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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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2 4,681 NZ코리아포스트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살고요~ 우리들은 닭장속에 모여살아요~” 암탉들이 꼬꼬거리며 평화스럽게 노래를 불러대도 닭장 속은 그저 심난하기 만 하였다. 수탉 2마리 때문이었다.

햇닭인 노랑머리 수탉과 묵은닭인 빨강머리 수탉이 한 지붕 아래서 살아 온지가 몇 달이 됐으면 형님 아우 하면서 잘 지낼 만도 한데 매일 줘 패고 줘터지고 난리 북새통이었다. 빨강머리 수탉에게 매일 쪼이는 노랑머리 수탉은 얼굴이 성할 날이 없는데 어느 날은 눈두덩이 피가 나고 퉁퉁 부어 눈도 못 뜨고 있었다. 그래도 혈기는 왕성하여 슬그머니 뜬 한쪽 눈으로나마 암탉들을 보면 침을 질질 흘렸다. 빨강머리 수탉이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여차 없이 짝짓기를 하려고 달려들다가 또 들켜 작살이 나는데 닭털이 한주먹씩 빠져 바람에 휘날리기도 하였다.

덩치 큰 수탉 2마리가 그 난리를 피우니 암탉들이 놀라 알 떨어졌는지 알둥지의 달걀숫자도 줄어드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수탉 한 마리를 잡아먹기로 작정했는데 어느 수탉을 잡아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터줏대감 노릇을 한 빨강머리 수탉을 잡아먹자니 좀 야속한 것 같고 노랑머리 수탉을 잡아먹자니, 세상에 수탉으로 태어나 짝짓기 한번 제대로 못했는데 저세상으로 보낸다는 것이 너무 불쌍하고... 게다가 그동안 빨강머리 수탉에게 얻어터진 게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어찌됐든, 노랑머리 수탉이 때깔도 좋고 그림 빨도 잘 받을 것 같아 빨강머리 수탉을 잡아먹어 버렸다.

노랑머리 수탉아, 이제 대장이 됐으니 꽃밭에서 마음껏 놀며 좋은 유정란이 나오도록 하여라.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빨강머리 수탉이 있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짝짓기를 못해서 안달하더니 막상 대장이 되고나니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암탉 보기를 소가 닭 보듯 하는 게 아닌가,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안한다더니... 경쟁자가 없어져서 의욕을 상실했나? 예전에 수탉이 암탉을 치근덕거리는 공작새도 물리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경쟁자가 있어야 힘도 세지고 강해지는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명색이 때깔 좋은 수탉인데 알아서 하겠지 뭐,

지난여름에는 암탉들이 달걀을 많이도 품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품은 닭들은 그런대로 병아리를 절반씩은 깠는데 세 번째 품은 닭은 모두 꽝이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모두 줄줄이 꽝이었다. 생기다 만 것이 아니라 아예 생기지 않은 것을 보니 결론은 유정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먹이도 제대로 못 먹고 다른 암탉들에게 왕따당하며 한 달 가까이 긴 밤 지새우며 알을 품었는데 모두 꽝이었을 때 그 좌절, 그 슬픔은 당해본 암탉 아니면 그 심정을 모를 것이다.

그래 하루만 더 기다려보마, 다음날도 삐악거리는 병아리 소리는 안 들리고 어미닭은 달걀들을 끌어안고 아가야 빨리나와... 꼬꼬꼬 하고 울어대지만 아... 아가는 엄마소리를 들을 수 가 없다. 내가 달걀을 모두 꺼내 버려도 암탉은 울부짖으며 둥지를 떠날 줄 모른다. 하도 애처로워 다른 암탉이 깐 병아리 한 마리와 알껍데기를 몰래 넣어줬더니 내 새끼 아니라고 쪼아대며 난리를 피운다.

병아리도 못 까고 밖에 나가면 다른 암탉들에게 당해야 할 수모는 또 어떤가, 이놈이 와서 찍어대고 저놈이 와서 찍어대고 별 욕 다 얻어먹고 정말 끔찍하다. 이게 다 노랑머리 수탉, 저 자식 때문이야~ 아니 그럼 우리도 지금까지 거의 무정란을 먹었단 말이야?

올해 작은 닭집에서 자란 햇닭 여섯 마리가 알 낳을 때가 되어 노랑머리 수탉을 옮겨 넣어주었다. 그런데, 저 자식 꽃밭에서 뭐하는 거야? 눈만 멀뚱멀뚱 뜨고 햇빛 잘 드는 곳에 퍼져있지 않은가, 그리고 모이를 주면 햇닭들이 못 먹게 쫓아버리고 혼자서 배터지게 먹고 있었다. 전에 빨강머리 수탉은 햇닭들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면서 꼬시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수탉의 의무란 무엇인가? 짝짓기 열심히 해서 달걀을 품은 암탉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말고, 매나 고양이 같은 공격자들이 오면 꼬끼오~ 소리를 지르고, 먹이는 암탉들이 먼저 먹고 난 후에 찌꺼기만 먹고, 지렁이나 벌레들을 많이 잡아 주고, 또 짝짓기 열심히 해서 인간들 몸에 좋다는 유정 란을 많이 낳게 하고...

그런데 노랑머리 수탉은 의무를 거꾸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먹이를 암탉들이 다 먹어 치우기 전에 먼저 먹자. 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종족 번식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잡아먹힐 텐데 뭐,

얼마 전 한국친구하고 통화 할 적에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와 도를 닦는 심정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는데 노랑머리 수탉도 요즘 도를 닦는지 높은 곳에 올라가 주접을 떨고 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나도 한때는 잘 나갔어요. 지금은 몸을 추스르고 있는 중이라고요.’

수탉도 아마 이렇게 지난날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겨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의무를 소홀히 한 놈은 가마솥에 삶아야지 별수 있나 뭐, 때깔 좋은 수탉 그림도 다 그렸겠다.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스티나
ㅎㅎ 왕하지님 기대반 설레임반으로 글 올려놓으실때마다 빠뜨리지않고 읽고있는 애독자입니다.

너무 재미있고 마음에 와닿는 글들을 더이상 댓글없이 읽는다는게 염치가 없을거같아 다른분들처럼 한 줄 올립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기쁜 날 되시기를! 잘 읽고 갑니다.
왕하지
유스타나님, 염치가 참 많으십니다. ㅎㅎㅎ,

그렇게 신경써주시니 더 좋은글로 답해야 할텐데...

저도 가끔 글을 읽고 안 읽은 것처럼 입을 싹 닦기도 하는데

가히 존경스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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