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시인 황 동규
무너진 사당 앞
나뭇가지에서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와
그 옆 나무 둥치 구멍에 숨어 있는
나무 결 빼어 닮은 올빼미를 만난다.
올빼미는 눈을 감고 있지만
곤두세운 촉각이 손에 잡힐 듯하다.
그들에게 고개 끄덕이며 사람의 말로 인사한다.
‘안녕하신가?’
다람쥐는 움직이던 목젖을 순간 멈추어 인사를 받고
올빼미는 몸을 조금 숙였다 편다.
다람쥐도 올빼미도
팽팽한 삶 속에 탱탱히 가고 있는 자들.
조금 걷다 뒤돌아보니
다람쥐의 목젖도 올빼미의 촉각도 다 그대로 있다.
내 삶이 어느 날 그만 손놓고 막을 내린다해도
탱탱히 제 길 가고 있을 촉각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이제 길이
다시 집들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양돈장이 나타나고
버려둔 밭이 나타나고
메마른 검은 사내가 나타나고
서로 인사 않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고 있는 길에 물든 눈으로
도시 상공에 한창 타고 있는 저녁놀을 본다.
잠깐, 그 무엇보다도 더 진하고 간절한,
보면 볼수록 안공(眼孔) 속이 깊어지는.
다리를 건너다 한 사내에게
무심결에 인사를 한다.
얼떨김에 그가 인사를 받는다.
모르면서 서로 주고받는 삶의 빛,
가다 보면 그 누군가 마음 슬그머니 가벼워지는 순간 있으리,
없는 빛도 탕감받는.
길의 암전(暗轉), 한 줄기 빛!
서서히 동굴 벽이 밝아지고
그림 하나가 부활한다.
한 손엔 횃불, 또 한 손엔 붓을 든 사람 하나가
큰 대(大)자로 취해 노래, 노래 부른다.
시인 황동규
■ 오클랜드문학회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021 1880 850 aucklandliterary201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