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무의 이야기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어느 나무의 이야기

0 개 999 명사칼럼

“우둔한 영혼들아. 나를 보렴”

다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아는 것

낮고 약한 것들의 푸르른 생명성 


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에 심어졌습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누군가에 의해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지요. 나무는 자신을 존재하게 한 대(大)존재의 명령대로 자신의 세포를 분열시키고 기관을 만들며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에도, 천둥 번개가 치는 검은 밤에도 나무의 목적은 ‘사는 것’ 이었습니다. 나무의 세상은 온갖 위험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만, 그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그저 ‘살아내는’ 것만이 목표이었습니다. 

 

나무 주변에는 다른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나무들은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이 작은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지에는 영양분이 제한되어 있었고 그것을 먼저, 많이 차지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주변에는 또한 이 나무와 별다를 바 없이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어린나무들도 있었지요.   

 

나무는 큰 나무, 작은 나무들과 겨루며 많은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 나무의 그늘에 가려졌을 때는 햇빛을 향해 최대한 손을 뻗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통증으로 어깻죽지가 마비될 때까지 손을 내밀었으나 햇빛 한점 받지 못한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이 며칠 지속 되면 이파리가 누렇게 뜨기 시작했고, 나무는 죽음의 징후를 느끼기도 했지요. 

 

나무는 이 모든 위기와 고통과 경쟁의 시간을 거치며 점점 더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큰 나무들이 마침내 수명이 다해 쓰러지는 것도 보았고, 어린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어떤 나무들은 병이 들어 수족이 흉하게 뒤틀리기도 했습니다. 

 

나무의 가슴 속에도 수많은 고통으로 여기저기 옹이들이 배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무는 스스로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삶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푸르른 것은 오직 저 생명의 황금 나무” (괴테)라는 말은 얼마나 멋진가요. 물론 여기에서 “나무”는 일종의 상징이긴 하지만요.   

 

나무는 자신이 “황금 나무”로 완성되기를 꿈꾸었습니다. 나무의 정신이 저 지고한 곳을 향할수록 세상은 더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그럴수록 나무의 기준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황금빛을 띠며 우람하게 커가는 나무를 보고 기가 죽었습니다. 

 

이제 나무의 눈은 예리할 대로 예리해져서 한눈에 사물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가 볼 때 어리석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무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통찰이 부족한 나무들은 이 나무와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나무들과의 시간은 이 나무에게 견딜 수 없이 지루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나무는 자신이 “황금 나무”가 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관계를 멀리했습니다. 정신의 지고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했고, 쓸데없는 일로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지요. 

이제 커질 대로 커진 나무는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세상의 맨 꼭대기에 있는 태양만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이야말로 나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였기 때문이지요. 

 

나무는 빛나는 태양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영혼의 “황금”이 연단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환희가 나무의 온몸을 물들였습니다. 나무는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나무는 이미 “황금 나무”의 영혼이 어떤 것인지 알아버렸습니다. ‘세상의 이 모든 어리석은 것들아, 우둔한 영혼들아. 나를 보렴.’ 나무가 이렇게 속으로 외치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온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기조차 검게 물들어 나무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멀리서 엄청난 에너지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나무는 보았습니다. 불길은 순식간에 거대한 칼로 변했습니다. 불의 칼은 순식간에 나무의 정수리를 내려쳤습니다. 나무는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 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나무는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다 무너진 후에야 나무는 알았습니다. 자신의 꿈이 바로 “회색의 이론” 들이었음을. 푸르른 “황금 나무”는 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 약한 곳, 아픈 곳, 어리석은 곳에 있었습니다. 불의 칼에 쓰러진 나무의 밑동에, 어리고 푸른 이파리 몇 개가 간신히 팔랑이고 있었습니다. 다 죽어가면서 나무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이게, 이것이, “푸르른 생명의 나무” 임을.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 오 민석 교수 


충남 공주 출생.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현재 단국대학교 영미인문학과 교수로 문학 이론, 현대사상, 대중문화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평론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명륜여인숙>>,  <<기차는 오늘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론서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문학연구서 <<저항의 방식: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대중문학 연구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 서 <<아침 시: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산문집 <<경계에서의 글쓰기>>,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등을 냈다. <단국문학상>, <부석 평론상> 등을 수상하였다.

