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와 왕자들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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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와 왕자들 9편

0 개 996 송영림

맏딸 그런데 나는?

 

나는 어느 날 나이 사십도 훨씬 넘어서 내가 왜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것, 내가 얼마나 복이 많으며 행복한 사람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최면을 걸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그렇구나 하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초등학교 6학년 때 쯤부터 온전히 혼자였고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맏이가 지녀야 할 의무처럼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어리광을 부리거나 할 수 없었고 내 순수한 감정들을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 감정들에 대해 공감이나 이해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충족되지 못한 감정의 표출이 가족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곤 했던 것 같다. 

 

실제의 나는 빨강머리 앤만큼이나 지독한 감수성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앤처럼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내게는 매튜 같은 사람도 없었다. 나에게 만일 매튜 같은 사람이 있어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감성들을 모두 풀어놓을 수 있었더라면 나는 좀 더 내 감정에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혹은 사랑 받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보통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예민한 감각과 감성들로부터 늘 지배 받아 왔고, 어릴 때부터 내 가슴은 푸른 하늘과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과 무지개색 꽃밭들과 인류와 자연과 예술에 대한 거대한 사랑, 곧 터져버릴 것만 같은 눈물로 이루어진 집채 만큼이나 큰 비누방울들, 병원이나 정육점 또는 사다리나 지하철 문조차도 쳐다보지 못하는 굉장한 두려움과 공포감, 아가나 동물들에게서 느끼는 지나친 연민들, 눈앞에 보이는 죽음과 자살 같은 것들로 늘 벅차고 조여오고 두근거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오묘한 감정들을 공감해줄 사람은커녕 그 감정에 대해 말할 사람조차 없었고, 그저 비현실적인 몽상가로서의 외로움만 더해질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아버지가 내 수다들에 박자를 맞추며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였지만 너무 빨리 떠났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릴 때부터 책과 일기가 내 의지처가 되어 주었고, 여러 가지 예술과 학문을 경험하며 감정의 조율 방법과 탈출구를 찾아내게 되었던 것 같다. 

 

맏딸이 어리숙하다 보니 우리집에는 나보다 한결 나은 동생들이 있다. 나보다 포용력 있고 생각이 깊고 인정 많고 문제 상황에서 늘 발 빠르게 행동하며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동생은 동생이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내가 가장 의지하는 가족이다. 집안의 궂은일은 거의 여동생이 하고 있으니 항상 미안하기도 하다. 

 

그리고 냉철하며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판단력을 갖춘 남동생은 내가 갈등하는 문제들이 생겼을 때 감정을 배제하고 문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또 이 조용한 새벽 술을 마시고 신나게 노래하며 방금 귀가한 우리집 막내나 마찬가지인 사촌동생 역시 늘 나를 지지해 주는 가족이고 때로 내 이성적이지 못한 감정들을 뒤통수로 받아내며 나를 진정시키곤 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난 항상 생각으로만 맏딸 노릇을 하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우리 이모는 나의 그런 마음만 있어도, 그런 생각만 해도 고마운 일이라고 말하니 참으로 면목이 없다. 

 

문득 자주 두통에 시달리는 나와 관절의 통증을 호소하는 여동생의 몸이 평소 쉬지 않고 지나치게 운용하는 기계라도 되는 듯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옛이야기 ‘멍청이와 왕자들’에게 참 고맙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맏딸로서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멍청이가 내 마음을 대변하고 치유해 주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맏딸답지 못한 언니를 가진 내 동생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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