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로초 2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풍로초 2

0 개 1,078 수필기행

■ 정 성화 


동생이 전화를 했다. 엄마가 요즘 말하는 것도 귀찮아하고, 매일 챙겨 보던 TV 드라마도 재미없다고 하며 그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고 했다. 폐질환으로 십년 넘게 입퇴원을 반복했으니 그럴 만하다고 이해하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옷을 사드리고, 신나는 노래 테이프를 틀어드려도 엄마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감정이란 걸 죄다 내다버린 것 같기도 했고 모두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사는 게 귀찮다고 했다. 위로하는 차원에서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 잔 타 드렸더니, 몸에 좋지 않은 걸 권한다며 타박하셨다.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닌 듯했다.

 

내가 중학생일 때까지도 엄마는 좁은 마당 한 편에 분꽃과 채송화를 심었고 종종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꽃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가 더 좁고 마당이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엄마는 더 이상 화초를 기르지 못했다.

 

33e5c64d45fd0e7f9b6c513783102a1f_1581368086_4744.jpg
 

어떻게 하면 엄마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우리 집 화분 중에서 가장 열심히 꽃을 피우는 ‘풍로초’ 화분을 갖다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풍로’란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바람이 일어나면서 불이 잘 붙도록 하는 도구가 아니던가. 엄마가 소파에 앉았을 때 바로 내다보이는 자리에 화분을 놓아드렸다.

 

엄마의 우울한 표정은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쇼파 위의 쿠션 하나만하게 작아진 엄마. 그러고 보니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본 지도 오래 되었다. 쌀을 씻거나 나물을 다듬으면서, 청소기를 돌리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코미디 프로를 보며 웃다가도 멈칫했다. ‘어쩌고 계실까.’

 

며칠 후,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화분에 물을 얼마 만에 주면 되느냐고 물으셨다. 목소리가 조금 달라진 듯했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베란다 창문을 열어 풍로초에게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화분의 흙이 말랐는지 살펴본다고 했다. 처음보다 꽃이 훨씬 많이 피었다고 할 때는 목소리톤도 살짝 올라갔다. 이때다 싶었다. 엄마 손이 약손이라 그런 거라고 했다. ‘약손’이라는 내 말에는 엄마가 스스로 병을 이겨보려는 의지를 가져달라는 의미도 들어있었다.

 

“뭐 그럴려고…”

 

그 날 엄마와 나는 십 분이 넘도록 통화를 했다. 당신이 자란 옛집에는 마당이 꽤 넓었고 계절 따라 이런 저런 꽃들이 많이 피었다는 얘기를 했다. 여든이 넘은 엄마가 당신이 예닐곱 살이었을 때의 집 풍경을 생생히 기억한다는 게 놀라웠다.

 

갑자기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 풍로초는 잠시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를 자주 들여다봐주는 노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더 열심히 잎을 내고 꽃망울을 밀어 올리지 않았을까. 우울증이란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닥쳐왔을 때 되도록 기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는 ‘정신적 겨울잠’ 이라는 해석도 있다. 풍로초가 엄마에게 그만 겨울잠에서 깨어나라고 거실 창을 톡톡 두드렸을지도 모른다. 비록 사람의 언어로 소통한 건 아니지만 풍로초와  엄마는 차츰 서로가 얘기를 들어주는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식물을 길러온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식물은 ‘탓’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한다. 햇볕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바람이 들지 않으면 들지 않는 대로, 뿌리를 덮고 있는 흙이 좋든 안 좋든, 참고 견디며 노력한다. 식물은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살아낸다는 것’ 에는 생명에 대한 의지가 들어있다. 성실하다는 낱말은 어쩌면 사람보다 식물에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갖다드린 풍로초를 들여다보며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긍금하다. 풍로초를 보며 엄마 가슴 속 화분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가 조금이나마 움이 틔웠기를 바란다. 당신 삶에 간간이 피었던 꽃들을 떠올리며 잠시라도 행복했기를 바란다. 꽃이 없는 날은 잎이 꽃을 대신하는 걸 보면서 당신의 노년을 너무 서글퍼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풍로초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일년만이었다. 엄마의 눈길과 손길이 머물렀던 것이라 더욱 애틋하다. 풍로초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얼마나 더 살고 싶어 했는지를. 당신의 병을 이겨보려고 시간에 맞춰 열심히 약을 먹고 억지로라도 수저를 드는 모습을 풍로초는 안타깝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오늘도 풍로초는 열 송이 넘도록 꽃을 피웠다. 창가 더 가까이로 화분을 옮겼다.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풍로초를 보러 내려오실 것 같아서다.

