손 놓을 수만은 없다.
독자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생활 팁은 다음과 같다.
1. 단가 표시(Unit Price) 확인: 무게•용량 대비 가격을 비교해 ‘진짜 저렴한 상품’을 찾는다.
2. 계절•산지 대체: 제철 과일•채소를 고르고, 가격이 급등한 품목은 냉동•통조림으로 대체.
3. 계획적 장보기: 충동구매를 줄이고, 일주일 단위 식단을 미리 계획.
4. PB 상품 활용: 브랜드 대신 마트 자체 브랜드 활용.
5. 로스 코너(유통기한 임박 제품) 적극 활용.
6. 공동구매: 지인•이웃과 함께 대량 구매 후 나눔.
7. 가공식품 대신 기본 식재료 직접 조리.
작은 실천들이 모이면 체감 지출을 분명히 줄일 수 있다.
정책의 과제와 방향
정부와 당국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 세금 개편 논의: 기본 식품에 대해 GST를 면세할지 여부는 여전히 논란. “서민 장바구니 부담 완화”와 “행정 효율성 저하”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 경쟁 촉진: 법 제정과 단가 표시제 도입으로 시장 투명성을 높이고 있으나, 실제 가격 안정 효과는 지켜봐야 한다.
• 공급망 회복력: 기후 충격이 반복되는 만큼, 원산지 다변화와 저장•물류 인프라 강화가 필수.
궁극적으로는 정책•기업•소비자 세 축이 함께 움직여야 장바구니가 가벼워질 수 있다.
뉴질랜드의 식료품 가격은 단순히 “비싸다”를 넘어, 세금•시장 구조•기후 리스크가 얽힌 복합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생활 속 작은 지혜, 정책에 대한 관심, 소비자의 선택이 모여 변화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