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그녀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남편의 그녀

0 개 1,380 수필기행

그가 슬며시 지나간다. 그녀를 만나러 나가는 것이리라.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알은 척할 수 없다. 알은 척 했을 때 맞닥뜨리게 될 그의 반응이 두려워서다. 오히려 앞으로 당당하게 만나러 갈 계기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하며 참기로 한다.  스스로 정리하고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못났다.

 

그녀는 대단하다. 누군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산 하나를 옮기는 일만큼 어렵다고 생각해 왔다.

 

믿음으로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했던가? 산 하나를 옮길 만큼의 믿음이면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런데 그녀는 그토록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을 간단히 해내니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다. 

 

꼼짝도 하기 싫어하던 남편이 슈퍼엘 다녀온다. 차에 물건을 놓고 왔다, 잠깐 바람 쐬고 오겠다며 연신 들락거린다. 한술 더 떠 무언가 사오기를 부탁하면 오히려 고마워하는 눈치다. 질투가 난다. 남편에게 그녀는 어떤 의미일까? 혹여 그에게도 한숨을 쉬고 싶을 때 찾는 도피처인 것은 아닐까?

 

담배를 피워본 적이 있다. 맛이 궁금해서도, 피울 때의 기분을 알고 싶어서도, 그 어떤 호기심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깊게 들이마셨다가 그만큼 길게 뱉어 낸 연기 위로 “이건 담배 연기가 아니라 내 한숨이야.”라고 했던 한 선배의 말 때문이었다.

 

 

말이 멋있기도 하였고 한숨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기발함에 지체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먼저 깊게 마셨다가 후……. 아! 내 한숨이 올라간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담배를 처음 피울 때 흔히 하는 기림도 없었고, 기분이 이상하지도 않았고 밋밋했다. 주변 친구와 선배들은 속 담배니, 겉 담배니, 처음이 아니니하며 나를 화제 삼아 말들이 많았지만 담배는 내게 끌릴 만한 것이 못 되었다.

 

기억 속엔, 생각하면 설레는 사람이 있고 너무 싫어서 만나질까 무서운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도 저도 아니라서 아예 기억에 없는 사람도 있다. 담배는 내게 이도 저도 아닌 사람과 같았다. 피우고 싶다는 생각도, 다시 피우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애써 생각지 않으면 피워보았다는 기억도 희미해질 판이다. 습관이 들어 끊지 못할 만큼의 단계까지 끌어들일 만한 그 무엇도 없었다. 그 후로도 누군가의 생각을 도용한 것 같은 찜찜한 마음에 오래가지 못 하였다. 이렇게 오랜 기억 속에 별 의미가 아니었던 담배에 대해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담배가 건강에 끼치는 해악을 차치하고라면 담배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싶다. 청소년들에겐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어르신들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소일거리가 된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애인이기도 하고 헤어졌다가도 몰래 다시 만나는 정부가 되기도 한다. 기다리는 마음이 동무요, 고독한 사색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직장에선 어떠한가? 상사에게 심하게 혼나고 난 뒤 가장 짧은 시간에 위로를 받는 것은 역시 비상구에서 태우는 담배 한 대일 것이다. 휴게실에서 미주알 고주알 수다 떠는 핑계거리로도  단단히 한 몫을 한다.  오고 가는 담배 속에 쌓이는 정은 또 얼마겠는가?

 

남편에게 지금 담배는 헤어졌다 다시 만난 정부이다. 이 년여를 끊어 왔던 담배를 요즘 들어 다시 피우는 눈치이다. 처음 그런 기미를 알아챘을 때는 배신감도 들고 실망도 하고 마치 그가 옛 애인 만나는 걸 눈치챈 것 마냥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꼬인 감정 저 밑에서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옴을 느낀다.

 

혹여 그가 뱉는 연기 속에 깊은 한숨이 묻어나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금 그에게 한 개비의 담배만큼이라도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는지 구실을 만들어 들락거리는 남편을 보며 그에게 담배 같은 마누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정부를 부러워하는 조강지처 같다. 그러나 곧 나는 조강지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한다.  

 

담배는 이러거나 저러거나 해소 차원이다. 일시적인 해소를 반복하는 것이 담배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한 번만으로도 가슴 깊이까지 따듯해질 수 있도록 꼭 안아 줄 테다. 그녀가 인생 뭐 있냐고 자주 그에게 속삭일 때, 나는 가끔이지만 잘 하고 있다고,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해 줄 테다.

