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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학벌에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언제까지나 날 기다려달라고 할 수 없었고, 대학원 대신이라며 톡톡히 투자해왔던 레슨과 계획했었던 리사이틀 모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라고 계획했던 꿈들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상황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침착했으며, 반드시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몸과 마음은 바닥이었다. 며칠씩 몸져누울 정도로 아픈 날은 꼼짝도 않고 누워서 창밖의 나뭇잎을 종일 바라보기도 했다. 누워서 보는 나뭇잎은 유난히 싱그럽게 반짝반짝 반사되며 마치 해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어떤 날은 ‘째.깍.째.깍’ 하는 시계소리에 의식과 고통이 더 또렷이 각성되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고통을 죽음으로써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창 너머로 두런두런 들려오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어찌나 평화롭고 부럽게만 보이던지….
지속되는 통증은 그걸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겹고 버겁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며 아픔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는 것, 내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별 욕심 없이 남들 누리는 행복만큼, 꼭 그만큼만 가졌으면 했는데 나에겐 그걸 누릴 자격이 없었을까. 삶이라는 끈을 스르르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왜 아픈 걸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을까?
이렇게 아픈데 죽을 땐 얼마나 아플까?
이러다 죽으면 어디로 갈까?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은 어떡하지?
과연 신은 있는 걸까?’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것 또한 없었다. 고통이 지나고 나면 그간의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더 억척스럽게 살았던 것 같다. 식이요법, 등산, 병과 마음을 다스리는 온갖 책과 정보를 찾아다니며 병에게 무릎 꿇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갔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차 고통을 받아들여갔다. 인간은 때론, 그냥 견디는 것 이외에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조금씩 고통을 친구로 맞이하기 시작했을 무렵 명상을 만났다. 삶을 돌아보고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명상을 하면서 인간에게는 각각 다른 모습의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 마음을 다스리는 법과 그에 관한 수많은 비밀, 그리고 예전에 가졌던 꿈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