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싶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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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은 눈

0 개 919 수필기행

■ 반 숙자 


우리 집 파수꾼 미세스 짜루는 해마다 한 번씩 출산(出産)을 한다. 정월 대보름쯤이면 휘영청 찬 달빛 아래 연인을 찾아온 미스터 견(犬)공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앉아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이상스러운 것은 이 외딴 터에 있는 암캐가 발정한 것을 동네 개들이 어떻게 아느냐 하는 점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후각이 고도로 발달되어 냄새를 맡고 찾아온다니 희한한 일이다. 한두 마리는 으레 침식을 같이 하다시피 와 살기도 하고 어쩐 날에는 대여섯 마리까지 원정을 와서 서로 싸우고 어울리고 야단들이다.


세상에는 못된 사람을 욕을 할 때 개 같은 *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말이 별로 맞는 말이 아닌 성 싶다. 개를 욕에 쓰는 이유는 개방된 섹스 때문인 듯싶은데 장소와 때를 구별 못한다는 데서 오는 듯하다. 상대를 고르는 방법은 동물 중에서 가장 고등(高等)하고 의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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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미세스 짜루는 하얀 털이 차분하고 군데군데 누런 점이 박혀서 언뜻 보면 똥개도 아니요, 그렇다고 명견은 더욱더 아닌 얼굴이 오종종한 그저 그런 시골 개다. 이왕이면 못난 자식보다 잘 생긴 며느리를 보아서 손주 놈은 일품으로 빼어 보리라는 욕심처럼 우리도 그랬다. 후보 개들 중 가장 몸집이 미끈하고 잘 생긴 세파트견을 골라 우리 집 짜루하고 한 광 안에 가두고 문을 걸었다. 어찌 된 일인가. 이놈 들은 타협을 모른다. 우당탕 싸우고 으르렁거리고 박살나게 뒤집어 놓는 듯하더니 문짝 하나가 나자빠지면서 짜루가 튀어 나왔다.


실패였다. 제가 싫다는데 어쩌랴, 인간들도 자유결혼으로 치닫는데 너라고 봉건주의로 매어 둘소냐. 이런 심정으로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난 이른 아침, 눈 쌓인 사과나무 밑에 짜루란 놈과 못난 검둥이가 밀월을 즐기고 있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 미세스 짜루는 지조가 있는 놈에는 틀림이 없다.


눈이 녹고 시냇물이 쪼록쪼록 흐르고 그러더니 양지마다 파아란 새싹이 뾰조름이 돋아났다. 짜루는 어느덧 배가 망구쟁이를 해 가지고는 노산(老産)이라 그런지 양지쪽에 누우면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아침 살얼음이 언 쌀쌀한 날씨인데 짜루는 새끼를 자그마치 여덟 마리나 낳아놓고 추워 떠는 새끼들을 보듬고 있었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탓에 짚자리도 깔아주지 못한 채 맨바닥 이었으니 아무리 짐승이라 하나 어미인 짜루의 심정이 오죽하랴. 부랴부랴 볏짚을 깔아주고 미역국을 끓여 넣어주고 백 촉짜리 전구를 켜 주고 한 참 바빴다. 그제서야 조금은 자괴의 마음이 누그러지는 듯 했다.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짜루를 바라보노라면 나는 눈으로 말 하는 개의 이야기를 단박 알아듣는다. 또 그이가 출타중일 때 빈집을 혼자 지키면 짜루는 누가 시킨 일처럼 개집에서 나와 현관 앞에 버티고 누워 밤을 지내기가 일쑤다.

얼마나 충직한 파수꾼인가. 개와 나와의 교감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코를 약간 위로 치켜들고 슬픈 듯 깜박이지 않는 조용한 눈에는 반드시 탄원이 들어 있다. 개집은 좁은데 여덟 마리의 강아지를 한 마리도 다치지 않게 누우려니 그 조심스러움이 어떠하랴, 짜루의 애소하는 눈빛 때문에 궁둥이짝을 쳐들어 보니 거기 양수도 채 마르지 않은 강아지 한 마리가 깔려 있었다. 눈도 못 뜬 강아지를 어미 품속에 넣어주니 짜루는 혀로 핥아서 양수를 말리고 있었다.


날씨는 한결 누그러졌다. 꽃샘추위로 멈칫했던 춘신(春信)이 속속 날아들고 있을 때 움트는 사과나무 밑에 나와 앉은 짜루의 모습이 유별났다. 비스듬히 누워 고개를 길게 빼고 눈을 감은 채 무엇을 참는 듯, 그린 듯 앉아 있다. 내가 가까이 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상스러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짜루야, 어디 아프니? 왜 그러고 있어?”


개는 기운 없이 눈을 떴다. 눈곱이 말라붙은 게슴츠레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한참동안 턱을 내 무릎에 받친 채 있더니 코를 사타구니로 박는다. 짜루가 가리킨 곳에는 막내 젖이 젖몸살이 나서 사발만큼 부어 있었다. 손을 대어 보니 성이 난 젖이 펄펄 끓는 듯 뜨거웠다. 아리아리하도록 퉁퉁 부어 오른 젖몸살의 아픔을 짜루는 저렇게 참고 있는 것이다.


서둘러서 스트렙토마이신 주사를 놓았다. 하루 한 번씩 맞는 주사를 짜루는 아주 신통하게 맞는다. 주인아저씨가 주사기에 약을 넣어 가지고 가까이 가면 옹동그리고 누워 젖을 먹이다가 어제 맞은 넓적다리를 슬그머니 쳐든다. 주사를 놓을 때마다 우리 내외는 놀랜다. 누가 이런 개를 욕에다 쓰는가.


그 날은 장날이었다. 모처럼 장을 보고 돌아와 보니 개가 없어졌다. 어미는 고사하고 새끼조차 한 마리 없다. 가슴이 철렁했다. 뒷산에서 살쾡이라도 내려와 물어갔나 싶어 애가 탔다. 여기저기 찾다 보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개집에서 3미터쯤 떨어진 사랑채 부엌에 널따랗다 짚을 펴고 새끼들에게 젖물리고 있지 않은가. 자식을 위한 모성의 행위야말로 창조의 시원(始原)이요, 최고의 예술임을 짜루에게서 느끼며 부끄러워진다.


한 달이 넘어 일곱 마리는 이웃에서 나누어가고 씨 강아지로 암놈 한 마리만 남겨 놓았다. 짜루는 날마다 한 차례씩 제 새끼가 사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젖을 물려준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좍 퍼졌다. 정말 이렇게 지혜로울 수가 있는가. 미물인 미세스 짜루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 같은 개와, 개 같은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너무 영물이라 오래 두면 못쓰니 보신탕집에 넘겨주라는 이웃의 귀띔을 나는 묵살해 버렸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다. 짜루와 내가 수없이 누비며 사랑을 심은 과수원 양지쪽 어디쯤이 무덤자리로 좋을까 하고. 그리고 비목(碑木)이라도 한 그루 세워 주리라고. 짜루는 댑싸리 그늘에 누워 고마운 듯 갸웃이 바라보고 있다. 조용한 대낮, 강아지풀 한 자락이 바람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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