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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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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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의 기사와 영국 근대의 젠트리는 시골에 살더라도, 자신을 마을 사람들과는 완연히 구별되는 특수한 존재로 인식하였다. 일본의 사무라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사무라이나 젠트리는 조선의 선비들처럼 마을의 규약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로 말하면 국가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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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상적인 인간관계와 사회질서가 구현되기를 바랐다. 

 

그들의 노력은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21세기 시민사회가 나아갈 지표를 제시해준다.

 

첫째, 중요한 것은 양적 성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가 고도성장을 거듭한다 해도, 시민들의 생활이 질적으로 개선되지 못하면 그 의미는 반감되고 만다. 

 

윤휴 같은 조선의 선비들은 공동체의 외적 발달과 성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상부상조를 통해서 완벽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향약 계원들은 결코 방치되거나 소외되지 않았다. 질병과 가난, 그리고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존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계원들은 언제나 이웃의 위로와 헌신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 있었다.

 

둘째, 마을 사람들이 주고받는 위로와 격려, 그들의 상호연대는 가시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상벌을 시행했다.

 

그들의 연대는 추상적이거나 형식적, 관념적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실명(實名)의 개인들이 함께 웃고, 함께 땀을 흘리며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고자 애썼다. 그들의 ‘마을공화국’은 국가 속의 진정한 소국(小國)이었다.

 

현대 세계는 훌륭한 제도적 • 법률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진정한 의미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형식화되고 추상화된 결과다. 대면관계의 상실이 사회적 소외를 양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선비들의 마을공화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선비들의 주된 관심사는 내적 가치의 구현이었다. 그들의 마을공동체는 일종의 평생교육 기관이었다. 선비들은 인간의 삶을 끊임없는 배움과 실천이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자연히 이웃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깊었다.

 

절도와 폭행 같은 명백한 범죄행위만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인 태도를 지향하고, 이를 언행으로 정확히 표현하기를 요구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법률을 명백히 위반하지 않은 행동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타인에게는 결코 도덕을 요구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편법적인 사고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관계의 불신이 깊어졌고, 사회 불안도 증폭되었다.

 

만약 이런 추세를 바로잡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시 우리가 지향하는 내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캐물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선비들은 우리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하다.

 

과거의 선비들이 다 옳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지양해야 할 점도 분명히 있다. 예컨대 그들은 개인의 사생활에 시시콜콜 간섭했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통제와 억압은 금물이다.

 

출처: 백승종, 신사와 선비, 사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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