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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妾)바람 초대

오소영 0 336 2019.10.22 16:25

주말아침 늘어지게 게으름을 떨어도 되는 날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특별한 볼 일이 있다.

 

6시 기상. 외출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직접 볼 일과는 무관했지만 물을 끓여 보온병에 담았다. 냉동실에 묵혔던 떡도 몇조각 녹여 놓았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또 뭔가를 둘러보았다.

 

냉장고에 사과도 한 톨, 커피믹스도 한 개, 컵에 과도까지 챙겨 담으니 작은 빽에 한가득이었다.

 

5주 내지 6주에 한번씩 5년동안을 거르지 않고 다닌 곳이다. 이젠 주차비 부담없이도 주차 할 수 있는 곳을 알고 있다. 잰 걸음으로 10분. 보통때는 15분만 운동삼아서 걸으면 된다. 사나운 비바람만 아니라면 이슬비 정도는 겁낼 것도 없다. 비상용 노랑 우산속에서 보는 초록 세상이 더욱 화려하고 조화롭기 때문이다. 산책로인 그 오솔길에 들어서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편안하고 즐겁다. 촉촉하게 내려앉은 은빛 투명한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짝인다. 푸른 들판에 흩뿌려 놓은 작은 구슬처럼 예쁘다. 

 

깊숙이 발을 적시며 이른아침 풀을 뜯는 소들의 부지런함도 게으른 사람들에게 일깨움을 준다. 놀라울만큼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힘차게 걷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도 있다. 병원가는 사람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빛을 발견한다. 무언의 위로를 받는다. 사실 이 방향에 외출차림으로 걷는 사람들은 병원을 가는 사람들이다. 하얀 벽의 커다란 건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예외가 있을리 없다. 내겐 오늘이 늘상있는 안과 치료를 받는 날이었다. 봄바람을 첩의 바람이라고 하던가. 품속으로 파고 드는게 싫어서 만들어진 말 일 것이다.

 

그 바람이 잠자던 나무들을 흔들어 깨웠나보다. 온갖 나무들이 생기를 품더니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만화방초의 계절이 왔음을 게으른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런 때에 병원으로 부르는건 행운이기도 하다. 차를 대는 곳이 병원 옆 공원이기에 말이다. 벗꽃이 만발하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꽃놀이를 하고 오자는 심산이었다.

 

혼자이면 어떠냐? 꽃들과 대화하면서 맘껏 즐기고 싶었다.

 

공원에 들어서자 벗꽃 무더기가 술에 취한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차 댈 곳도 널널했다.

 

아직 보러 온 사람들이 없어 외로운 그들이 손짓해 부르는 것 만 같았다.(좀 기다려 얼른 돌아올께)

병원에서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가는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방해를 하면 안되는데...

 

아까와는 생판 다른 분위기였다. 역시 꽃나무 밑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리무리 사진을 찍느라 법석이다. 잔디밭에는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식사를 하느라 야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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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속을 뛰어다니며 몇 컷 사진을 찍었다. 하필이면 안과치료를 받았으니 촛점 맞추기가 쉽지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셧터를 눌렀다.

 

혼자 보기 아까워 동행하려다 못했던 친구들에게 보냈다. 속으로 용용 죽겠지 하면서...

 

“거기는 지금 봄이 한창이군요”

 

한국에서 동생의 반응이 제일 빨랐다. 꽃소식을 알렸는데 괜스레 내 가슴이 떨렸다. 열여덟 처녀도 아닌데...

 

혼자서 잔디밭에 먹거리를 풀기엔 자신이 없었다. 차에 키를 꽂았다. 눈빠지게 대기중인 뒤차에 미안했다.

 

차에서 먹거리를 풀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점심 요기를 했다. 차 창밖 풍경이 너무 재미있다. 산책로 건너엔 천막이 쳐져있다.

 

구렁이 몸통처럼 굵은 황금빛 풍선 둘. 4자와 0자가 큰 나무 가지에 걸려있다.(으흠 누군가가 마흔번째 생일 파티를 하는구나) 썩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길다란 식탁위에 차려진 음식을 접시에 날라다가 둘러앉아 먹는다.

 

아이들은 풍선놀이에 신났고 어른들의 담소는 끝이 없다. 소란스럽지않고 차분하게 진행되는게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이 마흔의 나이라는걸 깨닫고 혼자서 웃었다.

