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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본명: 금이今伊)은 1926년 10월 28일, 경남 충무시 명정리 서피랑 꼭데기 허름한 집에서 태어납니다.
선생 스스로 ‘불합리한 출생’ 이라고 말한 바대로, 선생은 아버지는 있으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것이나 다름없는 성장기를 보냅니다.
14살 때 4살 연상인 어머니와 결혼하여, 18세에 그를 낳은 아버지는 바깥으로만 떠돌면서 딴 살림을 차렸습니다.
어머니에게 혹독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사랑을 구걸하듯 하여 자신을 낳은 어머니, 선생에게 있어 아버지는 증오심과 반항심의 대상, 어머니는 연민과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부모를 바라보며 사회 기존 관습이나 질서 전부를 위악적인 것으로 규정할 만큼 반항 정신이 강했던 선생은 극단적인 감정 속에서 공부는 별로 였고, 소외감과 고독감을 보상이라도 받듯 독서와 시 쓰기에 몰두합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 선생은 전매청 서기였던 김행도와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6.25 전란 중, 행방불명이 되었던 남편은 50년 말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뒤이어 세 살짜리 아들마저 잃게 되고 외동딸 영주만 남게 됩니다.
‘불합리한 출생’보다 더욱 가혹하고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자존심에 흠집이 남지 않도록 몸부림치던 선생은 불행의 탈출구로 문학을 생각하고 더욱 틈틈이 시 습작을 하게 됩니다.
그 무렵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상업은행 본점에 다니던 선생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에게 자신이 써둔 시작 원고를 보일 기회를 가집니다.
습작 원고를 읽고 나서 김동리 선생은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 시보다 소설을 써보라고 권합니다.
그 권유에 따라 소설을 쓰게 되고, 김동리 선생의 주선으로 <현대문학>에 55년 <계산>, 56년에 <흑흑백백>이 추천 완료되면서 정식으로 한국 문단에 얼굴을 내밀게 됩니다.
57년 단편 <불신시대>로 현대 문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59년 장편 <표류도>를 발표하면서 대중의 인기도 얻게 됩니다.
선생의 초기 작품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많이 담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성이나 홀어머니를 부양하는 딸이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64년 발표한 <시장과 전장>은 자전적 작품으로 거기에 등장하는 황해도 연백의 연안여고 선생 ‘남지영’의 모델이 바로 박경리 선생 자신이고, ‘차기석’의 모델은 선생의 남편입니다.
이러한 선생에게 60년 4.19의 경험은 박경리 문학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옮겨갔고, 박경리의 세계가 넓혀졌습니다.
이제 시선이 개인과 가족의 고통을 넘어 민족과 인류의 보편성을 다루는 데까지 뻗치게 됐다는 평을 받습니다.
<김약국의 딸들(1962년)>, <시장과 전장(1964년)>, <파시(1965년)>, 등 굵직한 장편들을 내놓으면서, ‘내성문학상’, ‘한국여류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도 오릅니다.
69년 8월부터 선생은 <토지>의 집필을 시작합니다.
당초<토지>는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1권 분량으로 예상했던 소설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딸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했으나, 결국 다섯 살 서희가 쉰셋의 나이가 되어 평사리의 최참판댁 옛 땅을 찾을 때까지 반세기의 세월을 선생 자신을 유폐시킨 채, 25년이란 세월 동안 온갖 군상의 삶과 한 시대의 역사를 그려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