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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는 방
이야기 속의 딸은 아직 미성숙하고 의존적인 소녀의 신분으로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스스로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푸른색 수염으로부터 느낀 불안한 직감만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된 딸은 물질적 풍요로움과 세속적인 즐거움 안에서 여전히 남편에게 의존한 채 살아간다. 그때까지 딸은 스스로 독립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남편이 여행을 떠나고 열쇠를 맡긴 후 드디어 혼자가 되었을 때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만 했고 그제야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녔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가치를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가져오기 위해 치러야 할 고통과 희생이 너무나 컸고, 그것을 위해 맞서 싸우며 강물처럼 피를 흘려야 했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다시 남편에게 잡혀 어두운 방구석에서 피를 흘리며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처럼 매달려 다시 종속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알게 된 딸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힘과 머리를 동원하여 남편에게 맞섰다.
그리고 결국 남편을 해치우고 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었음을 뜻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 여성들은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고, 바로 남성들에게 종속된 틀을 깨고 자기 자신이 주인인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지금도 피를 흘리며 자신의 방을 갖기 위해 애를 쓴다.
하성란의 소설에서처럼 실제로 나는 뉴질랜드에 사는 한 여성으로부터 남편에게 감금당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의지할 데라곤 남편밖에 없는 약한 아내를 매일 폭력과 거짓으로 대하는 백인남성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다행히 그들은 이제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방을 지니게 되었고, 나는 그들의 앞날에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