  

0e5bcd798b4c023d6d10fb30a021e7c3_1566966529_7875.jpg
 

선거와 이미지

댓글 0 | 조회 134 | 20시간전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읽는 예술이다… 더보기

가스 안전에 관하여

댓글 0 | 조회 215 | 1일전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입… 더보기

멀어도 멀지 않은 길

댓글 0 | 조회 89 | 1일전
스페인에서 온 연인의 범어사 템플스테… 더보기

종자

댓글 0 | 조회 83 | 1일전
시인 최 재호울음 그친 하늘이 다시 … 더보기

알고 나면 속 시원한 학생비자

댓글 0 | 조회 357 | 1일전
뉴질랜드에서 학업을 시작하고자 하면,… 더보기

Pink Shirt Day

댓글 0 | 조회 415 | 1일전
2024년 5월17일(금요일)은 핑크… 더보기

잔인한 5월

댓글 0 | 조회 408 | 1일전
‘그니까요 쌤~ 제가 자~알 알아 들… 더보기

유익균을 늘리고 유해균을 억재하는 식사와 생활 습관

댓글 0 | 조회 811 | 2일전
1. 유익균이 좋아하는 음식과 습관들… 더보기

두 죽음의 방식: 홍세화와 서경식

댓글 0 | 조회 492 | 2일전
▲ 왼쪽부터 고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더보기

우리 명상은 철저한 내공

댓글 0 | 조회 129 | 2일전
명상에는 크게 외공(外功)과 내공(內… 더보기

쓰레기통을 내어 놓다가

댓글 0 | 조회 901 | 2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고양이 발걸음도… 더보기

지출 내역 절약하기

댓글 0 | 조회 374 | 2일전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항상 특정 비용… 더보기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고 잔병치레가 잦나요?(1)

댓글 0 | 조회 140 | 2일전
일반적으로 허약아란 몸이 야위고 자주… 더보기

건강을 위해 맨발로 걷는다

댓글 0 | 조회 404 | 6일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더보기

박노자 “성공만 비추는 한국식 동포관, 숨은 고통과 차별 외면”

댓글 0 | 조회 879 | 2024.04.24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이… 더보기

4월

댓글 0 | 조회 323 | 2024.04.24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까까머리 학창시… 더보기

강화된 워크비자와 무슨 상관?

댓글 0 | 조회 1,617 | 2024.04.24
일요일이었던 지난 4월 7일, 이민부… 더보기

척추가 튼튼해야 건강이 유지됩니다

댓글 0 | 조회 543 | 2024.04.24
일상생활에서 어떤 특정한 동작을 할 … 더보기

어떤 종이컵 모닝커피

댓글 0 | 조회 641 | 2024.04.24
이른아침 부지런히 외출준비를 서두른다… 더보기

공부가 나를 망쳤다 2

댓글 0 | 조회 447 | 2024.04.24
지난 시간엔 사회학자 엄기호님의 글을… 더보기

내 사랑으로 네가 자유롭기를

댓글 0 | 조회 209 | 2024.04.24
엄마와 딸의 춘천 청평사 템플스테이이… 더보기

은퇴를 위한 이주 선택 안내서

댓글 0 | 조회 1,281 | 2024.04.23
은퇴를 앞두고 뉴질랜드로 이주를 계획… 더보기

리커넥트 “Care to Self-care?” 멘탈헬스 프로젝트 보고

댓글 0 | 조회 247 | 2024.04.23
지난 4월9월 부터 4월11일까지, … 더보기

열흘 붉은 꽃 없다

댓글 0 | 조회 143 | 2024.04.23
시인 이 산하한 번에 다 필 수도 없… 더보기

동종업계 이직제한

댓글 0 | 조회 1,198 | 2024.04.23
고용재판의 절대 다수는 피고용인이 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