 

* 출처 <<수필과 비평>>

 

박노자 “성공만 비추는 한국식 동포관, 숨은 고통과 차별 외면”

댓글 0 | 조회 798 | 2024.04.24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이… 더보기

4월

댓글 0 | 조회 274 | 2024.04.24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까까머리 학창시… 더보기

강화된 워크비자와 무슨 상관?

댓글 0 | 조회 1,433 | 2024.04.24
일요일이었던 지난 4월 7일, 이민부… 더보기

척추가 튼튼해야 건강이 유지됩니다

댓글 0 | 조회 470 | 2024.04.24
일상생활에서 어떤 특정한 동작을 할 … 더보기

어떤 종이컵 모닝커피

댓글 0 | 조회 580 | 2024.04.24
이른아침 부지런히 외출준비를 서두른다… 더보기

공부가 나를 망쳤다 2

댓글 0 | 조회 402 | 2024.04.24
지난 시간엔 사회학자 엄기호님의 글을… 더보기

내 사랑으로 네가 자유롭기를

댓글 0 | 조회 184 | 2024.04.24
엄마와 딸의 춘천 청평사 템플스테이이… 더보기

은퇴를 위한 이주 선택 안내서

댓글 0 | 조회 1,198 | 2024.04.23
은퇴를 앞두고 뉴질랜드로 이주를 계획… 더보기

리커넥트 “Care to Self-care?” 멘탈헬스 프로젝트 보고

댓글 0 | 조회 219 | 2024.04.23
지난 4월9월 부터 4월11일까지, … 더보기

열흘 붉은 꽃 없다

댓글 0 | 조회 127 | 2024.04.23
시인 이 산하한 번에 다 필 수도 없… 더보기

동종업계 이직제한

댓글 0 | 조회 1,138 | 2024.04.23
고용재판의 절대 다수는 피고용인이 고… 더보기

장내 미생물과 질병의 연관성

댓글 0 | 조회 230 | 2024.04.23
장내 미생물이란 사람의 장에 살고 있… 더보기

단전관리 하는 법

댓글 0 | 조회 106 | 2024.04.23
호흡을 하면서 늘 단전관리를 해 주세… 더보기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

댓글 0 | 조회 496 | 2024.04.20
팻 분(Pat Boone)의 감미로운… 더보기

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댓글 0 | 조회 172 | 2024.04.10
▲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지난해 출… 더보기

공부가 나를 망쳤다

댓글 0 | 조회 372 | 2024.04.10
공부를 하라고 해서 공부만 했는데, … 더보기

그 곳에 있었다 - 부처님도, 우리 마음도

댓글 0 | 조회 143 | 2024.04.10
경주 남산 용장골 ~ 연화대좌 순례용… 더보기

비자 심사 지연엔 다 이유가 있었네

댓글 0 | 조회 1,623 | 2024.04.10
본국 외의 그 어느 국가를 방문하더라… 더보기

이번달 수도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어요!

댓글 0 | 조회 1,198 | 2024.04.10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이… 더보기

시인

댓글 0 | 조회 172 | 2024.04.10
시인 :파블로 네루다전에 나는 고통스… 더보기

축기의 비결

댓글 0 | 조회 165 | 2024.04.10
* 제가 단전호흡을 할 때, 계속 비… 더보기

마이너스 인생 살아가기

댓글 0 | 조회 933 | 2024.04.09
개념적으로 마이너스 인생이라고 하면 … 더보기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픈 기억에 마주했을 때

댓글 0 | 조회 426 | 2024.04.09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예기치 않… 더보기

현대인의 심리 불안, 대추차가 좋아요

댓글 0 | 조회 210 | 2024.04.09
최근 한방의 질병 예방 및 치료 효과… 더보기

장내 미생물총과 유전

댓글 0 | 조회 188 | 2024.04.09
장내 미생물, 사람의 체내 세포수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