 

방금 들어온 그가 손을 씻는다. 무엇보다도 건강은 차치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빠른 시일 내에 그에게서 그녀를 떼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모른 척하기로 한다. 아니 끝까지 알은 척하지 않기로 한다.

 

야경을 즐겨보던 베란다로 내려선다. 저 너머 불빛들이 정겹다. 저 불빛 사이사이에선 또 얼마나 많은 한숨들이 올라가고 있을까?

 

출처  <수필과 비평>

 

■ 박 진희 

 

박노자 “성공만 비추는 한국식 동포관, 숨은 고통과 차별 외면”

댓글 0 | 조회 797 | 2024.04.24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이… 더보기

4월

댓글 0 | 조회 274 | 2024.04.24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까까머리 학창시… 더보기

강화된 워크비자와 무슨 상관?

댓글 0 | 조회 1,430 | 2024.04.24
일요일이었던 지난 4월 7일, 이민부… 더보기

척추가 튼튼해야 건강이 유지됩니다

댓글 0 | 조회 468 | 2024.04.24
일상생활에서 어떤 특정한 동작을 할 … 더보기

어떤 종이컵 모닝커피

댓글 0 | 조회 577 | 2024.04.24
이른아침 부지런히 외출준비를 서두른다… 더보기

공부가 나를 망쳤다 2

댓글 0 | 조회 402 | 2024.04.24
지난 시간엔 사회학자 엄기호님의 글을… 더보기

내 사랑으로 네가 자유롭기를

댓글 0 | 조회 184 | 2024.04.24
엄마와 딸의 춘천 청평사 템플스테이이… 더보기

은퇴를 위한 이주 선택 안내서

댓글 0 | 조회 1,197 | 2024.04.23
은퇴를 앞두고 뉴질랜드로 이주를 계획… 더보기

리커넥트 “Care to Self-care?” 멘탈헬스 프로젝트 보고

댓글 0 | 조회 219 | 2024.04.23
지난 4월9월 부터 4월11일까지, … 더보기

열흘 붉은 꽃 없다

댓글 0 | 조회 127 | 2024.04.23
시인 이 산하한 번에 다 필 수도 없… 더보기

동종업계 이직제한

댓글 0 | 조회 1,138 | 2024.04.23
고용재판의 절대 다수는 피고용인이 고… 더보기

장내 미생물과 질병의 연관성

댓글 0 | 조회 230 | 2024.04.23
장내 미생물이란 사람의 장에 살고 있… 더보기

단전관리 하는 법

댓글 0 | 조회 106 | 2024.04.23
호흡을 하면서 늘 단전관리를 해 주세… 더보기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

댓글 0 | 조회 496 | 2024.04.20
팻 분(Pat Boone)의 감미로운… 더보기

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댓글 0 | 조회 172 | 2024.04.10
▲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지난해 출… 더보기

공부가 나를 망쳤다

댓글 0 | 조회 372 | 2024.04.10
공부를 하라고 해서 공부만 했는데, … 더보기

그 곳에 있었다 - 부처님도, 우리 마음도

댓글 0 | 조회 143 | 2024.04.10
경주 남산 용장골 ~ 연화대좌 순례용… 더보기

비자 심사 지연엔 다 이유가 있었네

댓글 0 | 조회 1,622 | 2024.04.10
본국 외의 그 어느 국가를 방문하더라… 더보기

이번달 수도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어요!

댓글 0 | 조회 1,197 | 2024.04.10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이… 더보기

시인

댓글 0 | 조회 172 | 2024.04.10
시인 :파블로 네루다전에 나는 고통스… 더보기

축기의 비결

댓글 0 | 조회 165 | 2024.04.10
* 제가 단전호흡을 할 때, 계속 비… 더보기

마이너스 인생 살아가기

댓글 0 | 조회 932 | 2024.04.09
개념적으로 마이너스 인생이라고 하면 … 더보기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픈 기억에 마주했을 때

댓글 0 | 조회 426 | 2024.04.09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예기치 않… 더보기

현대인의 심리 불안, 대추차가 좋아요

댓글 0 | 조회 210 | 2024.04.09
최근 한방의 질병 예방 및 치료 효과… 더보기

장내 미생물총과 유전

댓글 0 | 조회 188 | 2024.04.09
장내 미생물, 사람의 체내 세포수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