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풍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달빛 소풍

0 개 1,563 수필기행

■ 안 경덕 

 

나만의 달이 있다. 밤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숲속에서 뜬다. 이 달은 날씨가 흐려도 눈비가 와도 천연덕스럽게 뜬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을 하루같이 노숙하면서도 눈부시게 빛난다. 빨갛게 익은 달이 항상 나만 쳐다본다. 덩달아 내 마음의 달도 뜬다. 오래전 늦은 저녁이었다. 가게 앞에서 나른한 두팔을 쭉 뻗었다. 오른쪽 다섯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환한 보름달이 떠 있었다. 순간 전율이 일었다. ‘저건 내 달이야.’ 하고 점찍어 놓고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달을 바라보았다.

 

우리 가게 앞의 나지막한 산바락을 대각선으로 질러 키가 훤칠한 아파트가 있다. 그 옆 아래쪽이 달의 대저택이다. 한 동인 아파트와 달이 닮았다. 하나라서 외롭다는 것이. 늘어진 나뭇가지의 잎들이 밤에는 검은색으로 일제히 변해 흐느적거리면서 괴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거기에 비바람까지 몰아치는 밤엔 우우거리는 바람소리가 달에 시비를 걸어온다. 설령 온갖 잡신이 괴롭힌다 한들 달의 붉은 기운이 못 물리치겠는가. 나무들은 맑고 고요한 날도 살살 부는 바람과 그림자를 빌려 달의 얼굴을 요리조리 가려 조각달로, 옆으로 살짝 비켜서 반달로 만든다. 또 바람을 숨죽여 놓고 온달로 드러나게 한다. 그림자들 유희를 달더러 즐기라는 것 같다. 그러나 달은 부동자세다. 그 의지까지는 나무들이 어쩌지 못하나 보다.

 

나무가 잎을 떨친 계절에는 달의 얼굴이 더욱 밝고 훤하다. 차가운 날씨일수록 붉은 빛이 더 도드라진다. 달도 사람처럼 추위를 타지만 겨울이 좋다고 하는 듯하다. 눈앞에서 흐느적거리던 나무 이파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간섭 받는 걸 싫어하는 건 사람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달은 나뭇가지 위에 떡하니 턱을 괴고 흥얼거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하도 긴 세월  앉아 있어 다리가  저려 일어나지 못할까. 아니면 나뭇가지에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하는걸까. 그 모습이 미련한 것 같기도 하고, 굳은 심지 같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에 내 마음이 꽉 붙잡혔다. 내 삶을 보는 것 같아서다. 우리 부부는 우둔하리만큼 오랫동안 이곳에서 한 업종에만 고집하고 있다. 이 달의 처지와 흡사하다고 할까.

 

달의 집 옆에 있는 아파트가 달의 파수꾼이라면, 달은 우리 가게의 파수꾼이 아닌가. 그러니 센 바람이 부는 날, 달도 가게도 걱정이 안 된다. 이렇듯 나와 연이 깊은 달은 나에게 아파트 가가호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삶을 생중계 해 준다.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도란도란 얘기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아 집집이 기쁨과 웃음이, 슬픔과 눈물이 어우러진 다큐맨터리를, 내게 다채롭게 들을 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셈이다. 

 

동서남북에 붙어있는 달의 눈이 정말 예리하다. 달은 적게는 그 마을 일을 다 꿰고 있을 테고, 크게는 세상 돌아가는 것까지 관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겐 밤마다 추억의 모닥불을 지펴 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모양이 갸륵하다.

 

날마다 만나는 이 달과는 깊은 정이 들었다. 그동안 둘이서 남몰래 새긴 사랑이 달의 집에 작은 강을 이루고 있다. 그 강에 넘실대는 달빛 흥건한 곳으로 소풍을 간다. 아니 계절마다 이 달이 나를 특별 손님인 양 초대한다. 달은 교교히 흐르는 달빛 속 사계의 아름다움을 나와 나누고 싶다고 손을 살며서 잡아준다. 열두 가지 색을 내는 연둣빛의 싱그러움을, 소나무가 뿜어주는 짙은 솔향기를, 오색 단풍의 고운 자태를, 시원한 여백의 여유로움을 한 보따리씩 바리바리 싸준다. 아마 내가 이제 먼 산의 산행을 못 한다는 것을 달이 눈치챘을까. 그 아쉬움을 그나마 달래 주는 게 이 산의 달빛 소풍이다. 비록 야트막한 산이지만 촉촉한 산기운을 안겨준다.

 

그게 좋아 밤마다 하루 일과를 돌아보며 달에게 그날 있었던 일들을 주섬주섬 털어놓는 게 일상이 됐다. 말없는 달이 큰 위로가 된다. 나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과 나만 만나주는 믿음 때문이다. 달도 때론 숲속이 갑갑하여 비가 오면 그 빗물인 척하면서 눈물을 흘리리라. 그럼에도 언제나 꽃처럼 활짝 웃고 있다.

 

e0ddd5b1cf9c73ac98d6752ea8b21a2a_1570506743_226.jpg
 

이런 달을 내 첫 사랑인 양 비밀이 깃든 장소에서 은밀히 만난다는 사실에 가슴 떨린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누가 본다고 달이 닳는 것도 아니요, 누가 좋아한다고 내 사랑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러고 싶다. 부모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떼쓰는 아이처럼. 달에 응석 부리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알은체 하며 그저 웃어주는 달이 고맙다.

