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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애인

0 개 1,335 수필기행

■ 김 혜정 

 

오늘도 전화벨이 울린다.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눈살을 찌푸리는 나를 피해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이들은 아빠의 이런 모습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아들은 살금살금 뒤따라가 방문에 귀를 댄다. 통화 내용을 였듣다가 문을 살짝 열고 염탐을 시작한다.

 

이런 남편의 모습은 낯설었다. 무뚝뚝한 성격에  누군가를 다정하게 챙기는 것 같아서 불안하기까지 했다. 점점 지나친 행동을 일단 지켜보며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 두 명과 자칭 노인네라고 부르는 형님을 만난다. 네 명으로 이뤄진 멤버는 한 주도 얼굴을 안 보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고 노래방도 다닌다. 월드컵 경기가 있을 때에는 호프집에서 만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열띤 응원을 한다.

 

자주 만나는 것이 지겹지 않느냐는 물음에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단다. 남자들도 여자처럼 만나면 이야깃거리가 많다고 한다. 대체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냐고 물었다. 회사일, 마누라, 자식 이야기를 한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술이 흥건하게 취하면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하며 서로의 마음을 달래준다고 했다.

 

그랬던 멤버 중에 한 명이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어제까지 통화했던 친구의 죽음 앞에 다들 의아해 했다. 언제나 함께하리라는 확신 앞에서 앞날은 그저 맑고 푸르기만 했던 것일까. 한쪽 날개를 잃어버린 것처럼 세 남자는 아파했다. 이남자들은 끈끈하게 더 똘똘 뭉쳤다. 

 

작심을 하고 요일까지 정해 두었다. 수요일에는 무조건 만나자고 약속을 했단다. 몸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남자들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같이 간다고도 했다. 서로를 챙기는 마음이 얼마나 애틋하던지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수요일만 되면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일주일을 어찌 기다렸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는 애인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약속 장소를 정하는 데도 신중했다. 몸에 좋은 음식점이나 맛집을 찾아가며 만났다. 수요일 밤을 즐긴 이 남자들은 다음날 또 전화를 하여 살뜰하게 안부를 물었다. 어제는 잘 들어갔는지, 아침밥은 먹었는지, 쉬엄쉬엄 일을 하라는 말까지 남긴 후에야 마무리가 되곤 했다. 나는 내 자리를 친구들에게 빼앗긴 것만 같았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섬세해지는 것일까? 점점 대담해지는 나와 반대로 남편은 감성적이고 작은 일들에도 신경을 쓴다. 남편은 친구를 떠나보내며 마음이 변화가 생겼다. 여자들이 모르는 남자만의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남자의 우정에 대해 생각하다가 아들이 읽는 <<만화 삼국지>>가 보였다.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형제의 의를 맺으며 의기투합하는 도원결의桃園結義가 떠올랐다.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의형제를 맺거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합심할 것을 결의하는 일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 사람은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하고 의리를 저버리거나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함께 죽여 달라고 맹세를 한다. 남편의 우정도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처럼 관계가 끈끈해지고 있다.

 

남편은 친구의 건강 상태를 알면서도 챙기지 못한 아쉬움으로 며칠을 슬픔 속에 잠겨 있었다. 핸드폰에 남겨진 사진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했다. 제대로 된 사진 하나 없다며 아쉬워 했다. 그래서일까. 가까운 친구들과의 추억을 더 많이 남기고 싶다고 한다. 죽음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도 싶단다. 가정을 돌보는 것보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남자의 마음을 어찌할까. 가정이 있고 그 다음에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통화를 마친 남편은 콧노래를 부르며 외출할 준비를 한다. 옷장을 열고 무엇을 입고 갈까 고민에 잠겨 있다. 무표정으로 있는 나에게 남편은 “어떤 옷이 괜찮은 것 같아? 하늘색 티 셔츠에 이 바지는 어울려?” 하고 물었다. 

 

나는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아무거나 입고 가세요.” 라고 말했다.

 

말끔하게 단장한 남편은 소파에 앉아서 시계를 보고 있다. 나란히 앉은 나와 아이들은 남편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쉰다. 심사가 뒤틀린 나는 남편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아빠 수요일 애인 만나러 가니까 우리끼리 밥 먹자,”

 

남편은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남자들의 우정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단단하기가 쇠를 자를 정도로 굳은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단금지교 斷斷金之交만이 나의 머릿속에서 맴돈다. 

 

수요일의 애인이여! 세상 끝날 때까지 영원하길 바라본다.

 

* 출처 <<수필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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