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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면, 비가 오는 날 우산을 각자 써도 되는데 왜 굳이 작은 우산을 함께 쓰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알코올과 비슷한 수준으로 우리 신경회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그 유명한 옥시토신이라는 사랑 호르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인 내가 우산의 손잡이를 붙잡고 함께 길을 걷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아내가 비에 젖지 않도록 아내 쪽으로 우산을 더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우산을 접자 아내가 내 한 쪽 어깨가 비에 흠뻑 젖은 것을 보고 걱정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젖은 옷 때문에 축축한 상태였지만 마음은 행복으로 촉촉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상한 경험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대학생 시절에 사회부장으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저의 절친이 경찰에 수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숨어 다니던 그 친구가 어느 날 밤에 제가 자취하는 집을 찾아왔습니다.
배가 몹시 고픈 친구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그동안 숨어 지내며 힘들었던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날 밤에 잘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제 자치방을 찾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그 친구를 재워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그 친구는 제 자취방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제 지갑을 열었더니 5천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30년도 넘은 일이니 당시 5천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가난한 자취생인 저에게는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저하지 않고 그 돈을 떠나는 친구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습니다. 그 때문에 2-3주는 거의 빈털터리로 살아야 했지만 친구를 도울 수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은 행복으로 풍성했습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백화점에 가서 한도 무제한의 카드로 사고 싶은 명품들을 다 사서 양 손에 쇼핑백이 가득한 채 집에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고 흥분되는 일입니다. 사온 물건들을 쇼핑백에서 꺼내면서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행복은 유효기간이 아주 짧고 대단히 소비적입니다. 길어야 몇일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 허무함을 해소하기 위해 카드를 들고 또 다시 백화점에 가야만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까요? 무엇이 생산적인 행복일까요? 나 자신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복은 생산적이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친절을 베풀게 만듭니다.
제가 목회하는 교회에는 10년이 넘도록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주일에 한 번씩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봉사를 계속해 온 훌륭한 부부가 계십니다. 사실 본인들의 생활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식사봉사를 중단할 수 없는 것은 나 자신만을 위한 밥을 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묵직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마어마한 선행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일상 속에서 내가 베풀 수 있는 매일매일의 작은 호의와 친절들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