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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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사랑

0 개 1,541 오소영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녀처럼 곱고 아름다운 여인은 본적이 없다.

 

요즘 배우나 탈랜트중엔 비길만한 미인이 많기도 하다. 그렇지만 성형으로 만들어낸 인물들도 있어 그녀처럼 순수한 자연 미인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방금 핀 복사꽃처럼 화사한 피부가 눈이 부셨다. 속눈썹 긴 까만눈, 오똑한 코, 입술도 유난히 부드러운데 웃을 때 드러나는 고른 치아까지...

 

우리시대의 인기 여배우 ‘정윤희’를 많이 닮았다고나 할까?.. 그의 이름은 ‘노 경주’.

 

열여덟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들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런 미녀와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같이하는 자리에선 우리들이 찬밥신세가 되었다. 그렇더라도 마음씨까지 고운 그녀는 언니들을 놓치지 않고 따라다녔다. 미워할 수가 없는 착한 동생같은 친구였다.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다.

 

“언니들 미안해요, 나 결혼해..”

 

축하한다는 말보다 한방 맞은 씁쓸한 기분이 먼저였다. 어떤 용감한 남자가 그를 일찍이도 차지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새침떼기 골로 빠진다던가. 인물값 하느라고 벌써부터 연애를 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배신감이 들면서 기분이 씁쓸했다.

 

그녀는 언니들을 달래듯 남자와 만나게 된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불과 두어달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누군가가 자기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아 불안했다. 겁이나서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뛰다시피 집 앞까지 가서 대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가려는데 어떤 남자가 등뒤에 서 있었다. 식구들은 같이 온 사람인 줄 알고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말쑥하게 군복을 입은 앳된 청년이 서 있었다.

 

놀라서 지켜보는 가족들 앞에서 청년은 갑자기 넙죽 큰 절을 했다.

 

“저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따라왔습니다.”

 

자기가 누구라고 깔끔하게 인사절차도 당당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가족들이 당황해 한건 물론이었다. 부모님들이 잘 달래서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기는커녕 매일같이 찾아와 읍소를 하면서 간청을 했다.

 

청년은 반듯한 미남으로 예의도 바른 군인이었다. 철들기 전 열 여덟살 꽃띠처녀의 마음은 은연중 설레고 있었다.

 

부모님이 딸의 눈치를 알았는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그녀석 어리긴 해도 패기 하나만은 남자다워 쓸만 하구만...”

 

종전직후. 그 시절엔 군인들의 인기가 좋았던 세월이기도 했다. 빳빳하게 날이 선 파란 군복을 입고 씩씩하게 결혼식장을 입장하는 앳된신랑. 하얀 면사포를 쓰고 다소곳이 들어오는 신부는 천사같았다. 어린 한쌍의 신랑신부. 풋풋한 풀냄새 꽃향기가 식장 가득 풍겨 나오는 것 만 같았다.

 

정말로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들에게 축하객들은 탄복을 했다. 아낌없는 박수로 축하해 주었다. 미모를 뽑내던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그렇게 시집을 갔다.

 

신랑은 잠시 휴가중이던 군인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여인과 짝이 되어 개선장군처럼 돌아갔다. 마치 깜짝 쇼처럼....

 

그녀를 보내는 우리들 마음은 홀가분하기만 했다. 너무 예쁜 꽃에 가려서 존재감도 잃은 채 지냈던 시간들이 억울해서였을까?

 

얼마나 깨가 쏟아지게 재밌는 신혼을 살까?

 

어린 부부가 소꼽장난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불을보듯 짐작이 갔다. 아마도 내년 이때쯤이면 귀여운 아기를 품에 안고 나타나겠지. 그런 생각을 끝으로 그는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여름이 물러갔다. 창밖에 구르는 낙엽을 보면서 가슴이 서늘 해 졌다.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계절이었다.

