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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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0 개 1,068 오소영

몸집이 만만치 않은 외국 여가수가 우리가곡 ‘보리밭’을 열창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가수 ‘발레리 쉬티’란 여인이라고 자막에 떴는데 노래를 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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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사람이 우리 노랫말을 어렵게 소화해 부르는 것을 보면 묘한 감동에 코 끝이 찡해 온다.


조국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세계적 오페라가수 조수미 씨가 일찌감치 뿌려놓은 씨앗이 결실을 맺은게 이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미 세계 정상에 올라있던 조수미씨가 스물여덟살 때니까 30여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영국의 가장 큰 음반회사에서 조수미씨에게 레코드 하나를 내주겠다고 제의를 했다. 


조수미 씨는 우리 대한민국의 가곡 ‘보리밭’을 넣어달라는 조건을 내세웠고 어렵게 허락을 받아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레코드 자켓에 한글로 ‘보리밭’ 제목까지 당당하게 세상에 알려지게 만들 수가 있었단다.


그만한 실력자가 아니라면 어림도 없을 일을 해 낸 것이었다.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했던 애국자 조 수미. 한껏 돋보이는 인격에 존경심이 더해진다. 


2012년 러시아를 여행 중일 때의 어느 날이었다.


일정 중에 점심식사가 궁전으로 되어 있어 호기심이 만만치 않았다. 동토(冬土)의 나라 러시아도 한여름의 태양빛은 무섭도록 따가웠다.


‘상트페데르부르크’는 정원이 아름다운 궁전들이 여기저기 참 많기도 했다. 과거 권력자들의 흔적들로 화려했던 옛 궁전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모스크바’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도시었다.


사회주의가 붕괴되자 쏟아져 들어오는 서구사회의 관광객을 위하여 활짝 문을 열고 맞이했다.


오밀조밀 꽃들이 화사한 정원을 거쳐서 고급 카펫이 깔린 내실로 안내를 받았다. 여행복 차림으로는 너무나도 안 어울리는 분위기여서 슬며시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귀족의 초대를 받기라도 한듯 아늑하고 포근한 방으로 들어섰다.


엷게 퇴색된 벽지며 그 벽에 걸린 흐릿한 그림 몇점이 구 시대의 방 냄새를 확 풍겨왔다. 가구는 치웠는지 없었고 방 귀퉁이엔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방을 가로질러 길게 놓인 식탁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무슨 메뉴의 음식을 먹었는지는 뚜렷한 기억이 없다. 


발소리도 없이 들어온 어느 여인이 사뿐이 피아노 앞에 앉더니 조용히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이 고달픈 여정의 나그네를 어루만지듯 가슴깊이 파고 들었다. 껄끄럽게 낯선 음식이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으로 바꼈다. 초대받은 이의 기쁜 마음으로 모두가 즐거워지는 표정들이었다.


어느 순간일까? 너무도 귀에 익숙한 곡이 방 안을 가득 울렸다. 아! ‘아리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누군가가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따라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너도나도 입을 모아 합창을 하면서 어깨마저 들썩거렸다. 식사는 뒷전, 한바탕 놀이방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코리안이라는 걸 알아차린 그녀의 직업적인 서비스에 한껏 놀아난 풍경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리라. 유로를 벌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함께 공감하는 순간 만큼은 진지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국에서 우리의 아리랑을 들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흥이 나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 울먹해 지기도 하는건 왜인지?... 


아리랑이 끝나자 숨돌릴새도 없이 이번에는 보리밭을 연주했다. 차분하게 분위기가 바꼈다. 바람에 출렁이는 고국의 청보리 밭 이랑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어 있을까? 아니면 잠시 두고 온 고국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무섭게 치받혀 오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왈칵 눈물이 솟구치려는 감정을 참고 있으려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토록 긴 세월이 흘렀건만 보리밭에 얽힌 내 서름은 떠나지를 않으니....


시골에서 살아본 적 없으니 보리밭을 직접 본 일이 내겐 없다. 그럼에도 무섭게 아픈 보리밭 추억이 내 머리속에 깊이 박혀있어 평생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6.25전쟁, 1.4후퇴 때 피난지에서의 일이었다. 부지런히 내려가던 피난길에서 종전을 맞이했고 귀환하는 도중이었다.