 

마흔. 내가 그 나이 땐 어떤 모습이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들 키우고 남편 시중이 전부였던 너무도 평범한 주부. 해마다 담근 된장 고추장이 맛이 좋으면 만족했던 여인. 고작 그 뿐이었다. 지금은 그 사십에 곱을 더 살았다. 후반 사십년은 나만을 위해서 살았던 세월이었다. 어느새 인생 종반기에 접어 들었다. 결산을 해야하는 때가 아닌가. 복잡한 인생사 다 접어두고 물끄러미 꽃밭에 즐기는 인파만 보기로 했다.

 

온갖 사람들이 오간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물처럼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아 다소 어지러웠다.

 

그 번잡스러움이 홀로의 외로움을 치유해 주어서 오히려 고마웠다. 빗방울을 날리던 검은 구름도 멀리 갔다. 파랑 하늘빛이 너무 예뻤다. 문득 커피봉지를 뜯었다. 방금전에 병원에서 마신 커피면 되었는데 무슨 일이람 커피가 고프다니...

 

혼자 마시는 커피가 이렇게 맛이 있다니 처음 느끼는 일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린게 틀림없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가운데 붙잡고 한가롭게 걷고있다. 정다운 가족 그림이었다. 멀찍이서 그들 뒤를 팔자걸음으로 따르는 회색머리 할머니. 구부정한 허리에 옷차림이 좀 그렇다. 뭣하러 애들을 따라 나오셨는지? 보기에 민망했다. 노인들은 끼리끼리 놀 때가 좋지 저건 아니다 싶었다.

 

지금 차 안에서 못 나가고 혼자 주춤거리는 나도 젊음속에 섞이는게 두려워서가 아닐는지... 

 

커피를 다 마시고나면 걸으리라. 누구보다 활기차고 씩씩하게 걸을 것이다. 천막 안에는 가녀린 소녀가 제 키보다 더 큰 ‘첼로’를 들고 서 있다. 독주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그 음악까지 듣기엔 내 청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잔치에서 눈을 돌렸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오르막 길을 걸었다. 경사가 심하지도 않은데 조금 걸었더니 숨이 찼다. 엉치도 무겁고 불편해왔다. 슬며시 화가 치밀었다. 이 모양으로 약해진 자신의 위치를 새삼 깨달아야 했다. 언덕길 훈련이 안된 초보로 퇴보한 것에 맥이 빠지려고 했다. 그렇더라도 휘젓고 열심히 걸었다.

 

아이스크림 가계 앞에는 예나 다름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다. 그들은 전혀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다. 나무 그늘에서 땀을 닦으며 아이스크림을 핥는 젊은이들이 대견했다.

 

두툼한 옷으로 감싼 내 모습을 화사한 꽃들이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첩의 바람이 무섭다. 한여름에도 더운 물을 찾아 마시는 사람 아닌가.

 

마치 어머니 품처럼 너그러운 고목이 반가웠다. 거기 기대어 우리만의 마음을 교감 해 본다.

 

무엇을 위하여 이리도 꿋꿋하게 서 있는지 물었다. 무언의 나무. 그 답은 내가 해야했다. 왜 사느냐고 누가 물어오는 것과 똑같다. 씁쓸한 웃음이 흘렀다. 그렇더라도 사람의 삶은 다르지 않은가. 맹물처럼 살 수도 있지만 목적을 가지고 살면 아름다운 삶이라고 한다.

 

지금 나는 도전하듯 삶을 살고있는 것이다. 굳건한 삶 그 자체의 도전. 그러기에 오늘 여기에 나와있는 것이다.

 

치료받았으면 바로 집으로 갈 일이지. 눈에 주사바늘을 꽂아 약을 넣고 침침하고 아프고 불편한 눈으로 꽃놀이라니...

 

팔팔한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꽃잔치에 기(氣)를 받고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꽃들이 다 지고 푸른 잎들이 팔랑거리면 첩의 바람도 어김없이 물러갈 것이다.

 

“오늘 좋았어?...”

 

사알작 더위를 느끼는 품속으로 첩바람의 아양이다.

 

“그러엄 너무너무 행복했어”

 

귀가길. 차창에 빗겨드는 서녘햇살이 눈부시게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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