 

문득 시집간 경주가 궁금하고 보고 싶어졌다. 다급하게 안부라도 묻고 싶어졌다. 지금이라면 전화라도 걸겠지만...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었을까? 내친김에 부랴부랴 경주의 친정집을 찾아나섰다.

 

집 앞에서 인기척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만에 신발을 질질끌며 누군가가 나왔다. 집에 있는 사람이라곤 해도 차림새가 너무 엉망이었다. 그랬음에도 경주? 그녀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럴리가 없질 않은가. 이쪽을 보았는지 멈칫 뒤돌아 들어가려는 모양새로 주춤거렸다.

 

“경주 소식 좀 알려고 왔는데요... 잘 살고 있겠죠?”

 

(손님 대하는 예의가 영 아니네) 불쾌감을 누르며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꼭 대답을 들으려는 참을성도 없었다. 한마디 툭 던지고서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돌아서는 내 등을 밀치듯 누군가가 감싸 안았다.

 

“....언니, 나... 경주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 당황한건 이 쪽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그냥 멀뚱히 서 있었다. 아무도 안 만나고 싶었다는 그녀를 설득하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다.

 

복사꽃처럼 화사했던 얼굴은 어디갔을까? 통통하던 볼살도 많이 빠져있었다. 열여덟살 싱싱함은 이미 시들어서 혼이 나간 것처럼 사람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신혼방에 감금당하듯 갇혀서 바깥 구경을 못하고 살았다고 울먹였다. 처음엔 그림자처럼 행동하는게 깊은 애정의 표시인줄 알아 좋아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혼자서 갈 곳과 함께 할 곳이 분명 따로 있게 마련 아닌가. 어디든 껌딱지처럼 따라다니는게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심지어 대문밖에 있는 화장실 가는 것도 혼자 갈 수가 없었다.

 

부대복귀를 하고나면 살 것 같아 그 날을 기다리며 참아냈다.

 

웬걸 그는 요지부동 귀대할 생각을 안했다. 큰 일이었다.

 

부모같이 너그러운 부대장님을 만난건 다행이었다. 어린 신랑을 특별히 배려해 용서도 받고 얼마간의 휴가를 더 받기도 했다. 그녀에겐 견디기 힘든 불행이었지만...

 

그의 감시는 병적으로 더욱 심해져갔다. 마음대로 나설 수 있는 자유가 아쉽고 그리워 미칠 것만 같았다. 하늘을 맘껏 날으는 새들이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달콤하리란 신혼의 꿈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귀엽게 봐주신 부대장님께 끝내 배신을 하고야 만 신랑. 탈영병의 딱지를 달고 붙들려 가서 결국은 영창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길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짐을 꾸려 그 집을 뛰쳐 나오고야 말았다.

 

혼인 신고도 하기전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끝을 맺은 그녀.

 

미인 박명이라고 했던가..... 열여덟 청춘을 그릇된 사랑으로 끝을 낸 ‘노 경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다. 욕심부리지 말고 중용을 지키라는 교훈일 것이다.

 

권력도 명예도 돈도 사랑까지도 넘침의 뒤끝은 결국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 정도를 지켜 살아야만 뒤탈이 없는 법이다.

 

해가 바뀌고 다시 새 날들을 마주하면서 참 옛날 일들이 문득 문득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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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고운 밤 하늘을 만나면 내 시선이 하염없는 유영을 한다.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속에서 옛 친구들 얼굴이 하나씩 선명하게 나타난다. 아득한 세월 저편. 그 때의 때묻지 않은 스무살 청춘의 아가씨들이...

 

남유달리 타고난 미모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사랑의 열병을 치러낸 경주. 과유불급의 진리를 일찍이도 일깨워 준 친구.

 

그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을까? 모진 세월은 그 고운 얼굴에도 할퀸 흔적을 남기고 가겠지...

 

내 머리속에 각인된 그녀는 열여덟살. 복사꽃 활짝 핀 얼굴로 영원히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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