음력으로 섣달 스무엿새, 구정 새해를 나흘 남겨둔 날이었다. 시름시름 감기처럼 앓던 일곱살 여동생이 홍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집안은 갑자기 난리가 났다.


이불 보따리를 풀어 아이를 가두듯 보를 만들고 아버지는 지키듯 그 애의 동정을 살폈다.


홍역에 침을 맞으면 안된다는데 그 애는 그 날 침을 맞고 왔던 것이다. 피난길에 병원도 약도 없으니 그냥 낫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침 집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침을 맞고 돌아온 후 아이의 얼굴에 까만 반점이 생겨났다. 빠알갛게 솟아오를 열 꽃이 잘못된 걸 깨닫고 뒤늦게 침 맞힌걸 후회하며 부모님은 당황했다.


어머니는 어디가서 토끼똥이라도 주워와야 한다며 미친듯이 산으로 뛰어갔다. 나 보고는 빨리 보리밭에 나가 보리 뿌리라도 캐어 오라고 소리쳤다. 엉겁결에 길에 버려진 꼬챙이 하나를 주워들고 밖으로 나갔다.


전부 꽁꽁 얼어붙어 미끄럼판 같은 밭 둔덕에 퍼런풀 같은건 눈씻고 봐도 없었다. 텃밭이 보리밭 일리도 없었다.


어느밭이 보리밭인지 알 수도 없고 황당해서 서성대기만 했다. 더러 얼음밑에 푸르스름한게 보이면 꼬챙이를 드리댔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손은 시리고 바람도 모질어 견딜수가 없었다. 이런걸 시키는 엄마가 야속해졌다. 너 때문에 내가 먼저 얼어죽겠다며 아픈 동생에게 욕이 저절로 나왔다. 발을 동동 구르며 입김으로 손을 녹이면서 사뭇 울다싶이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끌어 안았다. 반가움도 잠시 내 손을 이끄는 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동생이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닫자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만 같아 언니의 팔에 매달렸다. 동생이 죽어가는 안타까운 순간에 그깟 추위를 못참아 욕을 했던 자신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못난이 언니.


우리집 귀염둥이 여동생. 그 애는 유난히 총명해서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피난길 그 춥고 힘든 길에서도 보채는 일 한번 없었다. 걷다가 힘들면 슬쩍 아버지의 자전거 발걸이에 올라타기도 하고 오빠의 것에도 올라타며 재롱을 부렸다.


아플 때도 엄마의 무릎에 기대어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누구를 괴롭히지도 않았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었으면 좋았을 걸. 성급한 어른들이 침을 맞히는 실수로 그 애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내일 모레 설엔 예쁜옷 지어줄거냐며 엄마를 조르더니 하늘나라 여행 떠나려고 그랬던가.


한강 빨래터에서 무수히 물에 적셔 강뚝에 널어말린 백옥같은 옥양목, 언니의 혼수 이불감을 염치도 없이 먼저 입고 하늘나라 가버린 동생.


전쟁통에 폭격도 잘 피했는데 병원이 없어 아이를 죽였다며 자책 하시던 아버지의 비통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를 언 땅 야산자락에 묻고 그 곳을 떠나 올 때 발길 돌리지 못해 울부짓던 어머니의 몸부림.


내가 자식을 둔 부모가 되니 가슴속에 자식을 묻고 사는 두분의 깊은 상처가 얼마나 아픈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언니라는 호칭을 놓치고 자책으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 나. 내게 보리밭은 그래서 슬픈 정서로만 떠오르는 것이 되었다. 청보리 밭 영상이 물결처럼 출렁이는 가곡 ‘보리밭’이 내겐 언제나 낯설다. 빙판같은 밭에 모질고 차가운 바람이 지금도 가끔씩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으로 추억되기 때문이다.


예정된 시간이 끝났는지 사람들이 일어서 나가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현실로 돌아와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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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보니 그 때의 그 여행상품은 꽤 괜찮은 아이디어 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궁전에서 60여년 긴 세월 묻어두었던 감정을 일깨워 휘둘렸던 기억을 이토록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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