 

반면 하늘에 둥실 떠있는 둥근 달은 온 누리를 밝혀주는 절대자다. 산란한 마음을 보듬어 주는 다감한 손길에 너도 나도 위안을 받는다. 그러나 나만의 보름달을 더 의지하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외진 숲속에서 혼자 쓸쓸하게 서 있는 저 가로등이, 아니 나만의 보름달이 측은하지만 무척 당당해 보인다. 그 누구도 저곳에 나만의 달이 있는 것을 눈치 못 챌 정도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또 눈길을 주는 이가 아무도 없지만 제 할 일을 게으름 피우지 않는 숨은 일꾼이다. 곳곳에 저 달 같은 이가 얼마나 많겠는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다 드러낼 여건이면 더 좋은 일이 많겠으나 담담하게 안거할 여력을 가진 것도 크게 나쁜 건 아닐 것이다.

 

오늘따라 나만의 보름달이 더욱 커 보이고, 광채를 더 많이 발한다. 붉은 석양처럼 눈이 부신다. 언제 왔을까. 남편이 내 옆에서 달을 보며 한마디 툭 던진다.

 

“달도 밝다.”

 

나도 한마디 거든다.

 

“보름달이거든.” 

 

출처  <수필과 비평>

 

돈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금 계획

댓글 0 | 조회 862 | 2024.02.14
세금 계획은 비즈니스 재정을 전략적으… 더보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댓글 0 | 조회 525 | 2024.02.14
아침에 요란한 노크소리가 났다. 대충… 더보기

빈 시간에

댓글 0 | 조회 339 | 2024.02.14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슈베르트의 세레… 더보기

리커넥트 2024 정신건강 프로젝트 소개

댓글 0 | 조회 358 | 2024.02.14
리커넥트 사회단체란?Reconnect… 더보기

자신을 위한 용서

댓글 0 | 조회 255 | 2024.02.14
요즘 SNS를 통해 보여지는 개개인이… 더보기

헛 수고? 첫 수고!

댓글 0 | 조회 196 | 2024.02.14
자.. 이제 마지막... 이거 하나만… 더보기

허벅지가 날씬하고 유연해지는 스트레칭

댓글 0 | 조회 290 | 2024.02.14
오래 앉아 있는 직업을 가졌거나 골반… 더보기

핵심만 파고드는 파트너쉽 영주권 가이드

댓글 0 | 조회 1,092 | 2024.02.13
애초에 영주권을 목적으로 교제를 한 … 더보기

사건의 지평선 그 너머

댓글 0 | 조회 347 | 2024.02.13
충주 석종사 참선 템플스테이‘5분만 … 더보기

사랑은 싸우는 것

댓글 0 | 조회 409 | 2024.02.13
시인 안 도현내가 이 밤에 강물처럼 … 더보기

씨줄과 날줄

댓글 0 | 조회 424 | 2024.02.13
한국에 있을 때 읽었던 한 인용문을 … 더보기

단전호흡의 요령

댓글 0 | 조회 417 | 2024.02.13
단전호흡 할 때의 요령은 `단전 외의… 더보기

평양문화어와 한류

댓글 0 | 조회 317 | 2024.02.13
북에서 한때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 더보기

골절(骨折, Bone Fracture)

댓글 0 | 조회 343 | 2024.02.10
필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재까지 두… 더보기

비자카드 말고, 비자 그게 궁금하다

댓글 0 | 조회 586 | 2024.01.31
대한민국 영토가 아닌 타국가에 체류하… 더보기

관료주의의 무능, 권력자의 광기, 그리고 인간의 존엄 - <서울의 봄>이 상기시키…

댓글 0 | 조회 328 | 2024.01.31
공허한 권력의 실체이 영화 후반부에서… 더보기

청룡의 기상으로 카이로스를 잡자

댓글 0 | 조회 276 | 2024.01.31
2024년 1월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더보기

월경불순

댓글 0 | 조회 433 | 2024.01.31
여성에게 순조로운 월경은 건강의 척도… 더보기

재시행된 Trial Period이 고용주에게 미치는 영향

댓글 0 | 조회 709 | 2024.01.31
2023년 새 정부가 시작되면서 신규… 더보기

지혜의 숲에서 꿈꾸는 바다

댓글 0 | 조회 214 | 2024.01.31
유학생 두 사람이 찾은 오대산 숲과 … 더보기

한강철교를 지나며

댓글 0 | 조회 283 | 2024.01.30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저녁 무렵전철 … 더보기

지워지지않는 이름, 그녀 ‘레베카’

댓글 0 | 조회 941 | 2024.01.30
내게 북유럽 패키지 여행은 아무래도 … 더보기

시작

댓글 0 | 조회 302 | 2024.01.30
모터웨이를 달리던 중 이었습니다. 빠… 더보기

매일 이 두동작을 했을 때 찾아오는 놀라운 변화

댓글 0 | 조회 652 | 2024.01.30
운동 시간이 길거나 강도가 세다고 해… 더보기

학생의 육아출산 수당 수급

댓글 0 | 조회 1,013 | 2024.01.30
뉴질랜드에서 육아출산 수당 수급 자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