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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 사발면. 어릴적 내 생애 처음 컵라면이라는 세상을 접했을 때 그것은 세기의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 공연을 처음 본 것만큼 나에겐 신기진기했다.
뜨거운물을 붓고 3분만 기다리면 이 맛있는게 완성되다니. 동동떠다니는 노랑 수수깡도 새우맛이 나는 분홍색 지우개를 잘라놓은 것 같은 말린 어묵도 대따 신기했다. 끓여먹던 오렌지색 봉투속의 삼양라면과 달리 얇고 꼬들꼬들한 면발도 참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인가 지금도 나는 사발면은 육개장 사발면에 엄지척한다. 그 뒤로 화려한 경쟁자들이 무수히 나왔었지만 짜장범벅이 사알짝 왕좌를 노렸던 이후로 굳건히 나의 사발면 순위에 부동의 1위는 육개장이다.
그렇게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3분의 시간. 엄청 무~~~척 길다. 즐거운 초조함+설렘+행복+기대. 어린 나에게 3분동안의 그 짜릿한 기다림은 실로 행복이었다.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고 그 위대해 보이던 사발면이 어느새 손에 쥐면 쬐그맣게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나이가 되서 낮엔 정직장에 저녁 알바에 주말 새벽시장 장사에 공부와 일과 꿈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매일을 잠자리에 들면서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 하던 시절에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끼니를 챙길수 없을 때, 요 사발면은 후루룩 뚝딱 싸고 맛난 한끼였다. 어릴때 느끼던 3분동안의 그 설레는 행복은 없었지만 코끝이 쨍하고 추운 겨울날 새벽시장에서 커피아줌마가 사발면에 물 붓는 냄새는 죽여줬고 사발면이 익을 동안 누리는 그 잠깐의 수다와 쉼도 너무나 달콤한 시간이었다.
더 나이를 먹어 사업에 실패하고 머리를 정리하러 바닷가에 가서 먹었던 음식도 사발면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원칙. 3분의 기다림. 3분동안 흘러간 영화필름 돌리듯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지나가고 결국 두어시간이 지나서야 멍해진 정신에서 깨어보니 나의 날씬한 사발면은 국물 한모금없는 뚱뚱한 아줌마 국수로 변신해있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불어버린 사발면을 다 비워내고 다시 살면 되지 하고 다짐했었다.
세월이 더 더 지나 아이들이 자라고 이젠 별식이 된 사발면. 라면은 몸에 안 좋은거니까 어쩌다 가끔씩 먹는 음식이 되고 어쩌다 먹는 사발면은 그리고 기다리는 3분은 이젠 조급할 것도 서러울 것도 없는 느긋한 기다림이고 옛시간을 끄집어 내는 친구가 되었다.
새벽부터 괜히 먹고싶어지게 라면 나부랭이 이야기나 하는 거냐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에게 사발면을 먹을때마다 지나온 수 많은 그 3분의 시간들은 나이에, 상황에, 함께하는 이들에 따라 수백가지의 다른 옷을 입고 수백가지의 다른 언어로 수백가지의 다른 감정으로 내가 나와 나눈 대화의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살면서 우리는 내가 삶을 사는게 아니라 삶이 지나가는대로 이끄는 대로 그도 아니면 벌어지는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럴때 사발면을 앞에 놓고 딱 3분만 스스로와 연애를 해보라. 아마도 생각치 않았던 많은 것들의 답이 사발면 면발 넘어가듯 후루룩 하고 생각의 샘에서 솟구칠수도 있으니까.
평범한 매일은 없다. 매일매일 우리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며 오늘과 다를 내일을 기다리며 산다.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울 멍키들이 방학이라 늦게자서 요즘 밤참들을 먹나 찬밥이 남아나질 않는다. 아침부터 육개장 사발면을 앞에 놓고 심심칼럼을 써본다. ㅎㅎ
3분 기다리고 10초만에 폭풍 흡입한 코끼리아줌마 제인